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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론 폴, End The Fed (연준을 끝내라) 한글번역 part. 11

wisstark 2014. 9. 4.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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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1. The Philosophical Case
 제 11장. 철학적인 측면 
 
 The moral argument against the Fed should be simple, and it would be, in a moral society. Once I pointed out that the two weakest arguments for any issue on the House floor are moral and constitutional. And that remains true today. If a society were truly moral, a written constitution would hardly be necessary. The moral principles that would guarantee sound money, and our not needing a central bank to manage it, are honesty, which would reject fraud, and keeping one's word. Contracts should be protected, not undermined by the government.
 연준에 반대하는 도덕적 논거는 도덕적 사회에서는 간단해야 하며 또한 그럴 것이다.  한때 나는 어떠한 이슈에 대해서든 하원에서 논의되는 가장 약한 두 가지 논거가 도덕과 헌법이라는 것을 지적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사실로 남아 있다. 사회가 진정으로 도덕적이라면, 문서화된 헌법은 거의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건전 통화,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관리할 중앙 은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증하는 도덕적 원칙은 정직, 즉 사기를 거부하고 약속을 지키도록 하는 덕목이다.  계약은 보호되어야 하며, 정부에 의해 침해되지 않아야 한다. 
 
 Looking at the money issue, it's easy to conclude that those who orchestrate and benefit from inflating the currency are no better than the counterfeiters themselves. Yet the process has made it seem that the inflators are serving the public interest by merely managing the currency.
 돈에 관한 이슈를 보면, 은밀히 통화 팽창을 조작하고 그로부터 이익을 얻는 이들이 위조자와 다름 없다는 결론은 내리기 쉽다.  그러나 절차는 통화를 팽창시키는 이들이 통화를 관리함으로써 단지 공익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졌다.  
 
 Today we speak of the printing of money by the Federal Reserve. But it's more complex than that. The grand scheme of counterfeiting now occurs with a computer, not a printing press. We allow the Federal Reserve to exert monopoly control over money and credit and interest rates. Law permits this highly secretive, private bank to create credit at will and distribute it as it sees fit.
 오늘날 우리는 연방 준비 제도에 의해 돈이 인쇄되는 것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보다 복잡하다. 위조의 웅대한 계획은 이제 인쇄기가 아니라 컴퓨터와 함께 나타난다.  우리는 연방 준비 제도가 금융과 금리를 독점적으로 통제하도록 허락했다. 법은 이 매우 비밀주의적이고 사적인 은행이 신용을 뜻대로 만들어내고, 그들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분배하는 것을 허락한다. 
 
 The chairman of the Federal Reserve can blatantly inject in a public hearing that he has no intention of revealing where the newly created credit goes and who benefits. When asked, he essentially answered, "It's none of your business," saying that it would be "counterproductive" to do so.
 연방 준비 제도의 의장은 공청회에서 노골적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돈이 어디로 갔으며 누가 이익을 보았는지 드러낼 생각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요청을 받았을 때, 그는 그것이 "역효과" 가 될 거라고 하면서 본질적으로 "그것은 당신들의 사업이 아니다." 라고 대답했다.  
 
 The entire operation of the Fed is based on an immoral principle. Congress contributes to the immorality by permitting the process to continue without any true oversight. The immorality associated with money is as much about omission as commission.
 연준의 운영 전체는 부도덕한 원리에 기반한다.  국회는 그 과정이 진실된 감독 없이 계속되는 것을 허락함으로써 그 부도덕에 공헌한다.  돈과 관련된 부도덕은 태만한 만큼 범죄적이다.  
 
 Members of Congress, when they knowingly endorse this system of fraud because of the benefits they receive, commit an immoral act. Financing spending in an irresponsible manner, through Fed action or future debt burdens, provides immediate political benefits to politicians.
 국회 의원은, 그들이 얻을 수 있는 이익 때문에 이 사기의 시스템에 의식적으로 서명할 때 부도덕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  무책임한 금융 지출은, 연준의 행동 또는 미래의 부채 부담을 통하여, 정치가들에게 즉각적인 정치적인 이익을 제공한다. 
 
 Congress, though, is a reflection of the people. If the problem was seen as a moral problem and the people were to demand morality in money from their representatives in government, the process would end. But the people endorse the system because they have requested and expect government to provide benefits that can't be provided any other way. Transferring wealth is limited when taxes and borrowing are the only tools the politicians can use. Printing money is required. The cooperation of the people, the politicians, and the counterfeiters at the Fed is based on the immorality of fraud, deceit, and ignorance. As the fourteenth-century French bishop Nicole Oresme said, "I am of the opinion that the main and final cause why the prince pretends to the power of altering the coinage is the profit or gain which he can get from it; it would otherwise be vain to make so many and so great changes…. Besides, the amount of the prince's profit is necessarily that of the community's loss."
 국회는, 그러나, 대중의 대표자이다.  만약 이 문제가 도덕적인 문제로 보이게 되고, 사람들이 정부에 있는 그들의 대표자들에게 돈에 대한 도덕을 요구하게 된다면, 이 과정은 끝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정부가 어찌 되었건 그것이 제공할 수는 없는 이익을 제공해 줄 거라고 기대하기 때문에 시스템을 지지한다.  부의 이동은 세금과 차입이 정치가가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일 때는 제한된다.  돈을 인쇄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치가들과 연방 제도 이사회의 위조자들의 협력은 사기와 허위, 무지의 부도덕에 기반을 둔다. 14 세기의 프랑스 주교로써 니콜 오렘(Nicole Oresme)은 말했다,  "나는 왕자들이 화폐 주조를 바꾸는 힘을 추구하는 주요하고 최종적인 원인이 그가 그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에 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매우 많은 변화를 만들지 않으면 무익할 것이다. 게다가, 왕자가 얻는 수익의 양은 반드시 사회의 손실이 된다." 
 
 Depending on the many circumstances, the process lasts for varying lengths of time, but it always comes to an end. As all immoral acts do, it ends with much pain and suffering. The big problem is that many immoral acts, including the inflationary process of a central bank, can satisfy a lot of people for very long periods of time.
 많은 환경에 따라 그 과정은 다양한 길이로 지속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항상 끝난다. 모든 부도덕한 행위가 그렇듯이, 그것의 끝은 많은 고통과 고생을 동반한다.  큰 문제는 중앙 은행의 인플레이션 과정을 포함하여 많은 부도덕한 행위들은 매우 긴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When times are good and the benefits are being enjoyed, no one is much interested in breaking up the party or worrying about morality in money. The Fed encourages irresponsible accumulation of personal debt. People live beyond their means with the help of an expansionistic monetary policy. They trade in their futures for the present. They neglect the need to save in order to consume more and more. In this sense, the Fed is the ultimate promoter of consumerism and living for the present. This amounts to a terrible cultural distortion in which short-term thinking wins out over long-term planning.
 모든 것이 잘 되어 가는 시기에는 아무도 파티를 중지하거나 돈의 도덕에 대해 걱정하는 것에 흥미를 갖지 않는다.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는 개인 부채의 무책임한 증가를 조장한다. 사람들은 팽창적인 금융 정책의 도움으로 분수에 넘치는 생활을 한다. 그들은 현재를 위해 미래를 대가로 지불한다.  그들은 더욱 더 많은 것을 소모하기 위하여 저축의 필요성을 무시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연준은 소비지상주의와 현재를 위한 삶의 궁극적인 촉진제이다.  이것은 단기적인 생각이 장기적인 계획을 이기는 가공할 만한 문화적인 왜곡으로 이어진다.  
 
 Yet the party always ends and the license taken to have short-term gratification brings grief and a period of payback. Family life is wrecked and marriages crumble. People are no longer free to move and change jobs. They are enslaved to their high credit card debt, the college loans, their car and home loans. None of these institutions and this type of personal fiduciary bondage was known before the Fed. It simply could not be part of a free society with sound money. We would be living within our means because that's what our money and banking system would reward.
 그래도 파티는 항상 끝난다. 그리고 단기적인 만족을 가지게 해 준 허가는 비탄과 자본 회수의 기간을 가지고 운다.  가족의 삶은 파괴되고 결혼은 무너질 것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자유롭게 직업을 옮기고 바꿀 수 없다.  그들은 그들의 높은 신용 카드 부채와 대학 대출, 차와 주택 대부의 포로가 된다.  이러한 관행과 일종의 개인 신탁 노예는 연준 이전에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것은 건전 통화를 가진 자유로운 사회의 일부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우리 분수에 맞는 생활을 했을 것이다.  그래야 우리의 돈과 금융 시스템이 보답할 것이기 때문이다.  
 
 Morality of money is related to morality in politics. Big government breeds corruption. If government has nothing to sell, bribery is useless. But even under today's circumstances, if only men and women of character served as our elected and unelected officials, the bribers would be wasting their time. An easy buck is conveniently rationalized as "just doing business" while they argue that they're serving their constituents' interests by participating in the process.
 돈의 도덕은 정치의 도덕과도 관계가 있다. 큰 정부는 부패를 낳는다. 정부가 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면, 뇌물 수수는 쓸모없는 일이다.  그러나 심지어 오늘날의 환경에서도 만약 기개 있는 남성들과 여성들이 우리의 선출된, 그리고 선출되지 않은 기관에서 일하고 있었다면 매수자들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책임은 그들이 그 과정에서 주민들의 이익을 위해 참여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동안  "단지 사업을 수행하고 있었다." 로 편리하게 합리화된다.  
 
 Trading votes for constituents' benefits is routine. Being a "team player" is necessary to gain a plush committee assignment, and the committee assignment is the vehicle for raising money since one's committee votes are even more valuable than the floor votes that come after the deal has been done. Participation in conferences to resolve the differences between the Senate and House versions is a real attention getter for those who contribute or buy influence in the process.
 주민들의 이익과 투표를 교환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다. "팀 플레이어" 가 되는 것은 높은 위원회 지위를 얻기 위해 필요하다.  위원회 투표가 거래가 수행되고 난 후에 오는 본회의 투표보다 훨씬 더 가치있으므로, 위원회 지위는 돈을 모으는 매개가 된다.  상원과 하원 의견의 차이를 해결하기 위해 회의에 참가하는 것은 영향력을 사거나 공헌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좋은 이목을 끄는 방법이다.   
 
 Donations to campaigns, especially to committee chairs who don't even have campaign races of any note, are the way business is done. It is a quick quid pro quo, a wink and a nod, and it's all legal. Morality is never considered.
 특히 어떠한 의미의 캠페인 경쟁도 갖지 않는 의원회 의장석에 대해서, 캠페인에 기증하는 것은 그 비즈니스가 수행된 방법이다.  그것은 빠른 답례, 윙크와 끄덕임이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합법적이다. 도덕은 결코 고려되지 않는다.  
 
 In the presidential campaign, Barack Obama raised more than $750 million, breaking all records. This candidate was seen as a man of the people, caring for the poor, the disenfranchised. He is a man who once promised he would limit his spending by accepting public funds. By the end, Wall Street, the banks, the military-industrial complex, and the medical-industrial complex all got a piece of the action.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 동안, 버락 오바마는 모든 기록을 깨고 $750 만 이상을 모았다.  이 후보자는 빈곤자와 권리 박탈자를 걱정하는 민중의 대변자로 보였다. 그는 한 때 공채를 받아들임으로써 그의 지출을 제한할 것이라고 약속했던 사람이었다.  종국에는, 월 스트리트, 은행들, 군산 복합체, 의학 공업 복합체가 한 몫씩 얻었다.   
 
 Once it was known - very early on - that the media's candidate was picked, the fix was in and the spigots were on. The downward spiral of the economy did nothing to slow the influence buying. As a matter of fact, the records in campaign funding were set because the government portion of the GDP is rapidly expanding and is expected to do so for years to come. There's more "stuff" up for auction.
 미디어의 후보자가 골라졌다는 것이 - 매우 일찍이 - 알려졌을 때, 부정한 거래는 들어왔고 마개는 열렸다.  경제의 급락은 영향력 구입을 멈추는 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캠페인 자금 조달의 기록은 국내 총 생산의 정부 부문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었고 몇 해 동안 계속 그럴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에 만들어졌다.  경매를 위한 많은 "요소" 가 있다.
 
 With all the bailouts and nationalization going on, it's more important than ever that one has access to those in power. The process builds on itself. Just as inflationary bubbles expand, political power structures pyramid on themselves as the role of government grows.
 긴급 구제와 국유화가 계속될 때에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정권을 쥐고 있는 이들에게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과정은 자기 자신을 기반에 두고 있다. 정치적인 권력 구조의 피라미드는 정부의 역할이 성장할 수록 커진다.  
 
 To put it simply, the system is morally corrupt. Politicians should nevertheless resist the temptation to participate. Rationalizing that others do it - that's the way the system works - is unacceptable. Sadly, avoiding discovery is the hallmark of a successful politician.
 요약하자면, 시스템은 도덕적으로 부패했다.  그러나 정치가들은 거기에 참여하려는 유혹에 저항해야 한다.  다른 사람도 한다는 - 그것이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 이유로 그것을 합리화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불행히, 폭로를 피하는 것이 성공적인 정치가가 되는 것을 보증한다.  
 
 Few understand or decry the immorality of the redistribution of wealth through government force. The fact that many merely desire to help the helpless and create an economically "fair and equitable" society should be irrelevant.
 소수만이 정부의 힘을 통한 재산의 재배포의 부도덕함을 이해하거나 비난한다.  사람들이 무력한 이들을 도우려 한다는 사실과 경제적으로 "공정하고 공평한" 사회를 만드려 한다는 사실은 구분되어야 한다.  
 
 When politicians pass out the benefits or threaten to with-hold them unless there is something given in return, it is commonplace for everyone to express outrage once the deed is known. But there's less outrage over the fact that the goodies being passed out were stolen from productive members of society. The transfer of wealth, protected by law, is the much bigger scandal and is rarely addressed.
 정치가가 이익을 나누어주거나, 답례로 받은 것이 없다면 그들을 쥐고 있기 위해 위협을 가할 때, 그것이 알려진다면 모두가 분노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그들이 나누어주고 있는 좋은 것들이 사회의 생산적인 구성원들에게서 훔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분노하는 사람들은 적다.  법에 의해 보호되는 재산의 이전은 훨씬 큰 스캔들이고 좀처럼 겨냥되지 않는다.   
 
 The great immorality is the system of government that condones transfer of wealth through force. It's only considered immoral if one is caught passing out the loot. It's relatively easy to see the transfer of wealth through the tax system from one group to another. But we have been conditioned that morality is on the side of the redistributionists who grab the moral high ground by arguing that they alone care for the unfortunate and are merely making the system fair. They argue that, without this system, economic suffering would be overwhelming and unfair. Of course, an understanding of how freedom provides for the needs of the greatest number of people totally refutes this notion.
 큰 부도덕은 힘을 통해 재산을 이전시키는 것을 용서하는 행정 제도이다.  누군가가 약탈품을 나누어주다 잡히면 그것은 단지 부도덕한 일로 간주된다.  세제를 통해 한 그룹으로부터 다른 그룹으로 재산을 이전시키는 것을 보는 일은 상대적으로 쉽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그들만이 불행한 사람을 신경쓰고 시스템을 공평하게 만들고자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도덕적인 우위를 잡은 복지국가주의자 쪽에 있는 도덕에 익숙해져 있다.  그들은 이 시스템이 없다면 경제적 고난이 압도적이고 불공평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어떻게 자유가 가장 많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하는지에 대한 이해는 이 개념을 논박한다.  
 
 The process of monetary debasement, by inflating the money supply, redistributes wealth unfairly and dangerously from the middle class to the wealthy. It's based on the principles of fraud and is equivalent to counterfeiting. Its goals are achieved through stealth and are difficult for the masses to recognize. Instead, the people are conditioned to believe that easy credit, monetizing debt, and affirmative action loans are reflective of good economic policy and are morally motivated.
 화폐의 악화 과정은, 통화공급을 부풀게 함으로써, 재산을 중산층으로부터 부유층에게로 불공평하게 재분배한다.  그것은 사기의 원리에 기반하며, 위조와 동등하다. 그 목표는 은밀히 달성되며 대중이 인식하기는 어렵다. 대신, 사람들은 쉬운 신용과 화폐화된 부채, 교정 조치 대출이 좋은 경제 정책을 반영하며 도덕적으로 동기를 부여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The tragedy is only recognized when the fraud of an immoral, unsustainable monetary inflation comes to an end. That is what we're suffering from today.
 비극은 오직 부도덕하고 지속 불가능한 통화 팽창의 사기가 끝날 때 인식된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를 고생스럽게 하고 있는 것이다. 
 
 When arguing for sound money, the great concern I hear from the Keynesians is for the loss of the "benefits" of inflation; the people and the special interests argue that more of the same is needed. The principle of morality in money is no concern of theirs, and they don't want to hear of it. Those who pretend to be sympathetic to markets and small government announce loudly that now is not the time for ideologues who are obsessed with free-market principles, sound money, and balanced budgets to have their way. Now, they claim, is the time for action to rescue the faltering economy.
 건전 통화에 대해 주장할 때, 내가 케인즈주의자들로부터 들은 가장 큰 염려는 인플레이션으로부터 오는 "이익" 의 손실이었다; 그 사람들과 특별한 이해 집단은 그 이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돈의 도덕의 원리는 그들의 관심 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에 대해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시장과 작은 정부에 호의적인 척 하는 사람들은 큰 소리로 지금은 자유 시장 원리와 건전 통화, 그 길을 위한 균형 예산의 이데올로기에 사로 잡혀 있을 시간이 아니라고 발표한다.  그들은 지금은 비틀거리는 경제를 구하기 위해 행동할 시간이라고 주장한다.  
 
 What they fail to recognize is that they who condemn ideology are themselves prisoners of a deeply flawed ideology.
 그들이 인정하는 데 실패한 것은 이데올로기를 나무라는 그들 자신이 매우 결함이 있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Pragmatism, urgency, benevolence, fairness, compromise, fear of the future, and the need for safety and security provide the moral cover for an authoritarian approach to rescuing and protecting the people. Those so inclined are not bashful in declaring that sacrificing some liberty to achieve these goals is morally justified and necessary.
 실용주의, 긴급, 자비심, 공평, 타협, 미래의 두려움과 안전과 보안에 대한 요구는 사람들을 구하고 보호하는 일에 대한 권위주의적인 접근에 도덕적인 포장을 제공한다.  이 기울어진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약간의 자유를 희생시키는 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며 필요하다고 선언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The promoters of central economic planning rarely consider that the flawed policies of interventionism were actually the cause of the crisis and won't admit that more of the exact same thing will only dig the hole deeper. Some even see the chaos as an opportunity to expand their long-held belief that authoritarian government is the ideal. Out of fear of the future and lack of understanding how we got into the mess we're in, others postpone their goals of promoting limited government and free markets for a later time.
 중앙 경제 계획의 추진자는 결함이 있는 간섭주의적인 정책이 사실상 위기를 불러왔다는 것을 거의 신경쓰지 않으며, 동일한 일을 계속하는 건 오직 구멍을 더 깊게 팔 뿐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일부는 심지어 혼란을 권위적인 정부가 이상적이라는 그들의 오래된 믿음을 확대할 기회로 본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어떻게 우리가 이 지경까지 왔는지에 대한 이해의 부족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정부를 제한하고 자유 시장을 촉진하려는 그들의 목표를 연기한다.  
 
 The seekers of bailouts condemn their opponents as stubborn and selfish ideologues. Of course, when those wanting the taxpayers' bailouts were making profits, they were quite content to support the principle that the profits were theirs and they deserved to keep as much as possible as part of the free-market philosophy.
 긴급 구제의 지지자는 그들의 반대자가 완고하고 이기적인 이데올로기주의자라고 비난한다.  물론, 납세자의 긴급 구제를 원하고 있는 그들이 수익을 만들고 있을 때, 그들은 이익이 그들의 것이라는 원리에 매우 충실했으며 가능한 한 자유 시장 철학의 일부인 것처럼 행동했다.  
 
 It's not a question of being an ideologue; it's a question of which ideology one adheres to. It's virtually impossible to be a supporter of no ideology. The ideologue label is used to make the morally principled ideology look confrontational and uncaring. This then makes it seem like the immoral philosophy, based on government force, is morally superior. It's always couched in terms of caring for the underdog and not as a bailout of those who have unfairly been benefiting from an economic system artificially stimulated by an inflated currency that benefited certain industries'CEO salaries and workers' wages and benefits.
 그것은 이데올로기주의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어떤 이데올로기를 고수하는지의 문제이다.  사실상 어떤 이데올로기의 지지자도 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데올로주의자라는 꼬리표는 도덕적으로 도리에 들어맞는 이데올로기를 모순되고 무신경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사용된다. 그 다음 이것은 정부의 힘에 기반을 두는 부도덕한 철학이 도덕적으로 우선적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것은 언제나 패자를 돌본다는 말로 표현되고, 통화 팽창에 의해 인공적으로 자극된 경제 체제로부터 불공평하게 이익을 얻고 있었던 이들을 구제한다는 말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 통화 팽창은 특정한 산업의 경영자와 근로자의 임금과 수당에 도움이 되었다.  
 
 Very simply, there can't be a more immoral system of money than one based on a banking monopoly that can counterfeit money in secret with no oversight and protection of the people. The moral argument against the Fed should be enough for decently well-informed people to dispense with it posthaste.
 간단히 말해, 대중의 감독과 보호 없이 비밀적으로 위조 화폐를 만들어 내는 독점적인 은행에 기반을 둔 것보다 더 부도덕한 화폐 체제는 있을 수 없다.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에 반대하는 도덕적인 주장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충분히 빨리 나눌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Even the Bible is clear that altering the quality of money is an immoral act. We are instructed to follow the rules of "just weights and measures.""You shall do no injustice in judgment, in measurement of length, weight, or volume. You shall have just balances, just weights, a just ephah, and a just hin" (Leviticus 19:35 - 36). "Diverse weights are an abomination to the Lord, and a false balance is not good" (Proverbs 20:23). The general principle can be summed up as "You shall not steal" (Exodus 20:15).
 심지어 성경조차 명백히 돈의 품질을 바꾸는 것이 부도덕한 행위라고 밝히고 있다.  우리는 "단지 무게와 계량" 의 규칙만을 따르도록 명령받았다.  "너희는 재판에든지 도량형에든지 불의를 행치 말고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  (레위기 19: 35 - 36). "한결같지 않은 저울추는 여화와의 미워하시는 것이요 속이는 저울은 좋지 못한 것이니라"  (잠언 20:23). 일반적인 원칙은 "도둑질하지 말지니라" 로 요약될 수 있다.   (출애굽기 20:15). 
 
 The Bible assumed that money was a precious metal and honest weight and measures were to be practiced. The words of Jesus even contain a germ of the Austrian theory of the business cycle, which addresses the problem of unsustainable investments. "For which one of you, when he wants to build a tower, does not first sit down and calculate the cost to see if he has enough to complete it? Otherwise, when he has laid a foundation and is not able to finish, all who observe it begin to ridicule him" (Luke 14:28 - 29).
 성경은 돈이 귀금속이고, 정직한 무게와 측량이 실행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심지어 예수의 말은 경기 변동에 대한 오스트리아 학파의 이론의 씨앗을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지속 불가능한 투자의 문제점을 역설한다.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지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가로되"  (누가복음 14: 28 - 29). 
 
 Although some claim love of money itself is the root of all evil, others say that it is dishonesty in money that has been a major source of evil throughout history.
 어떤 사람들은 돈에 대한 애정 자체가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주장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역사 속에서 악의 주요한 원천이었던 것은 돈에 대한 부정직이라고 말한다.  
 
 Ayn Rand's defense of honest money meant the outright rejection of paper money. On the issue of "objective standards" for money, she was nearly biblical. Honest money to her was required for a prosperous society. In Francisco's speech in Atlas Shrugged, she warned of the day when the paper money system would collapse. Rand stated that if you wanted to know when a "society vanishes… watch money." Whenever "destroyers appear among men, they start by destroying money, for money is men's protection and the base of a moral existence. Destroyers seize gold and leave to its owner a counterfeit pile of papers." Paper money to her was a "mortgage on wealth that does not exist."
 에인 랜드의 정직한 돈에 대한 방어는 지폐의 완전한 거부를 의미했다.  돈을 위한 "객관적인 표준" 의 이슈에서, 그녀는 거의 성서였다.  그녀에게 정직한 돈은 사회의 번영을 위해 필요했다. Atlas Shrugged 에 있는 Francisco 의 연설에서, 에인 랜드는 지폐 시스템이 붕괴될 날에 대해 경고했다. 랜드는 만약 당신이 언제 "사회가 소멸하는지 알고 싶다면, 돈을 보라" 고 말했다.  "파괴자들이 사람들 사이에 나타날" 때마다, "그들은 돈을 파괴함으로써 시작한다.  돈은 사람들의 보호 장치이며 도덕적 존재의 기초이다.  파괴자들은 금을 몰수하고 그것의 소유자에게 서류 위조 더미를 남긴다."  그녀에게 지폐는 "존재하지 않는 재산의 모기지" 였다. 
 
 No great religion advocates governmental fraud in money. All speak of fulfilling one's promises and obligations and respecting other people's persons and property. Central banks, and especially our Federal Reserve, deliberately run roughshod over this principle that has been endorsed for thousands of years by essentially all religious and ethical leaders. Yet the "love" of controlling the money by the powerful is indeed the root of great evil in the world.
 어떤 훌륭한 종교도 돈에 관한 정부의 사기를 옹호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약속과 의무를 이행하고, 다른 사람과 그의 소유물을 존중하는 것에 대해 말한다.  중앙 은행들, 특히 우리의 연방 준비 제도는, 수천 년 동안 모든 종교적인, 윤리적인 지도들이 지지했던 이 원칙을 고의적으로 함부로 다루었다.  그러나 권력자들의 돈을 통제하는 일에 대한 "애정" 은 정말로 세계의 강력한 악의 뿌리이다.  
 
 The lack of clarity on morality in politics, economics, and money invites and seduces many who claim to believe in, or once believed in, free markets to accept a partnership arrangement with government.
 정치와 경제, 돈에 대한 도덕과 명료함의 부족은 자유 시장을 믿는, 또는 믿었던 사람들이 정부와 타협하도록 유도하고 유혹한다.  
 
 I recall an early political race for Congress I had in a special election, in 1976, the first I actually had a chance to win. I was truly a neophyte and very naive. But time and circumstances placed me in a position such that the Houston business establishment actually thought I could win. This in itself was remarkable, because there were only three Republicans out of twenty-four in the entire Texas delegation at that time. The congressional seat, the Twenty-second District, had never been held by a Republican. Besides, it was in the immediate post-Watergate atmosphere, which made it even more difficult for Republicans.
 나는 1976 년의, 내가 승리할 기회가 있었던 최초의 특별한 선거에 하원 의원으로 출마했을 때를 기억하고 있다.  나는 정말로 초보자였고 매우 순진했다. 그러나 시간과 환경이 나를 휴스턴 사업소가 실제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도록 한 위치에 배치했다.  이것은 그 자체로 주목할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그 당시 24 명의 전체 텍사스 대표단 중 공화당원은 3 명밖에 없었다.  22 번째 지구의 의회 자리는 결코 공화당이 차지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의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었다.  그것이 공화당원들을 더욱 어렵게 했다.  
 
 Since it was recognized I could possibly win, a meeting was arranged with the Houston business community. At that time, 70 percent of the district was in Harris County, where Houston is located, and a very small percentage was in Brazoria County, where I lived.
 아마도 내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휴스턴 비즈니스 커뮤니티는 회의를 준비했다.  그 당시, 70 퍼센트의 지구는 휴스턴이 위치한 Harris County 에 있었다.  그리고 매우 적은 비율이 내가 살았던 Brazoria County 에 있었다.  
 
 One conversation I vividly recall was with George R. Brown, of Brown & Root, which eventually became KBR (Halliburton). He was a Democrat and a known political ally of LBJ's. The two of them modernized politics with fund-raising and by supporting candidates they could control once they were elected to Congress. Brown's support for me was twofold. He opposed the unions that my liberal state senator opponent, Bob Gammage, was identified with. Brown & Root had a large presence in the district. My credibility soared with him because I unexpectedly got into the runoff in the special election.
 내가 생생하게 기억하는 1 건의 대화는 Brown & Root -  결국 KBR (Halliburton) 이 된 - 의 조지 브라운(George R. Brown)과의 것이었다. 그는 민주당원이었고 LBJ 의 정치적 동맹자로 알려져 있었다.  그들 중 두 명은 기금 조달로 정치를 현대화했고 후보들을 지원함으로써 하원에 당선될 경우 그들을 조종할 수 있었다.  나를 위한 브라운의 지원은 두 배였다. 그는 나의 자유당의 상원 반대자 밥 개미지(Bob Gammage)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연합 조직에 반대했다.  Brown & Root 는 그 지구에서 큰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뜻밖에 그 특별한 선거의 결선에 들어갔기 때문에 나의 신뢰성은 그와 함께 급등했다.  
 
 The reception was cordial and some money was raised - no large amount. My short talk was in the defense of the free market and was as defined then as it is now. In the parting conversation with Mr. Brown, he strongly admonished me, "Remember, for the economic system to work, business and government must be partners." His emphasis was on partnership. I cringed and quickly scooted out the door.
 환영회는 진심이었고 - 거액은 아니었지만 - 약간의 돈을 모을 수 있었다.  나의 짧은 발화는 자유 시장을 방어하는 것에 대한 것이었고 그것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명확했다.  헤어질 때 브라운 씨와의 대화에서, 그는 내게 강하게 권고했다.  "기억하십시오. 경제 체제가 작동하려면, 사업과 정부는 파트너가 되어야 합니다."  그의 강조는 파트너십에 있었다. 나는 진절이 나서 빨리 문으로 내딛었다. 
 
 After the election, which I won, my campaign manager urged another fund-raiser with the same city fathers. The announced purpose was to "pay off campaign debt" and to thank them for their support and to recognize their importance. Actually, there was no campaign debt, since even then my rules were firm - never end a campaign with debt. If you lose the election, the debt becomes yours, not the campaign's. Once again Mr. Brown showed up and as we were leaving I heard him ask, "Well, what's my share; what do I owe - " It sounded to me, and probably to him as well, that he had an investment in me and wanted to pay his fair share, like any good "capitalist."
 내가 이겼던 그 선거가 끝난 후에, 나의 캠페인 매니저는 같은 시 의회의 멤버와 함께 또 다른 자금 조달자를 추천했다.  발표된 목적은 "캠페인 적자의 청산" 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후원에 감사하고 그들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이었다.  실제로는, 어떠한 캠페인 적자도 없었다.  심지어 그 때에도 나의 규칙은 확고했다. - 결코 빚을 지고 캠페인을 종료하지 마라.  선거에 지면, 부채는 캠페인이 아니라의 당신의 것이 된다. 다시 브라운 씨가 나타났고 우리가 떠날 때 나는 그가 묻는 것을 들었다.  "무엇이 내 배당입니까; 무엇을 내가 가질 수 - "  그것은 내게는 건전하게 들렸다.  그리고 아마 그에게도 그랬을 것이다.  다른 모든 "자본주의자" 들처럼, 그는 내게 투자한 것이 있었고 그의 몫을 지불받고 싶어했다. 
 
 Once I was in office and after my votes and positions became known, the message was clear, and I never heard from him again.
 나의 투표와 정치적인 입장이 알려진 후 내가 재직하고 있을 때, 그 메세지는 명확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는 그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The idea of business and government being partners is nothing new, and even when Mr. Brown said it, it didn't sound sinister. I'm sure he thought it was a rather good system and rationalized that the enrichment of Brown & Root was incidental to the philosophy, not the purpose of the partnership. U.S. government contracts from around the world just happened , not because he and LBJ were bosom buddies.
 사업과 정부가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심지어  브라운 씨가 그것을 말했을 때조차, 그것은 사악하게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가 그것이 더 좋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했으며, Brown & Root 를 부유하게 하는 것은 파트너십의 목적이 아니라 부수적인 결과라고 합리화했을 거라고 확신한다.  미국이 맺은 정부가 전세계와의 계약은 단지 일어났다, 그와 LBJ 가 막연한 사이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This attitude is pervasive. Over the years, I have heard many businesspeople praise big government, saying how city hall and business must work together. It's a partnership that develops at all levels - city, state, federal, and international (UN, World Bank, IMF, and the multinational development banks). This is all done in the name of capitalism and financed by a corrupt and complacent Federal Reserve money machine. Home builders, highway contractors, bridge builders, and on and on, all support big government projects.
 이 태도는 널리 보급되어 있다. 오랫동안, 나는 많은 실업가가 어떻게 시청과 사업이 함께 일해야 하는지 이야기하면서 큰 정부를 칭찬하는 것을 들었다.  그것은 모든 수준에서 발생하는 파트너십이다. - 도시, 주, 연방, 그리고 세계 등 (UN, 세계 은행, IMF, 그리고 다국적 개발 은행들) 이것은 모두 자본주의의 이름으로 수행되고 부패하고 자기만족적인 연방 준비 제도의 돈 기계로 자금을 지원받는다. 집 짓는 사람들, 고속도로 계약자들, 다리 건설자들, 그리고 계속해서, 모두가 큰 정부 프로젝트를 지원한다.  
 
 The sad part, when graft, corruption, and financial crisis results, is what gets blamed. Usually it's the free market, and the problems become an excuse to further inflate and enlarge the government while undermining the free market, always serving the special interests. The lack of a moral compass in our entrepreneurial class and the vague understanding of economics have set the stage for the nationalization of the American free enterprise system. It's at our doorstep.
 안타까운 부분은, 부정과 부패, 그리고 금융 공황이 발생했을 때 무엇이 비난받는가이다.  보통 그것은 자유 시장이 된다.  그리고 그 문제는 자유 시장을 침해하고 특별한 이해 집단을 위해 봉사하면서 더욱 통화를 팽창시키고 정부를 확대하기 위한 변명이 된다. 우리 기업가 계층의 도덕적 나침반의 부재와 경제학에 대한 모호한 이해는 미국의 자유로운 기업 시스템의 국유화를 위한 장을 만들었다.  그것이 우리의 문 앞에 있다. 
 
 With every passing year, especially since the 1930s, the market economy has shrunk and the government-managed and -subsidized economy has grown. Few care, because our credit has been good and the dollar was perceived as strong; our prosperity lingered as our deficits exploded.
 특히 1930 년 이래로, 해가 지날수록 시장 경제는 축소되어 왔으며 정부가 경영하는, 그리고 보조금을 받는 경제가 자라 왔다.  우리의 신용이 좋았고 달러가 강하다고 인정받아 왔기 때문에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다; 우리의 번영은 부채의 폭발적인 증가로 버티고 있었다.  
 
 Things have now changed. The loss of the moral principle that defends free markets and sound money has completely eroded the foundation of our economic system. The failure of the economy and the loss of the moral foundation have now set the stage for nationalization. Do the auto executives come to Washington to demand freedom - freedom to contract labor, freedom to retool when they please, freedom to choose the cars they build, freedom from central economic planners regulating their every move, freedom to make profit and keep it, freedom to fail? Do they demand a sound currency that would rectify the international trade imbalances?
 이제 이것들은 바뀌었다.  자유 거래 시장과 건전 통화를 방어하는 도덕적 원리의 손실은 우리 경제 체제의 기초를 완전히 침식했다.  경제의 실패와 도덕적 기초의 손실은 국유화를 위한 장을 만들었다.  자동차 경영자들이 워싱턴에 자유 - 계약 노동의 자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재편성할 자유, 그들이 만들기를 원하는 차를 고를 자유, 그들의 모든 행동을 규제하고 있는 중앙 계획자들로부터의 자유, 이윤을 만들고 그것을 지킬 자유, 실패할 자유를 요구하러 갔는가?  그들은 국제 무역 불균형을 조정해 줄 건전 통화를 요구했는가?   
 
 No, they come to Washington to demand that innocent Americans bail them out and protect a system that deserves no protection. They never come to demand that the government protect contracts rather than insisting on the government rewriting them. They beg to be taken over, nationalized, partnered with, to obey a car czar and sacrifice every bit of self-respect that they might retain.
 아니, 그들은 무고한 미국인들이 그들을 구제하고 보호받을 가치가 없는 시스템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하기 위해 워싱턴에 갔다.  그들은 절대로 정부가 그것을 다시 쓰기를 주장하기보다는 계약을 보호해야 한다고 요구하기 위해 오지 않는다.  그들은 인수되고, 국유화되고, 정부와 파트너가 되기를 부탁한다.  그들이 유지할 수 있는 모든 자기 존중을 희생시켜 가면서 자동차 황제(car czar)에게 복종하기 위해.  
 
 There's a lot of blame to go around for bringing us to this point: the Fed, the Congress, the courts, the leeches. But the most abhorrent is the failure of the giants of industry to defend free markets. They are willing to be junior partners with government, believing they have sold out nothing and that better days lie ahead. They believe that they will once again be securely rich and enjoy the fruits of their labor and the benefits of freedom - if they can just get a bailout. Fascism is not on their mind. They rationalize that at times the markets fail and it's legitimate to get a little help from government. They benignly call it a bridge loan to tide them over. But their selfish, narrow greed and distorted concept of the government-business relationship in a free society have set the stage for a sea change in American political structure.
 여기에는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 온 것에 대해 비난할 것이 많다: 연준, 국회, 법정, 거머리들. 그러나 가장 불쾌한 것은 산업의 거인들이 자유 시장을 방어하는 일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정부의 새로운 파트너가 되고 싶어한다. 그들이 매진되었고 더 나은 날들이 눈 앞에 있다고 믿으면서.  그들은 - 긴급 구제를 얻을 수만 있다면 - 다시 한번 안전한 부자가 되고 그들의 노동과 자유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파시즘은 그들의 고려에 없다. 그들은 시장이 실패하는 때에는 정부로부터약간의 도움을 얻는 것도 정당하다고 그것을 합리화한다.  그들은 그것을 부드럽게  그들 위의 물살에 대한 브리지 대부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들의 이기적이고 좁은 탐욕과 자유로운 사회에서의 정경 관계에 대한 왜곡된 이해는 미국의 정치적인 구조가 현저히 변화할 무대를 만들었다.  
 
 On the House floor, I called it "nationalism without a whimper," and the corporate business community is begging for it. As far as I'm concerned, the nationalization of industry, while retaining private ownership in name only, is just another word for fascism. Gross dishonesty exists today, and if that doesn't include everyone, try denial by those who should know better.
 하원에서, 나는 그것을 "명백한 국가주의" 라고 불렀다.  그리고 기업 공동체는 그것을 갈구하고 있다.  내가 아는 한, 개인의 소유권을 명목상으로만 유지하는 산업의 국유화는 파시즘을 표현하는 또 다른 말일 뿐이다.  추잡한 부정직이 오늘날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만약 그것이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면, 더 잘 알고 있어야 하는 이들에 의한 부정을 시험해 보아라.   
 
 Harry Truman, by using an executive order to take over the steel industry during the Korean War, was much more honest with his plans for nationalization. Fortunately, the courts reversed that course of action. Today, there is no principled opposition to the corporate bailouts and the Fed's trillions of dollars of new credit and the takeover of insurance, mortgages, medical care, banks, and the auto industry. The arguments have only been over amounts, financial vehicles, and which political group gets to wield the economic power. If there is no moral argument against the economic takeover of America, there will be no resistance to the dictator who rules over our lives with an iron fist. I already see compulsory national service for all eighteen-year-olds as a program that Americans will be expected to embrace for patriotic reasons.
 해리 트루먼은 한국 전쟁 기간에 철강 산업을 정복하기 위해 실행 명령을 사용함으로써 국유화를 위한 그의 계획을 좀 더 솔직히 보여 주었다.  다행히도, 법정은 그 시도를 무효화했다.  오늘날, 회사의 긴급 구제와 연방 준비 제도의 수조 달러의 새로운 신용, 보험과 모기지, 의료와 은행, 자동차 산업에 대한 정복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여기에 대한 어떠한 원칙 있는 반대도 없다.  논쟁은 단지 양과 금융의 전달 수단, 그리고 어떠한 정치적인 그룹이 경제력을 지배해야 하는가에만 있어 왔다.  만약 미국의 경제적인 경영권 취득에 대항하는 어떠한 도덕적 논거도 없다면, 우리의 삶을 철의 주먹으로 통치할 독재자에 대한 저항도 없을 것이다.  나는 이미 미국인들이 애국적인 이유 때문에 채택할 것으로 예상되는 프로그램으로써 모든 18 세를 위한 강제적인 국영 서비스를 보았다.  
 
 Over the years, I often wondered how the business leaders of Germany and Italy could have gone along with fascist dictators. Didn't they know how it would end? I'm sure many hoped for the best, and making money in partnership with government was a philosophic position acceptable to both. Totally naive, they believed that they would maintain control over their own destiny.
 오랫동안, 나는 종종 독일과 이탈리아의 재계 지도자들이 파시즘의 독재자와 어떻게 동행할 수 있는지 궁금하게 생각했다. 그들은 그것이 어떻게 끝날 것인지 몰랐는가? 나는 다수가 최선을 바랬을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정부와의 협력으로 돈을 만들어 내는 건 양쪽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철학적인 포지션이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천진난만하게도, 그들은 그들이 그들 자신의 운명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할 거라고 생각했다.  
 
 Once the principle of the use of force by government to run the economy is endorsed, it is conceded that the government can run everyone's life as well. It didn't take long for fascism to evolve from the business partnership that gave us nationalization to uncontrollable militarism. The idea of a car czar alarms only a few.
 한번 정부가 힘의 원리로 경제를 운영하는 것이 서명되면, 정부가 모두의 삶 또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도 인정된다.  파시즘이 우리에게 국유화를 준 비즈니스 파트너십으로부터 제어할 수 없는 군국주의로 발전하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동차 황제의 아이디어는 오직 근소한 경고를 줄 뿐이다.  
 
 Ever since the first business-government partnership of the nineteenth century, there has been a tendency for these anti-market institutions to spread. The seeds were sown a long time ago, as far back as the planning state of World War I, for fascism to thrive in America. They are quickly maturing into a dangerous political and economic crisis. If we are not vigilant, we will see fascism thrive while liberty is sacrificed.
 19 세기의 최초의 비즈니스-정부 파트너십 이후, 이러한 반-시장 기관들은 퍼지는 경향이 있었다.  1 차 세계 대전의 계획 국가로써, 미국에서 파시즘이 성공할 씨앗은 오래 전에 뿌려졌다.  그들은 위험한 정치적, 경제적 위기로 성장하고 있다.  우리가 경계하지 않으면, 우리는 자유가 희생되는 동안 파시즘이 성공하는 걸 보게 될 것이다. 
 
 Justice Louis Brandeis reminded us that crime is contagious, especially when the government commits it. When government breaks the law and defies the Constitution, it sets the standard that makes it much easier for society to do the same. When governments and politicians show contempt for the law, it's a signal that everyone else can do it as well. The real irony is that when the individual lives within the Constitution and tries to hold government officials responsible, they become the law-breakers. If a situation like this is not rectified, it is destined to lead to violence. The wording on a plaque (which is really a bumper sticker) on my congressional desk reminds every visitor of the moral crisis we face: "Don't Steal, the Government Hates Competition."
 법관 루이스 브랜다이스(Louis Brandeis)는 범죄가, 특히 국가가 그것을 투입할 때, 전염성이 있다고 우리를 상기시켰다.  정부가 법을 어기고 헌법을 무시할 때, 그것은 사회가 같은 것을 수행하는 것을 매우 쉽게 해 준다. 정부와 정치가가 법에 대한 경멸을 보여줄 때, 그것은 그 밖의 모두도 그것을 수행할 수 있다는 신호가 된다. 진정한 아이러니는 헌법에 충실한 개인들이 정부 관료들을 책임 있게 묶어 두고자 할 때, 그들이 범죄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이 조정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폭력을 유발할 운명에 있다. 나의 의회 의자의 장식판 (정말로 범퍼 스티커이다) 에 씌여 있는 문구는 모든 방문자에게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도덕적 위기를 상기시키고 있다: "도둑질을 하지 마라, 정부는 경쟁을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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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달러와 금 관련 경제소식들
글쓴이 : 스패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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