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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 Central Banks and War
제4장. 중앙 은행과 전쟁
Following the creation of the Fed, the government would discover other uses for an elastic money supply aside from keeping the banking system from defaulting on its obligations. It would prove useful in funding war. It is no coincidence that the century of total war coincided with the century of central banking. When governments had to fund their own wars without a paper money machine to rely upon, they economized on resources. They found diplomatic solutions to prevent war, and after they started a war they ended it as soon as possible.
연방 준비 제도의 창설 뒤에, 정부는 유동성 있는 통화에 은행이 파산하지 않게 하는 것을 제외하고도 또 다른 사용법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것은 전쟁에 자금을 조달하는 데에 유용하다고 판명되었다. 전체 전쟁의 세기와 중앙 은행의 세기가 같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정부가 지폐 없이 전쟁에 자금을 조달해야 했을 때에는, 그들은 자원을 절약해야 했다. 그들은 전쟁을 막기 위한 외교적인 해결 방법을 찾았고 전쟁이 시작된 후에도 가능한 한 빨리 그것을 끝내려고 노력했다.
But for European governments in the late nineteenth century, the fiscal limits on war were removed. Now with central banks, governments could just print what they needed, and therefore they were more willing to pull the trigger and pick fights. The diplomats were powerless to stop governments itching to try out their newfound funding machines. Might a diplomatic solution have been found for the struggles that led to World War I had the Germans and English not had recourse to the printing press and a lender of last resort? Counterfactual history is always difficult but it is an interesting question to ask.
그러나 19 세기 말의 유럽 정부들의 경우 전쟁에 투입할 수 있는 재정의 한계는 사라져 있었다. 이제 중앙 은행과 함께, 정부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그저 찍어낼 수 있게 되었으며 결국 그들은 싸움을 일으키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외교관은 정부가 그들이 새로 발견한 자금 조달 기계를 사용하고 싶어하는 것을 막는 데에는 무력했다. 1 차 세계 대전을 촉발한 분쟁에 대해 외교적인 해결책이 발견되어 독일인들과 영국인들이 인쇄기와 최종 대출자들에게 의뢰하지 않게 할 수는 없었을까? 역사의 가정은 항상 어렵다. 그러나 그것은 흥미로운 질문이다.
As Mises wrote in 1919, "one can say without exaggeration that inflation is an indispensable means of militarism. Without it, the repercussions of war on welfare become obvious much more quickly and penetratingly; war weariness would set in much earlier."
미제스가 1919 년에 썼듯이, "우리는 과장 없이 인플레이션이 군국주의의 필수불가결한 수단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이 없다면, 전쟁이 후생에 끼치는 영향은 훨씬 더 명백하고 날카롭게 나타날 것이다. 전쟁의 피로는 훨씬 일찍 나타날 것이다."
Armed with central banks to cover liabilities, European governments began a war one year after the Fed was created. The New York Tribune wrote with horror: "The world looks on in a stunned, incredulous way while Europe is rushing forward to a stupendous catastrophe…. We have been told again and again that the financiers of the world, largely denationalized in their sympathies and interests, would never permit the great nations to impoverish themselves by a general war. A tightening of the screws of credit, it has been said, would bring most chancelleries to their senses."
부채를 덮기 위해 중앙 은행들로 무장한 유럽의 정부들은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가 만들어진지 1 년 후에 전쟁을 일으켰다. New York Tribune 은 공포에 질려 썼다: "유럽이 엄청난 파국으로 직행하는 동안 세계는 아연실색하고 그것을 지켜보았다. 우리는 주로 이익이 비국영화되어 있는 세계의 금융가들이 절대로 그들 자신을 가난하게 할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를 몇 번이고 들었다. 신용을 단단히 조여 두는 것은 대부분의 수상들이 정신을 차리게 할 거라는 이야기가 늘 있어 왔다."
It was once so, but central banking changed that forever. No more would governments be bound by the fear of bankruptcy and financial ruin. The magic of inflationary finance would provide for them no matter what.
그것은 한때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중앙 은행이 그것을 영원히 바꾸어 버렸다. 더 이상 정부는 파산과 금융 붕괴의 두려움에 묶여 있지 않을 것이다. 인플레이션 금융의 마술은 그들이 원하는 무엇이든 제공해 줄 것이다.
So, too, in an earlier time, the United States might have stayed out of the European conflict. But having the Fed, the United States entered the war in 1917, and with it came the most centralized experiment in national economic planning to date. There were price controls, new taxes, government nationalization of railroads, the War Industries Board, Liberty Loans, new bonds to float, and a massive expansion of government debt that was backed by the power of the Fed to create money to pay back the debt.
따라서, 초기의 미국은 유럽의 분쟁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를 갖게 되면서 미국은 1917 년에 전쟁에 참전한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국가적 경제 계획의 가장 집중화된 실험이 되어 왔다. 거기에는 가격 통제, 새로운 세금, 철도의 국유화, 전시 산업 조정 위원회, 자유 대출, 신 채권의 부상, 그리고 부채를 받기 위해 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연방 준비 제도의 힘에 의으로 뒷받침된 국가 빚의 언청난 증대가 있었다.
In those days, the Fed did not have the power to create money through the discount window, but it did serve that important role of being a guarantor of the government's debts. It was the lender of last resort, and it had plenty of capacity for creating new money out of thin air. The monetary expansion began in December 1914 and America went through the first of many false booms. Interest rates were pegged low at the very time when they should have been rising due to greater risk.
그 당시에 연준은 대출 창구를 통해 돈을 만들어내는 힘을 가지지는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부 빚을 보증하는 중요한 역할을 위해 봉사했다. 그것은 최종 대출자였고, 새로운 돈을 허공에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금융 완화는 1914년 12월에 시작되었다. 그리고 미국은 수 많은 가짜 호황기 중 첫번째 기간에 들어가게 되었다. 금리는 큰 위험성 때문에 실제로는 올라가야 했지만 순간에 낮게 책정되었다.
As Friedman and Schwartz report concerning World War I:
프리드먼(Milton Friedman)과 슈워츠(Anna Schwartz)가 제 1차 세계 대전에 관해서 보고했듯이:
The stock of money, which had been rising at a moderate rate throughout 1914, started to rise at an increasing rate in early 1915, rose most rapidly, as prices did, from late 1915 to mid-1917, and then resumed its rapid rise before the end of 1918, rather sooner than prices did. At its peak in June 1920, the stock of money was roughly double its September 1915 level and more than double the level of November 1914, when the Federal Reserve Banks opened for business.
1914 년 동안은 온건하게 증가하고 있던 통화 유통량은 가격 수지가 그러했듯이 1915 년 초부터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했고, 1915 말부터 1917 년까지는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그리고 1918 년이 끝나기 이전에 그것은 다시 빠르게 증가했으며 곧 가격 수지도 뒤따랐다. 1920 년의 피크 때에, 통화 유통량은 1915 년 9 월 수준의 두 배였고 연방 준비 은행의 비즈니스가 시작된 1914 년 11 월 수준과 비교하면 두 배가 넘었다.
Banks began to offer public credit to buy government bonds. The price level also expanded dramatically in response to monetary inflation. The false boom continued through 1918 until the war came to an end. The nation immediately went into recession, followed by another miniature boom-bust cycle from 1920 to 1921. In total, scholars have estimated that only 21 percent of the war was funded through taxation. The remainder was funded by Fed-backed borrowing (56 percent) and outright money creation (23 percent), for a total cost of $33 billion.
은행들은 국채를 사기 위해 공신용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가격 수준도 통화 팽창에 대응하여 극적으로 확대되었다. 가짜 경기 상승은 1918 년에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국가는 즉시 불황에 빠졌다. 다른 소형 호황-불황 사이클이 1920~1921 년 사이의 기간에 뒤를 이었다. 전체적으로, 학자들은 오직 21% 의 전쟁 자금만이 과세를 통해서 공급되었다고 추정한다. 330 억 달러의 전체 비용 중 나머지는 연준이 뒷받침하는 차입(56%)과 명백히 새로 창조된 화폐(23%)였다.
So we see that the damage that the Fed wrought came rather quickly after its creation. Compared with today, its power was limited then. But the goal of creating a lender of last resort had a devastating effect on our public policy. It inspired the government to dream of ever more power, ever more programs, ever more ambitions. So long as the funding was there, there would be no restraining the state, even when people with fiscally conservative impulses entered into leadership roles.
그러므로 우리는 연준이 만들어낸 데미지가 그것이 창조된 후 즉시 도달한 것을 볼 수 있다. 오늘날과 비교해 보면, 그것의 힘은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최종 대출자를 만들겠다는 목표는 우리의 공공 정책에 파괴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것은 정부로 하여금 더 큰 권력과 더 많은 계획, 더 많은 야망을 꿈꾸도록 만들었다. 자금 조달이 가능한 한, 심지어 국고를 보존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리더의 역할을 했을 때에도 국가를 제한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Never forget what the "Great War" meant for Europe. It meant the end of the old monarchies, a relatively peaceful world that was centralized in name only and decentralized in practice, and the beginning of warlike democratic states organized along technocratic lines. For the United States, it meant the entrenchment of the imperial presidency and a globalized foreign policy mission. For Germany, it created the conditions of the great inflation, which led to Hitler coming to power based on the fomenting of national resentment.
"1 차 세계 대전" 이 유럽에서 의미하는 것을 결코 잊지 마라. 그것은 말로만 중앙 집권제였을 뿐 실질적으로는 분권화되어 있었던 오래된 군주 정치가 끝나고, 기술 독재의 원칙을 따라 조직된 전투적인 민주주의 정치가 시작되는 것을 의미했다. 미국에서, 그것은 대통령의 초법적 권위의 정착과 세계화된 대외 정책을 의미했다. 독일에서, 거대한 그것은 히틀러가 국가적인 분노를 통한 선동으로 권력을 얻도록 이끈 인플레이션의 조건을 만들었다.
For Russia, it meant the beginning of Communism.
러시아에서, 그것은 공산주의의 시작을 의미했다.
Lew Rockwell explains how:
류 록웰은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설명하고 있다:
The Russian war itself was funded through money creation, which also led to massive price increases and controls and shortages during the war… the temptation that the money machine provided the regime proved too inviting. It turned a relatively benign monarchy into a war machine. A country that had long been integrated into the worldwide division of labor and was under a gold standard became a killing machine. And as horrific and catastrophic as the war dead were for Russian morale, the inflation affected every last person and inspired massive unrest that led to the triumph of Communism.
러시아 전쟁은 화폐 창조를 통해 자금을 지원했다. 그것은 또한 엄청난 가격 상승과 통제, 전쟁 기간 동안의 결핍을 야기했다… 돈 기계가 정권에 제공한 유혹은 너무나 컸다. 그것은 비교적 인자했던 군주 국가를 전쟁 기계로 바꾸었다. 세계적인 분업에 오랫동안 통합되어 있었고 금 본위제 아래에 있었던 국가는 살인 기계가 되었다. 그리고 전쟁이 러시아의 사기꾼들을 위해 한 수행한 일들이 끔찍하고 파국적일수록, 인플레이션은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끼쳤고 공산주의의 승리를 유발한 거대한 동요를 야기했다.
In the United States, it fundamentally altered the balance of power in our democratic system. Votes, campaign promises, polls, public opinion, laws, restrictions on the state, all of these forces took a backseat to the goals of the government to expand. Imagine an irresponsible teenager with an unlimited line of credit. The parents, teachers, pastors, and authorities in his life are ultimately powerless to change his habits. Now imagine that teenager armed to the teeth and also immune even from the rule of law. This is what we have with a government backed by a central bank.
그것은 우리 민주적인 시스템의 세력 균형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투표, 캠페인 약속, 여론 조사, 공공 의견, 법률, 국가에 대한 제약, 이 모든 힘들은 정부의 확장이라는 목표에 의해 뒷자리로 밀려났다. 무제한의 신용 한도를 가진 무책임한 십대 청소년을 상상해 보라. 그의 습관을 변경하기 위한 부모와 선생님, 목사의 권위는 완전히 무력할 수밖에 없다. 이제 그 십대가 빈틈 없이 무장하고 있으며 심지어 법의 지배로부터도 면제되어 있다고 상상해 보라. 이것이 우리가 중앙 은행에 의해 뒷받침되는 정부와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다.
A good example of this occurred at the end of World War I. The public was sickened by the loss of freedom that they had seen, and people demanded more accountability from government and more freedom in civic and economic affairs. Government spending fell dramatically, and there were hearings in Congress to ferret out those who had profited from war. The mood was captured by Warren Harding's 1920 campaign slogan, "A return to normalcy." An example of a bestselling book that reflected the postwar and interwar mood is Merchants of Death: A Study of the International Armament Industry.
이것의 좋은 예는 제 1차 세계 대전의 끝 무렵에 발생했다. 대중은 그들이 경험한 자유의 상실에 지쳐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정부가 더 책임감을 가질 것을 요구했으며, 개인 활동이나 경제 활동의 영역에서 더 많은 자유를 요구했다. 재정 지출은 극적으로 떨어졌고, 하원에서는 전쟁에서 이익을 얻은 자들을 찾기 위한 청문회가 열렸다. 이 분위기는 Warren Harding 의 1920 캠페인 슬로건에 잘 나타나 있다. "정상으로의 복귀." 전후와 양대전 사이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베스트셀러 책의 좋은 예는 Merchants of Death: A Study of the International Armament Industry 이다.
Sadly, however, there would never be normalcy again so long as a central bank stood ready to fund a government of abnormal powers. The old rules no longer applied. The beast that promised all things to all people, made the wishes of all politicians come true, made life easy for the money creators, and promised funding for every unconstrained vision was already created. Whatever anyone demanded from the government could be granted. What's more, the banking establishment in this country enjoyed new guarantees against failure, which created a "moral hazard" for them. Their lending activities would proceed without due consideration of risk.
불행히도, 중앙 은행이 정부의 비정상적인 힘에 자금을 공급할 준비가 되어 있는 한 정상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이었다. 오래된 규칙은 더 이상 적용되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약속하고, 정치인들의 모든 소망을 들어 주고, 화폐 창조가들의 삶을 쉽게 만들어주고, 모든 불확실한 비전에 돈을 대 주는 괴물은 이미 만들어졌다. 누군가가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충족될 수 있었다. 게다가, 이 국가의 금융 기관은 실패에 반대하는 새로운 보증을 향유했다. 그것이 그들의 "도덕적 위기" 를 만들었다. 그들의 융자 활돌은 위험에 대한 정당한 고려 없이 진행될 것이다.
To understand the Roaring Twenties, then, it is also important to look at the role of the Fed in monetary policy. The average annual increase in the money stock ranged between 7.3 percent and 8.1 percent, for a total increase of between 55 and 61 percent. It was inevitable that this false boom would lead to a bust, first in the most fashionable sector of the economy - the stock market - and spreading through the entire sector.
20 년대의 경제 호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가 통화 정책에서 맡고 있는 역할을 이해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통화량의 연간 증가율은 7.3 퍼센트에서 8.1 퍼센트 사이에서 변동했다. 합계는 55 퍼센트에서 51 퍼센트이다. 이 가짜 경기 호황이 파산을 유발하는 것은 불가피했다. 최초는 경제의 가장 활발한 영역이었고 - 주식 시장 - 곧 모든 영역으로 퍼져 나갔다.
President Hoover in 1930 might have done what was done in 1920: essentially the government didn't try to bail out the system. The Fed wasn't yet in full swing and was actually somewhat reluctant to inflate without limit. Contrary to myth, however, Hoover actually undertook a huge effort to bail out the system using the monetary tools of the time. That they were not effective in doing so was beside the point: he tried to inflate the United States out of recession (in addition to raising taxes, imposing new trade restrictions, and more such interventions).
1930년의 대통령 후버는 1920년에 수행된 것을 수행했을지도 모른다: 본질적으로 정부는 시스템을 구출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는 아직 완성된 버전이 아니었고 사실상 무언가가 끝없이 부풀어오르는 것을 싫어했다. 그러나 신화와는 반대로, 후버는 당시의 금융 수단을 사용해 시스템을 구출하기 위한 노력에 착수했다.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이 효과적이지 않았다는 말은 요점을 빗나가고 있다: 그는 불황 속에서 미국을 부풀게 하려고 노력했다. (나아가 세금을 걷었고, 무역 제한을 도입했고, 더 많은 간섭을 했다.)
Franklin Roosevelt merely followed up on the Hoover antirecession plan, and went even further in destroying the nation's money system. He closed the banks, made private gold ownership illegal, and dealt a massive blow to what was left of the gold standard. The New Deal did not end the Depression. Unemployment was as high before World War II as it was in 1932, and incomes and productivity had actually declined. But the Fed was more powerful than ever, standing ready to fund yet another war.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단지 후버의 경기 부양 계획을 따랐을 뿐이다. 그리고 나라의 돈을 파괴하는 일에 더욱 앞장섰다. 그는 은행들을 폐쇄하고, 사적인 금 소유를 불법으로 하고, 금 본위제의 잔재에 커다란 타격을 입혔다. 뉴딜(New Deal)정책은 대공황을 끝내지 못했다. 실업은 2 차 세계 대전이 촉발되기 전에 이미 1932 년 때만큼 높은 수준이었다. 수입과 생산은 사실상 감소했다. 그러나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했으며, 새로운 전쟁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Since World War II, the U.S. government has expanded its reach with a shocking voraciousness both at home and abroad. It's been one war after another, the building of killer weapons of mass destruction, the construction of a huge welfare state that covers all classes in society. There was the Cold War, the Korean War, the Bay of Pigs, an invasion of the Dominican Republic, Vietnam, and endless involvement in the Middle East in addition to wars on Nicaragua, Salvador, Bosnia, and Haiti, as well as all the wars around the world conducted in the name of the War on Terror. And after every major crisis, whether 9/11, the dot-com disaster of 1999, or the economic meltdown of 2008, the response is more monetary expansion.
2 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 정부는 국내외에서 그것의 권환을 충격적일 정도로 확장시켰다. 그것은 끝이 없는 전쟁, 대량 살상 무기의 제작, 사회의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거대한 복지 국가의 건설이었다. 냉전, 한국 전쟁, 피그만 침공, 도미니카 공화국 침략, 베트남, 그리고 끝 없는 중동에의 간섭, 나아가 니카라과, 살바도르, 보스니아, 아이티에 대한 전쟁,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모든 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9/11, 1999 년의 닷컴 위기, 2008 년의 경제 폭락 등 모든 주요한 경제 위기마다 대안으로 제시된 것은 더 많은 금융 완화였다.
It was once thought that the government had to choose between providing guns or butter. Now, with the Fed, it is realized that no such choice is ultimately necessary. Politicians get together and agree to logroll so that each special interest is able to get what it wants. Guns, butter, and everything else under the sun, including endless bailouts of failing businesses as well as foreign aid for the world, are all provided courtesy of the money machine. Even when the Fed is not providing direct infusions of newly created money, it stands ready to back endless creations of debt year after year, none of which would be worth anything on the free-market bond market if the Fed were not there to guarantee it all.
한때는 정부가 총이나 버터(guns or butter) 중 하나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가 있는 지금, 우리는 그런 선택이 궁극적으로 필요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정치인들은 모이고 의논하여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얻도록 할 수 있다. 총, 버터, 그리고 실패하는 사업들에 대한 끝 없는 구제금융과 대외 원조를 포함하여 태양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은 돈 기계가 제공해 준다. 심지어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가 새롭게 만들어진 돈을 직접적으로 주입하지 않고 있을 때에도, 그것은 해마다 끝 없이 빚을 창조할 때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 이 중 무엇도 자유 거래 채권 시장 -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가 그것을 보증하고 있지 않다면 - 만큼 가치있지 않다.
The Fed is what has made this crisis-response model possible, for without the money machine standing by to provide all the funding that the powerful people need, none of this would be possible. The American people would have to be taxed, and I doubt that they would stand for too many tax increases along these lines. Disguise this tax increase in the form of monetary expansion and you can provide government funding and spread the costs throughout society.
연준이 이 위기 대응 모델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돈 기계가 모든 강력한 이들에게 자금을 제공하기 위해 서 있지 않다면 이 중 어떤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미국인은 세금을 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이런 방법으로 너무나 많은 세금을 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금융 완화의 형태로 세금을 위장해 보라. 그러면 당신은 정부에 자금을 지원하고 그 비용을 사회로 퍼뜨릴 수 있을 것이다.
The Fed is not alone among the failed central banks of the world. The interwar period also created catastrophic hyperinflations in Germany, Austria, Russia, Poland, and Hungary. The promises of the glorious world created by central banking were in tatters. But by then, governments were hooked on the loose-credit drug and would not restore sound money.
연방 준비 제도는 이 세상에서 유일한 실패한 중앙 은행은 아니다. 양자 대전 사이의 기간은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 폴란드, 그리고 헝가리에서도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일으켰다. 중앙 은행에 의해 만들어질 영광된 세계라는 약속은 넝마 조각이 되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정부는 신용을 느슨하게 하는 약물에 빠져 있을 것이고 건전 통화를 복원시키지 않을 것이다.
The longer we delay a conversion to sound money and away from central banking, the worse our crises will grow and the more government will expand at the expense of our liberties.
우리가 건전 통화로의 전환을 늦추고 중앙 은행과 거리를 두는 것을 늦출수록 위기는 더 심화될 것이고 정부의 권위는 우리의 자유를 희생시켜 가면서 더 커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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