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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 The Gold Commission
제 5장. 금위원회
There is no denying that the subject of gold is central to the issue of restoring sound money. That's because gold emerged from within the structure of the market economy as the most important guarantor of the quality of money. It was not chosen by governments but by the market. The reason is easy to understand. Gold has all the qualities that we associate most with good money: divisibility, portability, high value per unit of weight, durability, and uniform quality.
금이라는 주제가 건전 통화를 복원하는 이슈의 중심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금이 돈의 품질의 가장 중요한 보증인으로써 시장 경제의 구조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부에 의해 선택되지 않았다. 시장에 의해 선택되었다. 이유는 이해하기 쉽다. 금은 우리가 좋은 돈에 대해 기대하는 모든 좋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가분성, 이동성, 중량 단위당 큰 가치, 내구성, 균일한 품질.
Whenever I talk of a gold standard, there are always people ready to accuse me of having some obsession or fixation. Fetish is a word thrown around. In fact, I'm only observing reality: the idea of sound money in most of human history has been bound up with gold money. Can there be sound money without a gold standard? In principle, yes. And I'd be very happy for a system that would permit markets to once again choose the most suitable money, whatever that turns out to be. I'm not for government imposing any particular standard: no central bank, no legal tender, no privilege for any commodity chosen as a backing for the currency.
내가 금 본위 제도에 대해 말할 때마다 언제나 나를 강박 관념이나 집착에 빠져 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신 숭배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러나, 나는 현실을 지적하고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인간 역사에서 건전 통화의 아이디어는 금화와 결부되어 있었다. 건전 통화가 금 본위 없이 있을 수 있을까? 원칙적으로는 그렇다. 그리고 나는 시장이 다시 한번 가장 적당한 돈을 찾아낸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매우 행복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나는 어떤 정부가 어떤 특별한 표준을 강제하는 것을 반대한다: 중앙 은행도, 법정 통화도 안 된다. 통화를 뒷받침하는 특권을 갖는 어떤 특별한 상품도 안 된다.
And yet the reality is that the dollar is money, even if the quality of the dollar is very poor. I've always believed that government has a responsibility to restore what it has destroyed. In the late 1970s, many people began to agree. I coauthored with Jesse Helms the legislation that passed in the closing days of the Carter administration to form the Gold Commission. The commission was not organized until after President Reagan took office. Of its seventeen members, Lewis Lehrman and Arthur Costamagna were the only others who were sympathetic to gold. The rest were antigold politicians, Fed members, and Treasury officials.
그러나 현실은 달러의 품질이 매우 빈약함에도 불구하고 달러가 돈이라는 것이다. 나는 항상 정부가 그것이 파괴한 것을 복원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1970년대 말부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기 시작했다. 나는 제시 헬름스(Jesse Helms)와 함께 카터 행정부의 결산일에 통과된 금 위원회의 설립에 대한 법률을 공동으로 집필했다. 대통령 레이건이 취임하고 난 후까지 그 위원회는 조직되지 않았다. 그 17 명의 멤버 중 루이스 레먼(Lewis Lehrman)과 아더 코스타마그나(Arthur Costamagna)만이 금에 호의적이었던 유일한 이들이었다. 나머지는 금을 반대하는 정치가,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 멤버들, 재무부 관리였다.
Secretary of the Treasury Donald Regan was the chairman of the committee and presided over our first meeting on July 16, 1981. Interestingly enough, that first meeting was off the record, without the media, and no minutes were taken. The plan to keep all meetings secret and without minutes was revealed to the public with the help of columnist Bob Novak and others, and there was a bit of a public uproar. Due to public pressure, a vote of the committee membership showed overwhelming support for open hearings.
재무 장관 도날드 레건(Donald Regan)이 위원회의 의장이이었고 1981년 7월 16일에 우리의 첫번째 회의를 주재했다. 충분히 재미있게도, 그 회의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고 미디어 없이 진행되었으며 어떤 순간도 잡히지 않았다. 전체 회의를 비밀로 유지하고 기록 없이 하려는 계획은 특별 기고가 밥 노바크(Bob Nova)와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대중에게 알려졌고 이에 의해 공공의 불만이 있었다. 공공의 압력 때문에, 위원회 회원의 투표는 열린 청문회를 압도적으로 지원하게 되었다.
Henry Reuss, chairman of the House Banking Committee, attended one meeting and left in a rage. He couldn't stand one minute of serious consideration of the importance of gold. Before ownership of gold was made legal once again in the United States, which occurred in 1975, Reus predicted that if it were to occur, gold would drop to $5 an ounce and the "gold bugs" should be happy with the government propping the price up at$35 an ounce. He, of course, had it wrong; it was the artificially low price of gold that was propping up the value of the dollar - at least temporarily.
하원 은행 위원회의 회장인 헨리 로이스(Henry Reuss)는 한 회의에 참석하고 격노했다. 그는 금의 중요성에 대한 1 분의 진지한 고려도 견딜 수 없었다. 금의 소유가 1975 년에 미국에서 다시 한번 합법화되기 이전에, 로이스는 만약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금은 온스당 $5 로 떨어질 것이며 "금 본위제 지지자" 들은 정부가 온스당 $35 를 지불해 준 것에 대해 행복해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는 당연히 틀렸다. 그것은 - 최소한 일시적으로는 - 달러의 가치를 뒷받침해 준 인공적으로 낮춰진 시세였다.
By the time of our first hearing, gold had topped $800 an ounce. Reuss was not in a good frame of mind. He had been given a pro-gold newsletter by an attendee that prompted his outburst. As he left, he crumpled up the newsletter, tossed it, and let out a tirade attacking the commission's purpose. Let it be recorded that though there was little sympathy on the committee for gold, Reuss won the award for being the most hostile to the thought that gold could replace the "wisdom" of the Federal Reserve Board and "wise" chairmen of the Banking Committee.
우리가 첫 번째 청문회를 가질 때 금은 온스당 $800 을 윗돌았다. 로이스는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그는 그의 분노를 폭발시킨 한 참석자에 의해 금을 지지하는 뉴스 레터를 받았었다. 그는 떠나면서 그 뉴스 레터를 구겨서 던져 버렸고 위원회의 목적을 공격하는 긴 비난의 연설을 퍼부었다. 금 위원회를 위한 호의는 거의 없었던 반면, 로이스가 금이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의 "지혜" 와 은행업 위원회의 "현명한" 의장을 대신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장 적대적이었다는 이유로 상을 받았다는 사실은 짚고 넘어가자.
At the time, no one seriously believed we were on the verge of restoring some relationship of the dollar to gold, yet there was deep concern regarding the dollar, inflation, and the very weak economy. The worries were great, but compared to the fear felt today, there's no comparison, and for good reason.
그 때는 아무도 우리가 금과 달러 간의 어떤 관계를 복원해내기 직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거기에는 달러와 인플레이션, 매우 약한 경제에 대한 깊은 우려가 있었다. 그 걱정은 컸다. 그러나 오늘날 느껴지는 공포와 비교한다면, 유사성이나 정당한 이유는 없었다.
In 1981 we had only been operating with the fiat dollar reserve standard for ten years. Today, we've had the imbalances build up for thirty-eight years. In some ways the painful adjustments of the 1970s were helpful for the short term. The need for dollar devaluation was recognized. Fluctuating exchange rates, as disruptive as they were, provided a "market" mechanism that was better tolerated than the pretense of artificially fixed exchange rates. In other words, a token market mechanism was helpful to prop up a very fragile system.
1981 년에 우리는 인가 달러 보존 기준을 10 년간 작동시키고 있을 뿐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38 년 동안 증진된 불균형을 가지고 있다. 어떤 점에서는 1970 년대의 고통스러운 조정은 단기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달러의 평가 절하의 필요성은 인정되었다. 변동 환율제는, 그들이 파괴적이었던 만큼, 인공적으로 고정된 환율이라는 걷치레보다는 "시장" 메카니즘을 더 잘 허용했다. 즉, 명목 화폐 시장 기구는 매우 허약한 시스템을 떠받치는 데 도움이 되었다.
I recall vividly an event following one particular meeting of the Gold Commission at the Treasury Building. The Houston Republican delegation made plans to attend a Republican function in Houston, along with President Reagan. We were to meet Reagan at Andrews Air Force Base and fly on Air Force One to Houston. Due to the commission's hearing at the Treasury Building, which is across the street from the White House, my staff arranged for me to walk across the street and fly with President Reagan on Marine One to Andrews. That way I wouldn't miss any part of the hearings and could still travel to Houston for the Republican meeting.
나는 재무부 건물에서 했던 한 번의 금 위원회 회의가 끝났을 때 생긴 사건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휴스턴 공화당 대표단은 계획을 만들었다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공화당 행사에 참석할 계획이었다. 우리는 레이건을 앤드류스 공군 기지에서 만났고 Air Force One 을 타고 휴스턴으로 날아갔다. 백악관으로부터 거리 건너편에 있는 재무부 건물에서의 청문회 때문에, 내 직원은 내가 거리를 가로질러 걷고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Marine One 으로 앤드류스까지 날아가도록 정해 놓았다. 그 방법으로 나는 청문회의 어느 부분도 놓치지 않고도 공화당 회의룰 위해 휴스턴으로 떠날 수 있었다.
On the helicopter flight to Andrews, the subject of the gold standard naturally came up. "Ron," the President told me, "no great nation that abandoned the gold standard has remained a great nation." He indeed was sympathetic, as he was to many libertarian constitutional ideas, but he was also swayed by staff pressure to be pragmatic on most issues.
앤드류스로 헬리콥터를 타고 비행 하고 있을 때, 금 본위의 주제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론", 대통령이 나에게 말했다. "금 본위제를 버렸던 어떠한 위대한 국가도 위대한 국가로 남아 있지 않다." 그는 정말로 자유주의적이고 헌법주의적인 많은 생각들에 대해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또한 대부분의 주제에 대해 실용적으로 되도록 스태프들로부터 압력을 받았다.
Arthur Costamagna, a friend of Reagan's and a member of the commission signed on our dissenting views with a minor qualification. Lew Lehrman, later to run for governor of New York, signed as well. Then my staff and I scheduled a meeting with the President, the goal of which was to present him a copy and get a photo opportunity. The meeting was scheduled without a specific purpose, and I didn't want to surprise him with my plan. We called back to clarify the intent of the meeting. It wasn't too long after that that we received a call back from the White House staff saying that the meeting was canceled. The presentation and picture taking never occurred.
레이건의 친구이자 위원회의 멤버였던 아더 코스타마그나는 약간의 조건을 달아 우리의 이설에 서명했다. 나중에 뉴욕 시장에 출마한 류 록웰도 서명했다 그 다음 나와 나의 스태프는 대통령과의 회견을 예정했다. 그것의 목표는 그에게 사본을 제공하고 사진 촬영의 기회를 갖는 것이었다. 그 회견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를 내 계획으로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회의의 목적을 명확히 하라는 회신을 받았다. 우리가 백악관 직원으로부터 회견이 취소되었다는 회신을 받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프리젠테이션과 사진 취득은 결코 발생하지 않았다.
I'm sure Jim Baker, and especially Don Regan, made sure that it did not take place. Don Regan, as chairman of the Gold Commission, was the one who demanded the whole series of hearings be kept secret without minutes. The first report was filed March 31, 1982.
짐 베이커(Jim Baker)와 특히 돈 레건은 그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할 것이다. 금위원회의 의장으로써, 돈 레건은 청문회 전체가 기록 없이 진행되기를 요구한 사람이었다. 첫번째 보고서는 1982년 3월 31일 제출되었다.
The political system essentially works this way. Staff, if not perfectly loyal to the philosophy of the officeholder, can block progress. Ultimately, though, the responsibility falls on the officeholder to pick the right staff.
정치적인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이러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직원은, 공무원의 철학에 완전히 충실하지 않으면, 진보를 방해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올바른 직원을 선정할 책임은 공무원에게 떨어진다.
Surviving the 1970s gave the dollar a reprieve and set the stage for one giant financial bubble to be formed over the next twenty-seven years to get us to today. If, as a result of the Gold Commission, we had returned to our senses in 1981, the problems and grave dangers we now face could have been averted.
1970 년대를 살아남은 것은 달러에 집행 유예를 주었고 다음 27 년 동안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거대한 금융 거품을 위한 무대를 만들었다. 만약 금 위원회의 결과로써 우리가 1981 년에 우리의 감각으로 돌아왔더라면 우리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그 문제와 위험들은 비켜갈 수 있었다.
Murray Rothbard argued in his testimony before the commission that it was not the gold standard that caused the Depression of the 1930s;rather, it was the misuse of the gold standard that led up to it. In the closing part of his statement, he urged that if gold were ever to return as a standard, it must be a gold coin standard where citizens have the right to have their paper currency redeemed in gold coins.
머리 로스바드는 위임 전에 그의 증언서에서 1930 년대의 대공황을 야기한 것은 금 본위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오히려, 그것을 이끌어낸 것은 금 본위 제도의 오용이었다. 그의 성명 막바지에, 그는 만약 금이 표준으로 돌아온 적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그들의 지폐를 금으로 환수할 권리가 있는 금화 표준일 거라고 말했다.
Alan Greenspan also testified, and it was a rather decent statement; although he did not call for a gold standard, he advocated issuing treasury bonds that were backed by gold as an interim step in moving in that direction. In 1981, he was not as strong for the gold standard as he was in the1960s, but not as hostile as he became later on.
앨런 그린스펀 또한 증언했다. 그리고 그것은 좀 더 적절한 성명이었다. 그가 금 본위제를 요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금에 의해 뒷받침되는 재무부 채권을 발행하는 것이 그 방향으로 가는 중간 단계라고 말했다. 1981 년대에 그는 금 본위제에 대해 1960 년대의 그만큼 호의적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가 나중에 그랬던 것처럼 적대적이지도 않았다.
Hans Sennholz also submitted a statement to the Gold Commission. He, of course, was a strong supporter of the gold standard, but he was perceptive in not being very optimistic about it occurring in the near future. Sennholz said: "They are indulging in daydreaming when they envision an early return (to the gold standard). The fiat money forces are much too strong and public support for deficit spending yet too powerful to expect the currency reform in the foreseeable future."
한스 센홀츠도 금 위원회에 성명을 제출했다. 그는 물론 금 본위제의 강력한 지지자였다. 그러나 그는 가까운 미래에 그것이 이루어질 거라는 생각에 낙관적이지 않았다. 센홀츠는 말했다: "그들은 이른 복귀(금 본위제로의)에 대해 상상할 때 공상에 탐닉하고 있다 가까운 장래에 통화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하기에는 명목 화폐의 힘이 너무 강하고 초과 지출에 대한 공공의 지원이 너무 강력하다."
Of course, if support for deficit spending was strong in 1981, all we need do is take a look at the pressures today to spend money that we don't have. It will be a while before there's serious consideration for currency reform associated with a restructuring of the worldwide financial system. But the day is fast approaching when it won't be out of choice but out of necessity that we will have to face this issue.
물론, 만약 초과 지출에 대한 지원이 1981 년대에 강했다면, 우리가 해야 하는 모든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 돈을 써대는 오늘날의 압력을 보는 것이다. 그것은 세계적인 금융 제도에 대한 구조 조정과 통화 개혁에 대한 진지한 고려 없이는 한동안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한 것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직면해야 할 불가피한 것이 되는 시기는 빨리 다가오고 있다.
There will be no new Gold Commission, no open discussion regarding gold as money in the current administration. There will be, behind the scenes, the Fed and other elites planning a new system, international in scope and fiat in nature. It will not be smooth sailing, considering the task at hand.
현재의 경영에서는 어떠한 새로운 금 위원회도 없을 것이다. 금을 돈으로 취급하자는 어떠한 열린 논의도 없을 것이다. 무대 뒤에서, 연방 준비 제도와 다른 엘리트들만이 새로운 시스템을 계획하고 있을 것이다. 눈앞에 온 업무를 생각해 보면 그것은 매끄러운 항해가 아닐 것이다.
The countries with the greatest financial and military might will have the most influence, as the United States has had since World War II. Our military might remains supreme. Our economic strength is still first, but the trends tell us that that won't last. Without economic strength and currency superiority, the military might well be steadily diminished. Although we'll not see a second Gold Commission, one more serious than the first, the intellectual fight between fiat money and commodity money will rage, and the winner will decide our economic fate and what kind of society we will be living in.
2 차 세계 대전 이래의 미국이 그러했듯이 가장 큰 금융과 군대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이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질 것이다. 우리의 군사력은 여전히 최고로 남아 있다. 우리의 경제력은 여전히 제일이다. 그러나 트렌드는 그것이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경제력과 통화의 우월 없이는 군사력도 서서히 줄어들 것이다. 비록 우리는 두 번째의 금 위원회를 보지 못하고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명목 화폐와 실물 화폐 간의 지적인 싸움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승자는 우리 경제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고 우리가 미래에 어떤 사회에 살게 될 것일지를 결정할 것이다.
Paul Volcker was called to stop inflation and restore confidence in the dollar in the 1970s, which to a large degree he did. It was in 1982, when the Fed turned on the monetary spigots once again, that we returned to the boom-bust cycles. In some ways, the sophistication of the Fed in controlling necessary corrections created a false sense of security. Many came to believe Greenspan to be a great maestro of the economy; his reputation soared among Republicans and Democrats.
폴 볼커는 인플레이션을 멈추고 1970년대에 달러 신임을 복원하도록 요구받았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했다.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가 다시 한번 금융의 마개를 킨 것은 1982 년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호황-불황 사이클로 돌아왔다. 어떤 점에서는,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가 필요한 정정을 다루는 방법의 정교함은 안전에 대한 잘못된 감각을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린스펀이 위대한 경제의 거장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의 평판은 공화당원들과 민주당원들 사이에서 급등했다.
Many, including Greenspan, believed that a new economic paradigm was upon us. There was a belief that serious economic downturns could be prevented by wise monetary policy. But their "wise monetary policy" had nothing to do with sound money or interest rates and credit being determined by the market. The economic planners literally believed that there would never be a price to pay for inflating a currency, manipulating interest rates, and monetizing debt. In reality, this "sophistication" in managing the economy was merely postponing the inevitable consequences, and it guaranteed they would be much worse.
그린스펀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경제적 패러다임이 우리와 함께 있다고 믿었다. 현명한 금융 정책이 경기 하락을 막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현명한 금융 정책" 은 건전한 통화나 시장에서 결정된 신용과 금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경제의 계획자는 말 그대로 통화를 팽창시키고, 금리를 조작하고, 빚을 주조하는 데 아무런 대가를 지불할 필요가 없다고 믿었다. 실제로는, 경제를 관리하는 이 "정교함" 은 단지 불가피한 결과를 연기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더욱 나쁜 결과를 보장한다.
One of the wonderful products of the Gold Commission was our minority report, which remains in print today. Only three members of the Gold Commission signed it, but the full committee recommended to Congress to mint a gold coin. Since gold was legal to own by Americans once again, this was a concession to the pro-gold supporters around the country. In addition, it was meant to challenge the near monopoly of the South African Kruger and being sold in the United States.
금위원회의 놀라운 작품 중 하나는 아직까지도 프린트되어 남아 있는 우리의 반대 의견서였다. 오직 세 명의 금 위원회 멤버만이 서명을 했지만 모든 위원회원이 의회에 금화를 주조하라는 요청을 했다. 미국인의 금 소유가 다시 합법적인 것이 되었으므로, 이것은 나라 안의 금 지지자들을 위한 양보였다. 또한, 그것은 미국에 팔리고 있는 남아프리카의 South African Kruger 의 독점에 대한 도전을 의미했다.
I argued for a gold coin without a dollar denomination stated as legal tender. I wanted people to think of money as a weight. My ultimate goal is to repeal legal tender laws. It's just as well, though, that I lost that argument, since some are now testing the legal tender status of this coin by forcing it into circulation at face value.
나는 법정 통화로써 간주되는 달러 단위 명칭이 없는 금화에 찬성했다. 나는 사람들이 돈을 무게로 간주하기 바랬다. 나의 궁극적인 목표는 법정 통화 법률을 무효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이제 그것에 액면가를 붙여 순환하게 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주장을 잃게 되었다.
By the time the coin bill was finally passed in 1985, as a result of our effort in the Gold Commission, I was no longer in Congress. I introduced the original bill, but I left Congress at the end of 1984. Later there was a separate bill to mint the Silver Eagle.
금 위원회에서의 우리의 노력 덕분에 1985 년에 동전 법안이 마침내 통과되었을 때, 나는 더 이상 국회에 있지 않았다. 내가 본래의 법안을 소개했지만, 나는 1984 년에 국회를 떠났다. 나중에 은화를 주조하기 위한 다른 법안이 생겼다.
The bill authorized the minting of gold coins in four sizes: 1 ounce, ½ ounce, ¼ ounce, and . The 1 ounce coin was legal tender for $50, the ½ ounce was $25, the ¼ ounce was $10, and the ounce was $5. Do a little bit of arithmetic and you realize the ¼ ounce or $10 coin makes no sense at all. Those who made the final decision on the bill wanted it to be confusing. The one ounce of silver made legal tender for $1 further compounds the problem of defining a dollar when compared to a Federal Reserve note, an old silver dollar, or a Double Eagle.
법안은 4 가지 규모에서 금화의 주조를 승인했다: 1온스, ½ 온스, ¼ 온스. 1온스 동전은 $50을 위한 법정 통화였다, ½ 온스는 $25였다, ¼ 온스는 $10이었다. 그리고 온스는 $5였다. 조금 계산을 해 보라. 그러면 당신은 ¼ 온스가 $10 달러라는 게 전혀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법안에 대해 최종 결정을 한 사람들은 그것이 혼란스럽기를 바랬다. 법정 통화 $1 기로 만들어진 1 온스의 은은 연방 준비 은행권, 오래 된 은 달러나 Double Eagle 과 비교해 볼 때 한층 더 문제를 만들었다.
Making the coins legal tender was ridiculous and nonsensical and was done to guarantee that people wouldn't consider paying a $50 debt with an ounce of gold, nor would they do it with silver dollars.
그 동전을 법정 통화로 만드는 것은 무의미하고 우스꽝스러운 일이었고, 사람들이 1 온스의 금으로 $50 의 빚을 지불하거나 은으로 비슷한 일을 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있었기에 수행되었다.
I always assumed that the IRS would never accept for tax purposes true exchange at the face value of the new coins. But some enterprising and brave constitutionalists challenged this law in Las Vegas and paid the employees in silver and gold coins, and taxes were reported at the much lower level. Many paid no tax due to the lower minimum wage. As expected, it was challenged in court, and miraculously, litigants "won" their case in a hung jury. The silliness of our legal tender laws and the impossibility of defining a "dollar" convinced the jury that those charged did not commit fraud and it was the confusion of the law that was at fault.
나는 항상 IRS 가 동전의 액면가로 거래되는 거래의 양으로 세금을 받는 것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진취적이고 용감한 일부 헌법주의자들은 라스베가스에서 이 법률에 도전했고 종업원들에게 금과 은 코인으로 임금을 지급했다. 그러자 세금은 훨씬 낮아졌다. 많은 이들은 기준 임금보다 낮았기 때문에 어떤 납세액도 지불하지 않았다. 예상했듯이, 그것은 법정에서 도전받게 되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피고는 불일치 배심에서 "이기게" 되었다. 우리 통화 법률의 어리석음과 "달러" 라는 정의의 불분명함은 배심원들이 피고가 사기를 저지른 것이 아니며 잘못된 것은 법의 불분명함이라고 믿게 했다.
We have not yet heard the final word in this challenge. I'm delighted it's being fought, and any favorable precedent may be helpful if an economic breakdown occurs and a lot more people do the same thing. But courts, as they did in the Civil War and the 1930s, have always ruled in favor of the tyrants when push comes to shove in dealing with the money issue. My bet is the government will not permit the use of new gold and silver bullion coins, that is, until the End the Fed revolution comes to fruition.
우리는 아직 이 도전에서 마지막 말을 듣지 못했다. 나는 그것이 싸우고 있다는 것이 즐겁다. 그리고 어떤 유리한 선례든 경제가 붕괴하고 많은 사람들이 같은 일을 하기 시작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그들이 내전과 1930 년대에 그랬듯이, 돈 문제를 다룰 때 항상 폭군의 편을 들었다. 나의 예상은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를 끝내는(End the Fed) 혁명이 성공하기 전까지는 정부가 새로운 금, 은 동전을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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