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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The Origin and Nature of the Fed
제 2장.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의 기원과 성질
Most Americans haven't thought much about the strange entity that controls the nation's money. They simply accept it as though it has always been there, which is far from the case. Visitors to Washington can see the Fed's palatial headquarters in Washington, D.C., which opened its doors in 1937. Tourists observe its intimidating appearance and for-bidding structure, the monetary parallel to the Supreme Court of the capital of the United States.
대부분의 미국인은 국가의 돈을 통제하는 이상한 존재에 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마치 그것이 항상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그들은 단순히 그것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과 거리가 멀다. 워싱턴의 방문자는 워싱턴시에서 1937 년에 만들어진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 본부 건물을 볼 수 있다. 관광객은 미국 수도의 대법원과 유사한 그 위협적인 외관과 무서운 구조를 관찰한다.
People know that this institution has an important job to do in managing the nation's money supply, and they hear the head of the Fed testify to Congress, citing complex data, making predictions, and attempting to intimidate anyone who would take issue with them. One would never suspect from their words that there is any mismanagement taking place. The head of the Fed always postures as a master of the universe, someone completely knowledgeable and completely in control.
사람들은 이 기관이 나라의 돈을 공급하는 중요한 역할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연준의 대표가 의회에 증언하고, 복잡한 데이터를 증언하고, 예상을 만들고, 누구든 그들을 문제삼는 이들을 협박하려고 시도하는 것을 듣는다. 사람들은 그들의 말로부터 무언가 잘못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의 대표는 항상 박식하고 통제력이 뛰어난 세계의 지배자와 같은 자세를 취한다.
But how much do we really know about what goes on inside the Fed? With the newest round of bailouts, even journalists have a difficult time running down precisely where the money is coming from and where it is headed. From its founding in 1913, secrecy and inside deals have been part of the way the Fed works.
그러나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연준의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는가? 최근의 긴급 구제금융에서, 심지어 저널리스트조차 정확히 어디서 어디로 돈이 이동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1913년 그것이 개설된 이래 비밀주의와 내부 거래는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이었다.
Part of the public relations game played by the chairman of the Fed is designed to suggest that the Fed is an essential part of our system, one we cannot do without. In fact, the Fed came about during a period of our nation's history called the Progressive Era, when the income tax and many new government institutions were created. It was a time in which business in general became infatuated with the idea of forming cartels as a way of protecting profits and socializing losses.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가 우리 시스템의 필수적인 부분임을 암시하기 위해 일종의 홍보 게임이 연준의 의장에 의해 이루어진다. 사실,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는 소득세가 생기고 많은 새로운 정부 기관이 만들어진 진보주의의 시대라고 불리는 기간에 생겨났다. 그것은 비즈니스가 일반적으로 이익을 보호하고 손실을 사회화하는 방법으로써 카르텔 만들기에 매료되어 있던 시기 안에 있었다.
The largest banks were no exception. They were very unhappy that there was no national lender of last resort that they could depend on to bail them out in times of crisis. With no bailout mechanism in place, they had to sink or swim on their own merits. What was more, following the Civil War, American presidents worked to implement and defend the gold standard, which put a brake on the ability of the largest banks to expand credit without limit. The gold standard worked like a regulator in this way. Ultimately, banks had to function like every other business. They could expand and make risky loans up to a point, but when faced with bankruptcy, they had no-where to turn. They would have to contract loans and deal with extreme financial pressures. Risk bearing is a wonderful mechanism for regulating human decision making. This created a culture of lending discipline.
가장 큰 은행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은 위기 때 그들을 구제해 줄 수 있는 국가적인 최종 대출자가 없다는 사실에 불행을 느끼고 있었다. 긴급 구제의 메카니즘이 없으면 그들은 가라앉거나 그들 자체의 가치에서 발버둥쳐야 했다. 더군다나, 내전 후에, 미국 대통령들은 은행의 현금을 무한히 확장하는 능력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금 본위제를 이행하고 방어하기 위해 일하고 있었다. 금 본위제는 이런 식으로 규제와 같이 작동했었다. 궁극적으로 은행은 다른 모든 비즈니스들처럼 기능해야만 했다. 그들은 확장할 수 있었고 위험한 대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파산에 직면하면 그들은 돌아갈 길이 없었다. 그들은 계약 대출을 해야 할 것이고 극단적인 금융 압박을 받을 것이다. 위험 부담은 인간의 의사 결정을 통제하는 놀라운 메카니즘이다. 이것은 대출 규율의 문화를 만들었다.
In the jargon of the day, the system lacked "elasticity." That's another way of saying that banks couldn't expand money and credit as much as they wanted. They couldn't inflate without limit and count on a centralized institution to bail them out. This agenda fit well with a growing political movement at the turn of the twentieth century that favored inflation (sometimes summed up in the slogan "Free Silver") as a means of relieving the debt burden of farmers. The cause took on certain populist overtones, and many people began to believe that an elastic money supply would help the common man. They identified the gold standard as a system favored by large banks to keep credit tight. Even today, many writers on the Fed mistakenly believe that the central bank and the largest banks are working to keep credit tight in their own interest.
오늘날의 전문 용어로, 시스템은 "유동성" 이 부족했다. 그것은 이 은행들이 그들이 원하는 만큼 신용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말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그들은 끝 없이 확장할 수 없었고 그들을 구제해 줄 집중화된 기관에 의지할 수 없었다. 이 안건은 농민의 밎을 덜어 준다는 의미에서 20 세기에 성장한 인플레이션을 지지하는 ( 종종 "자유 은화" 라는 슬로건으로 요약된다. ) 정치적인 움직임에 잘 맞는다. 이 주장은 특정한 포퓰리스트의 주장을 포함하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은 화폐 유동성이 평범한 사람들을 도울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금 본위 제도를 거대 은행들이 신용을 단단하게 해 두기 위해 좋아하는 시스템이라고 정의했다. 심지어 지금조차도 연준에 대해서 쓰는 많은 사람들은 중앙 은행과 큰 은행들이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신용을 단단하게 해 두려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Even the Fed itself claims that part of its job is to keep inflation in check. This is something like the tobacco industry claiming that it is trying to stop smoking or the automobile industry claiming that it is trying to control road congestion. The Fed is in the business of generating inflation. It might attempt to stop the effects of inflation, namely, rising prices. But under the old definition of inflation - an artificial increase in the supply of money and credit - the entire reason for the Fed's existence is to generate more, not less, of it.
나아가 연방 준비 제도 스스로도 그것의 역할 중 하나가 인플레이션을 적당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담배 산업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그만두게 하려 한다거나 자동차 산업이 도로 혼잡을 통제하려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도 같다.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 자체가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사업이다. 그것은 가격 인상이라는 이름의 인플레이션의 효과를 멈추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의 오래된 정의 하에서- 돈과 신용 공급의 인공적인 증가 - 연방 준비 제도의 존재 이유는 더도 덜도 아니고 더 많은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것이다.
What the largest banks desire is precisely what we might expect any large corporation to desire: privatized profits and socialized losses. The privatized profits come from successful loan activities, sometimes during economic booms. But when the boom turns to bust, the losses are absorbed by third parties and do not affect the bottom line. To cover losses requires a supply of money that stretches to meet bankers' demands. This is something that every industry would like if they could get it. But it is something that the free market denies them, and rightly so.
가장 큰 은행들이 원하는 것은 정확히 큰 회사들이 원할 거라고 기대되는 것과 같다: 이익을 민영화하고 손실을 사회화하는 것. 민영화된 수익은 때때로 경제 호황 기간의 성공적인 대출 활동으로부터 발생한다. 그러나 붐이 파산으로 변할 때, 손실은 제삼자에 의해 부담되고 문제의 핵심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손실을 감추는 일은 은행가 마음대로 늘릴 수 있는 돈의 공급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모든 산업이 만일 얻을 수 있다면 얻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유 시장이 부정하는 것이고,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The banking industry has always had trouble with the idea of a free market that provides opportunities for both profits and losses. The first part, the industry likes. The second part is another issue. That is the reason for the constant drive in American history toward the centralization of money and banking, a trend that not only benefits the largest banks with the most to lose from a sound money system, but also the government, which is able to use an elastic system as an alternative form of revenue support. The coalition of government and big bankers provides the essential backbone of support for the centralization of money and credit.
금융업은 항상 이익과 손실의 기회를 둘 다 제공하는 자유 시장의 아이디어 앞에서 고생해 왔다. 산업은 첫째 부분을 좋아한다. 두 번째 부분은 이야기가 다르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역사가 화폐와 금융의 집중화로 변화해 온 이유이다. 이것은 건전한 화폐 시스템으로 인해 가장 큰 손해를 보는 큰 은행들 뿐 아니라, 다른 세입의 형태로 화폐 유동성을 이용할 수 있는 정부에게도 이익이 되는 하나의 트렌드이다. 정부와 큰 은행가의 연합은 금융의 집중화를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If we look at banking history, we see that the drive for centralization of power dates back centuries. Whenever instability turns up, so do efforts to socialize the losses. Rarely do people ask what the fundamental source of instability really is. For an answer we can turn to a monumental study published in 2006 by Spanish economist Jesus Huerta de Soto. He places the blame on the very institution of fractional-reserve banking, the notion that depositors' money currently in use as cash may also be loaned out for speculative projects and then redeposited. The system works so long as people do not attempt to withdraw all their money at once, as permitted to them in the banking contract. Once they do attempt this, the bank faces a choice to go bankrupt or suspend payment. In the face of such a demand, a bank turns to other banks to provide liquidity. But when the failure becomes system wide, it turns to the government.
은행업의 역사를 볼 때, 우리는 이전 세기에 있었던 중앙 집권에의 충동을 보게 된다. 불안정성이 나타날 때마다, 손실을 사회화하려는 노력 또한 나타났다. 가끔 사람들은 불안정성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에 관해 묻는다.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스페인의 경제학자 헤수스 웨르타 데 소토(Jesus Huerta de Soto)에 의해 2006 년 출판된 기념비적 연구로 돌아가 볼 수 있다. 그는 부분지급준비제도 (현재 현금으로 사용중인 예금자의 돈이 동시에 투기적인 프로젝트를 위해 대출되어 재예금될 수 있는 개념) 자체를 비난의 대상으로 한다. 그 시스템은 사람들이 은행 계약에서 허가되어 있듯이 모든 돈을 한번에 인출하려고 하지 않는 이상 작동한다. 그들이 이것을 시도하면, 은행은 파산 또는 지불 정지의 선택에 직면한다. 그런 수요에 직면하면, 은행은 유동성을 제공받기 위해 다른 은행에 의존한다. 그러나 시스템이 광범위하게 실패할 경우 그 대상은 정부가 된다.
The core of the problem is the conglomeration of two distinct functions of a bank. The first is the warehousing function, the most traditional function of a bank. The bank keeps your money safe and provides services such as checking, ATM access, record keeping, and online payment methods. These are all part of the warehousing services of the bank, and they are services for which the consumer is traditionally asked to pay (unless costs can be recouped through some other means). The second service the bank provides is a loan service. It seeks out investments such as commercial ventures and real estate and puts money at risk in search of a rate of return. People who want their money put into such ventures are choosing to accept risk and hoping for a return, understanding that if the investments do not work out, they lose money in the process.
문제의 중심이 되는 것은 은행에 두 상이한 기능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하나는 은행의 가장 전통적인 기능인 보관의 기능이다. 은행은 돈을 안전하게 해 주고 서비스, 예컨대 장부 대조, ATM 접근, 기록의 보수와 온라인 지불 방법 같은 것들을 제공한다. 이것들은 모두 보관 기능의 일부분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전통적으로 지불할 것을 요청받는 서비스이다 ( 비용이 다른 수단을 통해 보충될 수 있지 않는 한 ). 은행이 제공하는 두 번째 서비스는 대출 서비스이다. 그것은 벤처나 부동산 등의 투자를 찾고 수익을 기대하며 위험을 감수하고 돈을 투자한다. 돈을 그런 벤처에 투자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위험을 받아들이고, 투자가 성공하지 않으면 그들은 그 과정에서 돈을 잃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한 상태에서 돈을 되찾기를 기대한다.
The institution of fractional reserves mixes these two functions, such that warehousing becomes a source for lending. The bank loans out money that has been warehoused and stands ready to use in checking accounts or other forms of checkable deposits, and that newly loaned money is deposited yet again in checkable deposits. It is loaned out again and deposited, with each depositor treating the loan money as an asset on the books. In this way, fractional reserves create new money, pyramiding it on top of a fraction of old deposits. Depending on reserve ratios and banking practices, an initial deposit of $1,000, thanks to this "money multiplier," turns into deposits of $10,000. The Fed depends heavily on this system of fractional reserves, using the banking system as the engine through which new money is injected into the economy as a whole. It adds reserves to the balances of member banks in the hope of inspiring ever more lending.
부분 준비 제도를 사용하는 기관은 준비금이 대출이 될 수 있도록 이 두 가지 기능을 섞는다. 은행은 예금된 돈을 빌려주고 예금 계좌나 다른 형태의 결제성 예금을 사용할 준비를 한다. 그 새롭게 대출된 돈은 결제성 예금으로 재예금된다. 그것은 각 예금자가 그 대출금을 자산으로 기록하고 있을 때 동시에 다시 대출되고 예금된다. 이런 식으로 부분 준비금 제도는 오래된 예금의 일부분을 피라미드처럼 쌓아올려 새로운 돈을 만든다. 준비율과 은행업의 실행에 따라 $1000 의 계약금은 이 "화폐 승수" 덕분에 $10000 의 예금으로 바뀌게 된다.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는 은행 시스템을 새로운 돈을 경제에 투입하는 방법으로 사용하면서 이 부분 준비 시스템에 깊게 의존하고 있다. 그것은 더 많은 대출을 불러일으키기를 기대하면서 준비금을 가맹 은행의 잔금에 추가한다.
From the depositor point of view, this system has created certain illusions. As customers of the bank, we tend to believe that we can have both perfect security for our money, drawing on it whenever we want and never expecting it not to be there, while still earning a regular rate of return on that same money. In a true free market, however, there tends to be a tradeoff: you can enjoy the service of a money warehouse or you can loan your money to the bank and hope for a return on your investment. You can't usually have both. The Fed, however, by backing up this fractional-reserve system with a promise of endless bailouts and money creation, attempts to keep the illusion going.
예금자 관점에서 보면, 이 시스템은 특정한 환각을 창조해 냈다. 은행의 고객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돈에 대해 원한다면 언제든 다시 불러올 수 있는 완전한 보안과 일정량의 이자 수익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진실된 자유 거래 시장에는, 트레이드 오프의 경향이 있다: 당신은 돈을 보관하는 서비스를 누릴 수 있고, 또는 당신의 투자금을 돌려받기를 기대하면서 은행에 대출을 해 줄 수 있다. 보통은 양쪽 모두를 가질 수는 없다. 그러나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는, 끝 없는 구제 금융과 화폐 창조의 약속을 통해 부분 준비 시스템을 뒷받침함으로써 이 환각이 지속되게 하려고 하고 있다.
Even with a government-guaranteed system of fractional reserves, the system is always vulnerable to collapse at the right moments, namely, when all depositors come asking for their money in the course of a run (think of the scene in It's a Wonderful Life). The whole history of modern banking legislation and reform can be seen as an elaborate attempt to patch the holes in this leaking boat. Thus have we created deposit insurance, established the "too big to fail" doctrine, created schemes for emergency injections, and all the rest, so as to keep afloat a system that is inherently unstable.
심지어 정부가 보증한 부분 준비 시스템이 함께 있더라도, 이 시스템은 항상 특정한 순간, 말 그대로 모든 예금자가 그들의 돈을 요구할 때 (멋진 인생<It's a Wonderful Life> 의 한 장면을 생각해 보라.) 에 취약하다. 현대의 모든 은행 법률과 개혁의 역사는 이 새고 있는 보트의 구멍을 메우려는 정교한 시도로 보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금 보험을 만들고, "실패하기에는 너무 큰" 것이라는 독트린을 만들고, 긴급 구제의 계획을 세우고, 그 외에도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시스템을 떠받치기 위해 모든 일들을 해 왔다.
What I've described is a telescoped version of several hundreds of developments, but it accurately explains the continued drive to push forward with money that is infinitely elastic and with banking institutions that are guaranteed through government legislation not to fail, that is, central banking as we know it. Just so that we are clear: the modern system of money and banking is not a free-market system. It is a system that is half socialized - propped up by government - and one that could never be sustained as it is in a clean market environment. And this is the core of the problem.
내가 묘사한 것은 수백 가지가 넘는 발달을 조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한 유동성을 가진 돈과 정부에 의해 실패하지 않을 거라고 보장된 은행 기관 - 즉 우리가 알고 있듯이 중앙 은행이라고 하는 것 - 을 지지하는 지속적인 흐름을 정확히 설명해 준다. 간단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하자면 이렇다: 현대의 금융 시스템은 자유 시장 체제가 아니다. 그것은 깨끗한 시장 환경에서는 결코 유지될 수 없는 정부에 의해 떠받쳐지는 반쯤 사회화된 시스템이다. 그리고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In examining the history of the Fed in particular, we must start far back in the story, since fractional-reserve banking had already become part of established banking practices in the nineteenth century, a fact that goes a very long way to explain the source of periodic instability.
연준의 역사에 대한 점검에서 특히 주기적인 불안정성의 근원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이야기의 매우 앞 부분, 즉 부분 준비금 제도가 이미 확립된 은행업의 방식이 되었던 19 세기로 되돌아가야 한다.
The story can be said to begin in 1775, when the Continental Congress issued a paper money called the continental, as in "not worth a continental." The currency was inflated to the point of disaster, and price controls didn't come close to working to stop it. This was the first great hyperinflation in U.S. history, and it gave rise to a hard-money school of thought that would agitate against central banking and paper money for many generations since. It also explains why the Constitution placed a ban on paper money and permitted only gold and silver as money.
이야기는 대륙의 국회에서 대륙폐라고 불리던 지폐가 "대륙폐만도 못한(not worth a continental)" 이라는 말로 이슈화 되었던 1775 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통화 유통량은 재난이 있을 때 팽창했고 가격 통제는 그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것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하이퍼 인플레이션이었고 그것은 많은 세대 동안 중앙 은행과 화폐를 반대하는 정치 운동을 해 왔던 경화 학교를 부흥시켰다. 그것은 또한 왜 헌법이 지폐를 금지하고 오직 금과 은만을 돈으로 허락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In 1791, the First Bank of the United States was chartered, and in 1792, Congress passed the Coinage Act recognizing the dollar as the national currency, the original of which dates back to the 1400s with the German coin, the thaler. Fortunately, the charter of the incipient central bank was not renewed and it expired in 1811.
1791년, 미합중국 제 1 은행이 허가되었고 1792년, 의회는 1400 년대의 독일의 국민 통화였던 탈러에 기원을 두는 달러를 국민 통화로 인정한 화폐 주조법을 통과시켰다. 다행히도, 초기 중앙 은행의 허가증은 갱신되지 않았고 그것은 1811년에 만기가 되었다.
In 1812, with war raging between Britain and the United States, the government issued notes to finance the conflict, resulting in suspensions of payment as well as inflation. Inflation during wartime is something you might expect, but instead of permitting normal conditions to return, Congress chartered the Second Bank of the United States in 1816. The bank aided and abetted ever more expansion and the creation of a boom-bust cycle.
1812년에, 미국과 영국 사이의 전쟁이 있었을 때, 정부는 재정에 어음을 지금했고 인플레이션뿐만 아니라 은행의 지불 정지를 초래했다. 전쟁 동안의 인플레이션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대신, 국회는 1816년에 미국의 두 번째 중앙 은행을 허가했다. 은행은 더 많은 확장과 호황-불황 순환의 창조를 돕고 교사했다.
The nineteenth-century American banking theorist Condy Raguet explains:
제 19 세기의 미국 은행 이론가인 콘디 라게트(Condy Raguet)는 설명한다:
Those who can remember the events of that period will not have forgotten the abuse of the public forbearance exhibited by them upon that occasion. The sanction of the community was extended to them during the continuance of the war then existing with Great Britain, on account of the belief that their condition was forced upon them by the peculiar circumstances of the country; but no sooner had peace returned in the early part of 1815, than all their pledges were violated, and instead of manifesting by their actions a desire to contract their loans so as to place themselves in a situation for complying with their obligations, they actually expanded the currency by extraordinary issues, whilst there was no existing check upon them, until its depreciation became so great that speculation and overtrading in all their disastrous forms, involved the country in a scene of wretchedness, from which it did not recover in ten years.
그 기간에 일어난 일들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그 기회에 그들에 의해 전시된 공공 자제의 남용을 잊지 않을 것이다. 공동체의 금융 제재 조치는 그들의 상태가 국가의 특정한 상태 때문에 강요되었다는 믿음 때문에 전쟁이 지속될 동안 연장되었고 대영 제국과 함께 존재했다. 그러나 1815 년 평화가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의 모든 공약은 위반되었으며, 그들은 책임감을 갖고 대출을 억제하려 하는 열망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대신 이상한 주장으로 사실상 유동성을 더 늘렸다. 결국 화폐 가치 하락이 너무나 강력해져서 나라의 비참한 모습을 포함하여 치명적인 형태의 투기와 자금 초과 거래가 10 년동안 회복되지 않을 때까지 그들 사이에서는 그것에 대한 어떠한 조사도 없었다.
Finally, the inevitable downturn occurred with the Panic of 1819. This panic ended peacefully precisely because nothing was done to stop it. Jefferson pointed out that, in any case, the panic was only wiping out wealth that was entirely fictitious to begin with. Today this panic is but a footnote in the history books. After massive political agitation, and following Andrew Jackson's executive order that withdrew the federal government's deposits from the bank, the Second Bank was also allowed to be closed in 1836.
결국, 불가피한 경기 침체는 1819 년의 패닉으로 발생했다. 그 패닉은 그것을 멈추기 위한 어떠한 일도 취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평화롭게 끝났다. 어쨌든, 제퍼슨이 지적했듯이, 그 패닉은 오직 처음부터 가공의 것이었던 부만을 청산하고 있었다. 오늘날 이 공포는 역사 책에 각주로만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방대한 정치적인 흔들림과, 연방 정부의 예금을 은행으로부터 인출한 앤드류 잭슨의 실행 명령 후에, 두 번째 중앙 은행 역시 1836 년에 닫혔다.
The war between North and South set off another round of inflationary finance, however, eventually killing off wartime currencies and prompting another deflation after the war. This set the stage for a gold standard to be established that was solid but not perfect. It was the existence of flaws - banks were permitted fractional reserves and were beginning to rely on more and more regulations to dampen competition - that created the dynamic that led to the Federal Reserve.
남북 전쟁은 인플레이션 금융의 또 다른 도전을 초래했지만, 결국 전쟁 후에는 전시 통화의 절멸과 또 다른 디플레이션을 초래했다. 이것은 금 본위 제도가 단단하지만 완벽하지는 않다는 것을 입증한다. 그것은 결함이 있는 존재였다. - 은행은 부분 준비금을 허가했고 점점 더 경쟁을 약화시키는 규정에 의지하고 있었다. - 그것이 연방 준비 제도를 유발하는 동력을 만들었다.
The ostensible impetus for the creation of the Federal Reserve was the banking panic of 1907, but the drive, as mentioned, began long before. Jacob Schiff, head of Kuhn, Loeb, & Co., gave a speech in 1906 that actually began the push for a European-style central bank. He explained that the "country needed money to prevent the next crisis." He worked with his partner Paul Moritz Warburg and Frank A. Vanderlip of the National CityBank of New York to create a new commission that would deliver a report to the New York Chamber of Commerce in 1906. It called for a "central bank of issue under the control of the government." They began to work within other organizations to push the agenda, winning over the American Banking Association and many important players in government.
연방 준비 제도의 창조를 도운 표면적인 자극은 1907 년의,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오래 전에 시작되었던 패닉이었다. 쿤 레이브 상회(Kuhn Loeb & Co)의 대표인 제이콥 쉬프(Jacob Schiff)는 1906 년에 사실상 유럽 스타일의 중앙 은행을 지지하기 시작한 연설을 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다음 위기를 막기 위해 국가는 돈을 필요로 했다." 그는 1906 년에 뉴욕상공회의소(New York Chamber of Commerce)에 리포트를 배달할 새로운 위원회를 만들기 위해 시티은행(National CityBank)의 그의 파트너 파울 모리츠 바르부르크(Paul Moritz Warburg) 와 프랭크 밴더립(Frank A.Vanderlip)와 함께 일했다. 그것은 "정부의 통제하에 있는 중앙 발행 은행" 을 요구했다. 그들은 안건을 밀기 위해 다른 조직 속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정부에서 미국 은행 협회(American Banking Association) 와 많은 중요한 선수를 그들 편으로 끌어들였다.
Once the groundwork was laid, the crisis atmosphere of 1907 assisted greatly in creating the conditions that led to the founding of the Fed. It was a brief contraction, but during it many banks suspended specie payments, that is, they stopped paying out gold to depositors until the crisis passed. This led to a consolidation of opinion in favor of a general guarantor of all deposits.
기초 작업이 완료되자, 1907 년의 위기감은 연준의 개설을 위한 조건을 만드는 것을 도와 주었다. 그것은 간단한 긴축이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많은 은행들은 지불을 연기했다, 즉, 그들은 위기가 지나갈 때까지 예금자들에게 금을 지급하는 것을 멈추었다. 모든 예금의 일반 보증인들을 위한 의견의 통합을 유발했다.
A point we learn from this event and every other banking panic in U.S. history is that crises have always led to greater centralization. A system that is mixed between freedom and the state is a shaky system, and its internal contradictions have been resolved not by tending toward a free market but rather through a trend toward statism. It is not surprising, then, that academic opinion swung in favor of central banking, too, with most important economists - having long forgotten their classical roots - seeing new magic powers associated with elastic money.
우리가 미국 역사의 이 이벤트와 다른 모든 은행업 공포로부터 배우는 것은 위기가 항상 더 큰 집중화를 유발했다는 것이다. 자유와 국가 통제 사이에 있는 시스템은 불확실한 시스템이다. 그리고 그것의 내부적인 모순은 자유 시장보다는 국가 통제에 가까운 방식으로 해결되는 경향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경제학자들 - 오랫동안 그들의 고전적인 뿌리를 잊어버린 - 이 유동적인 돈과 결합한 새로운 마법적인 힘을 보았을 때 학계의 의견이 중앙 은행을 편들었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In 1908, Congress created a National Monetary Commission to look into the general idea of banking reform. The commission was staffed mostly by people close to the largest banks: First National Bank of New York, Kuhn, Loeb, Bankers Trust Company, and the Continental National Bank of Chicago. The NMC traveled around Europe and returned to the United States to continue the propaganda.
1908 년, 국회는 은행 개혁의 일반적인 아이디어를 조사하기 위해 국가 화폐 위원회(National Monetary Commission)를 만들었다. 그 위원회는 주로 가장 큰 은행들과 친한 사람들을 직원으로 두고 있었다: 뉴욕 제 1 국법은행(First National Bank of New York), 쿤 레이브, 뱅커스 트러스트 컴퍼니(Bankers Trust Company), 그리고 Continental National Bank of Chicago. 국가 화폐 위원회는 유럽을 여행하고 선전을 계속하기 위해 미국으로 돌아왔다.
By 1909, President William Howard Taft had already endorsed a central bank, while the Wall Street Journal ran a fourteen-part series on the need for a central bank. The un-signed series was written by an NMC member, Charles A. Conant, who was the commission's chief public relations man. The series made all the usual arguments for elasticity but added several additional functions that the central bank could play, including manipulating the discount rate and gold flows as well as actively bailing out failing banks. What followed was a series of public speeches, pamphleteering, scholarly statements, political speeches, and press releases by merchant groups.
1909 년까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William Howard Taft) 대통령은 월 스트리트 저널이 중앙 은행 시스템의 필요를 역설하는 열 네 번째 시리즈를 쓰고 있을 때 이미 중앙 은행을 보증했다. 그 무서명의 시리즈는 위원회의 주요한 홍보 활동을 담당했던 국가 화폐 위원회 멤버 찰스 코난트(Charles A. Conant)에 의해 씌여졌다. 그 시리즈는 유동성이 실패한 은행에 구제 금융을 하거나 할인과 금의 흐름을 조작하는 등 중앙 은행에 몇 가지 추가적인 기능들을 더할 수 있다는 모든 흔한 주장들을 만들었다. 뒤이어 계속되었던 것은 일련의 공개 연설, 팜플렛 뿌리기, 학술적인 성명, 정치적인 연설과 상인 그룹에 의한 보도 자료였다.
By November 1910, the time was right for drafting the bill that would become the Federal Reserve Act. A secret meeting was convened at the coastal Georgia resort called the Jekyll Island Club, co-owned by J. P. Morgan himself. The press said it was a duck-hunting expedition. Those who attended took elaborate steps to preserve their secrecy, but history recorded precisely who was there: John D. Rockefeller's man in the senate, Nelson Aldrich, Morgan senior partner Henry Davison, German emigre and central banking advocate Paul Warburg, National City Bank vice president Frank Vanderlip, and NMC staffer A. Piatt Andrew, who was also Assistant Secretary of the Treasury to President Taft.
1910년 11월, 그건 연방 준비법이 될 법안의 초안이 작성되던 시기였다. 비밀 회의는 Jekyll Island Club (J.P.Morgan 그 자신이 소유한) 라고 불리는 해안의 조지아 리조트에서 소집되었다. 보도진은 그것이 오리-수렵 원정이라고 말했다. 주의를 기울인 사람들은 그들의 보안을 지키기 위해 움직였다. 그러나 역사는 정확히 누가 거기에 있었는지 기록하고 있다. 상원의 존 데이비드 록펠러(John D.Rockefeller)의 남자, 넬슨 올드리치(Nelson Aldrich), 모건 선임 파트너 헨리 데이비슨(Henry Davison), 독일의 이주자이자 중앙 은행 옹호자인 파울 바르부르크, 시티은행 부통령 프랭크 밴더립, 그리고 동시에 대통령 태프트(Taft)의 재무부 장관이기도 했던 국가 화폐 위원회 직원 피아트 앤드류(Piatt Andrew).
So we had two Rockefellers, two Morgans, one Kuhn, Loeb person, and one economist. In this group, we find the essence of the Fed: powerful bankers with powerful government officials working together to have the nation's money system serve their interests, justified by economists thereto provide the scientific gloss. It has been pretty much the same ever since.
그러므로 우리는 두 록펠러, 두 모건, 한 쿤 레이브의 사람과 1명의 경제학자를 볼 수 있다. 이 그룹에서, 우리는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의 본질을 발견한다: 강력한 은행가와 강력한 정부 관료가 나라의 돈 시스템이 그들의 관심을 위해 봉사하도록 함께 일하며, 그것이 과학적이라는 허상을 제공하기 위해 경제학자들로 정당화되는 곳. 그것은 그 때 이후로 달라진 게 없다.
They worked in secrecy for a full week. The structure of the Federal Reserve was proposed at this meeting. It was not to be a European-style central bank - or rather, it would be, but the structure would be different. It would be "decentralized" into twelve member banks, providing something of a cover for the cartelization that was actually taking place. The full plan was presented to the National Monetary Commission in 1911. Then the propaganda was really stepped up, with newspaper editorials, phony citizens' leagues, and endorsements from trade organizations. The next step was to remove the Republican partisanship from the bill and replace it with a bipartisan appearance, and the bill passed.
그들은 한 주 동안 비밀로 작업했다. 연방 준비 제도의 구조는 이 회의에서 제안되었다. 그것은 유럽 스타일의 중앙 은행이 아니었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구조는 달랐다. 그것은 실제로 발생하고 있었던 카르텔을 은폐하기 위해 12 개의 가맹 은행들로 분산되어 있었다. 전체 계획은 1911 년에 국가 화폐 위원회에 제공되었다. 그리고 선전은 신문 논설, 위조된 시민 단체, 전통적인 조직의 위조 등과 함께 정말로 촉진되었다. 다음 단계는 법안으로부터 공화주의적인 입장을 제거하고 그것을 양당의 모습으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법은 통과되었다.
The essence of the Federal Reserve Act was largely un-changed from when it was first hatched years earlier. With a vote by Congress, the government would confer legal legitimacy on a cartel of the largest bankers and permit them to inflate the money supply at will, providing for themselves and the financial system liquidity in times of need, while insulating themselves against the consequences of bad loans and overextension of credit.
연방 준비법의 본질은 처음 만들어졌던 때로부터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국회의 투표로 정부는 법적인 정당성을 가장 큰 은행가들의 카르텔에 줄 것이고, 그들이 화폐의 지나친 발행과 나쁜 대출의 위험로부터 보호받는 동안 원하는 만큼 화폐 유동성을 확장시킬 것을 허가할 것이다.
Hans Sennholz has called the creation of the Fed "the most tragic blunder ever committed by Congress. The day it was passed, old America died and a new era began. A new institution was born that was to cause, or greatly contribute to, the unprecedented economic instability in the decades to come."
한스 센홀츠(Hans F.Sennholz)는 연방 준비 제도의 창조를 이렇게 말했다. "국회에 의해 자행된 가장 비극적인 실수이다. 그것이 통과된 순간 이전의 미국은 죽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기관은 수십 년 안에 다가올 전례 없는 경제적 불안정성을 야기하고, 거기에 공헌하기 위해 태어났다."
It was a form of financial socialism that benefited the rich and the powerful. As for the excuse, it was then what it is now. The claim is that the Fed would protect the monetary and financial system against inflation and violent swings in market activity. It would stabilize the system by providing stimulus when it was necessary and pulling back on inflation when the economy became overheated.
그것은 부자와 권력자들의 이익을 위한 금융 사회주의와 같은 형태를 하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 주장은 연준이 금융과 금융 시스템을 인플레이션과 폭력적인 경기 변동으로부터 시장 활동을 보호할 거라는 것이다. 그것은 필요할 경우 동기를 제공함으로써 시스템을 안정화시키고 필요할 경우 경기가 과열될 때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것이다.
A statement by the Comptroller of the Currency in 1914 promised that a ridiculous nirvana would be ushered in by the Fed. It "supplies a circulating medium absolutely safe," the statement said. Further, "under the operation of this law such financial and commercial crises, or 'panics,'as this country experienced in 1873, in 1893, and again in 1907, with the attendant misfortunes and prostrations, seem to be mathematically impossible."
1914년의 통화 감독관에 의한 성명은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에 의해 우스꽝스러운 것이 될 약속을 했다. 그 성명은 "절대적으로 안전한 통화를 공급할 것" 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이 법이 작용하면 1873년, 1893년, 1907 년에 있었던 불운과 피폐를 동반한 그런 금융과 상업상의 위기 또는 패닉은 수학적으로 불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And here is another remarkable promise from the Comptroller of the Currency:
그리고 여기에 통화 감독관으로부터의 또 다른 특기할 만한 약속이 있다:
Under the provisions of the new law the failure of efficiently and honestly managed banks is practically impossible and a closer watch can be kept on member banks. Opportunities for a more thorough and complete examination are furnished for each particular bank. These facts should reduce the dangers from dishonest and incompetent management to a minimum. It is hoped that the national-bank failures can hereafter be virtually eliminated.
새로운 법의 규정 아래에서 유효하고 정직하게 운영되는 은행들의 실패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해지고, 가맹 은행들에 대한 정밀한 감시는 계속 이루어질 것이다. 좀 더 완전한 검사의 기회가 각각의 은행들에 제공될 것이다. 이 사실은 불정직하고 불완전한 경영의 위험을 최소치로 감소시킬 것이다. 국가적 은행의 파산은 실질적으로 제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In practice the reality has been much different. One only needs to reflect on the dramatic decline in the value of the dollar that has taken place since the Fed was established in 1913. The goods and services you could buy for $1.00 in 1913 now cost nearly $21.00. Another way to look at this is from the perspective of the purchasing power of the dollar itself. It has fallen to less than $0.05 of its 1913 value. We might say that the government and its banking cartel have together stolen $0.95 of every dollar as they have pursued a relentlessly inflationary policy.
실제로 현실은 완전히 달랐다. 그는 1913 년 연방 준비 은행이 창설된 이래 발생한 달러의 드라마틱한 가치 하락을 반성할 필요가 있다. 1913년에 $1.00으로 살 수 있었던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은 지금은 거의 $21.00 이다. 이것을 보는 또 다른 방법은 달러 그 자체의 구매력을 보는 것이다. 그것은 1913 년의 가치의 $0.05 이하로 떨어졌다. 우리는 정부와 그것의 은행 카르텔이 냉혹하게 인플레이션 정책을 추진했을 때 모든 달러의 $0.95 를 훔쳤다고 말할 수도 있다.
The same is true of other currencies controlled by a central bank. It is not, however, true of gold. Here is a general overview, courtesy of the American Institute for Economic Research:
같은 설명이 중앙 은행에 의해 통제된 다른 통화에도 들어맞는다. 그러나 그것은 금에는 들어맞지 않는다. 여기에 경제 조사를 위해 제공된 미국 학회의 일반적인 자료가 있다.
As for business cycles and the abolition of panics, the data show otherwise. Recessions of the twentieth century as documented by the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include: 1918 - 1919, 1920 - 1921, 1923 - 1924, 1926 - 1927, 1929 - 1933, 1937 - 1938, 1945, 1948 - 1949, 1953 - 1954, 1957 - 1958, 1960 - 1961, 1969 - 1970, 1973 - 1975, 1980, 1981 - 1982, 1990 - 1991, 2001, and 2007, which is the current panic of which there is no end in sight.
경기 변동과 공포의 박멸에 관해 데이터는 다른 것을 보여준다. 미국 경제 조사회에 의해 실증된 20 세기의 경제 불황은 다음과 같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 1918 - 1919, 1920 - 1921, 1923 - 1924, 1926 - 1927, 1929 - 1933, 1937 - 1938, 1945, 1948 - 1949, 1953 - 1954, 1957 - 1958, 1960 - 1961, 1969 - 1970, 1973 - 1975, 1980, 1981 - 1982, 1990 - 1991, 2001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2007 년 현재의 패닉.
Some mathematical impossibility!
수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The one aspect of the great promise that has been kept, not entirely but generally, is the promise that banks will not fail in the way they used to. But consider whether this is really a good thing. What if we had a law against business failure? It raises an obvious question: if businesses are not allowed to fail, what guarantee is in place that will give them incentive to succeed with soundness and productivity to the common good? In a capitalist economy, the prospect of failure imposes discipline and consumer service. It is an essential aspect of the competitive marketplace, whereas a promise against failure only entrenches inefficiency and in-competency.
전적으로라기보다는 일반적으로 지켜진 단 한 가지 약속은 은행이 절대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로 좋은 것인지 생각해 보자. 만약에 우리가 사업의 도산에 반대하는 법률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명백한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사업이 실패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으면,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공공 재화의 생산력과 건전성을 가질 수 있도록 유인할 수 있는가. 자본주의 경제에서, 실패의 가능성은 질서와 소비자 중심의 서비스를 부과한다. 실패를 막아 주는 약속은 오직 비효율성과 불완전성으로의 길을 열어 줄 뿐이므로 그것은 경쟁하는 시장의 필수적인 측면이다.
In other words, bank failures are no more to be regretted than any other business failures. They are a normal feature of the free enterprise system. What about depositors? In a competitive and free system, deposits would not be unsafe; any that were not paid back that were promised would fall under the laws of protection against fraud. Unsafe deposits would be loans to the bank that would be treated like any other risky investment. Consumers would keep a more careful watch over the institutions that are handling their money and stop trusting regulators in Washington, who in fact have not done a good job in ferreting out incompetence.
다른 말로, 은행의 실패는 다른 사업의 도산보다도 더 유감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 기업 시스템이 갖는 당연한 특징이다. 예금자에 관해서는 어떨까? 경쟁적이고 자유로운 시스템 안에서라면, 예금은 불안정하지 않을 것이다. 돌려받기로 약속되어 있지만 돌려받지 못하는 어떤 것도 사기를 막는 법에 의해 사라질 것이다. 불안정한 예금은 다른 모든 모험적인 투자와 마찬가지로 다루어져야 하는, 은행에 제공한 대출일 것이다. 소비자는 그들의 돈을 다루는 기관을 좀 더 신중히 관찰할 것이고, 사실상 무능력을 찾아내는 데 좋은 일을 한 적이 없는 워싱턴의 규제 기관을 신뢰하는 것을 그만둘 것이다.
But this is not the place to explain the workings of a free-market banking system. I raise the point only to underscore the broader lesson that no firm in a free market should enjoy absolute protection against failure. A continued process of trial and error is the way that institutions achieve the goal of efficiency and soundness. Consider the Soviet case: to my knowledge, no business ever went under in the Soviet system, but society in general grew ever poorer. Think of that Soviet system applied to the banking industry and you have the Fed.
그러나 이것은 자유 거래 시장 금융 시스템의 작동을 설명하는 장소가 아니다. 나는 단지 그 어떤 회사도 손실로부터 완전히 보호받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 포인트를 지적했을 뿐이다. 지속적인 시행 착오의 과정은 그 기관이 건전성과 효율성이라는 목표에 다가서는 방법이다. 소비에트 연방의 경우를 고려해 보라: 내가 알기로, 어떤 사업도 소비에트 시스템에서 추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는 일반적으로 점점 더 가난해졌다. 금융업에 그 소비에트 시스템이 적용된다고 생각해 보라. 우리는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를 가지고 있다.
Understanding this history of the Fed's founding and effects helps take some of the mystery out of it. Some people claim that the Fed is nothing but a private corporation that is working to enrich itself at our expense. Other people claim that it is a government operation that works to provide funds for the government when it can no longer get away with taxing us.
연준 개설의 역사와 효과를 아는 것은 미스테리의 일부를 드러낸다. 어떤 사람들은 연준이 우리의 비용으로 그들 자신을 부유하게 하기 위해 일하고 있는 비공개법인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우리에게 더 이상 과세할 수 없을 때 정부에 돈을 제공하는 정부 운영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Neither opinion is precisely correct. Actually, the Fed is a public-private partnership, a coalition of large banks that are the owners working with the blessing of the government, which appoints its managers. In some way, it is the worst of both the corporate and the government worlds, with each side providing a contribution to an institution that has been horribly detrimental to American prosperity.
어느 쪽 의견도 완전히 정확하지는 않다. 정확히 말하면,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는 공공 영역과 개인 영역의 파트너쉽 - 그것의 경영자를 지명할 수 있는 정부의 은총 아래 일하고 있는 큰 은행들의 연합 - 이다. 몇 가지 점에서, 그것은 회사와 정부 양쪽의 세계가 미국의 번영에 끔찍히도 유해한 한 기관에 공헌하고 있는 가장 나쁜 것이다.
In any case, William Greider is exactly correct that the advent of the Fed represented "the beginning of the end of laissez-faire." It turned the entire money system over to public management on behalf of political causes.
어쨌든, 연준의 출현을 "자유 방임주의의 종말의 시작" 이라고 표현한 월리엄 그레이더(William Greider)는 정확히 맞았다. 그것은 전체 화폐 시스템을 정치적인 원인을 대표하는 공적 경영 시스템으로 향하게 했다.
Over the years, the Fed has been granted ever more leeway in the means it uses to inflate the money supply. It can now buy just about anything it wants and write it down as an asset. When it buys debt, it buys with newly created money. It maintains a strict system of low-reserve ratios that allows banks to pile loans on top of deposits and take the new deposits as the basis for ever more loans. It can set the federal funds rate at a level to its liking and influence interest across the entire economy. It intervenes in currency markets and other markets.
오랫동안, 연준은 통화 공급을 더 많이 부풀릴 수 있는 여유를 보장받았다. 그것은 이제 그것이 원하는 무엇이든 살 수 있고 그것을 자산으로 기록할 수 있다. 그것이 부채를 살 때, 그것은 새롭게 만들어내진 돈으로 사들인다. 그것은 은행들이 대출을 예금의 꼭대기에 쌓을 수 있도록 낮은 준비율을 유지하며, 새로운 예금을 더 많은 대출을 만들기 위한 기반으로 사용한다. 그것은 연방 자금 이자율을 전체 경제에 영향을 줄 수 있도록 설정할 수 있다. 그것은 통화 시장과 다른 시장에 개입한다.
There have been many consequences of the Fed that were unforeseen even by its architects. They might have imagined that the Fed would indeed help smooth out the business cycle, provided you think of the real problem of the cycle as its bust phase when credit contracts. The Fed can indeed provide liquidity in these times by a simple operation of printing more paper money to cover deposits. But if you think of the cycle as beginning in the boom phase - when money and credit are loose and lending soars to fund unsustainable projects - matters change substantially.
심지어 그것을 만든 이들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던 연준의 수 많은 결과가 있다. 그들은 실제로 연준이 경기 변동을 부드럽게 한다고 상상했을 수도 있다.당신이 경기 순환의 진짜 문제점이 신용이 경색되는 그것의 파산 단계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연준은 실제로 이 때에 예금을 회복할 새로운 돈을 찍어내는 단순한 작용으로 유동성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경기 순환을 붐 단계 - 돈과 신용이 풀리고 지속 불가능한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 대금이 급등할 때 - 에 시작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문제는 실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바뀐다.
In 1912, Ludwig von Mises wrote a book called The Theor of Mone and Credit that was widely acclaimed all over Europe. In it he warned that the creation of central banks would worsen and spread business cycles rather than eliminate them. It works as follows. The central bank on a whim can reduce the interest rate that it charges member banks for loans. It can buy government debt and add that debt as an asset on its balance sheet. It can reduce the reserve coverage for loans at member banks. But in doing all of this, it is toying with the signals that the banking industry is sending to borrowers. Businesses are fooled into taking out longer-term loans and starting projects that cannot be sustained. Investors flush with new cash put the money in stocks or buy homes, activities that spread a kind of buying-and-selling fever among the general population.
1912년에, 루드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는 유럽의 도처에서 널리 칭찬되었던 화폐와 신용이론(The Theory of Money and Credit)이라고 불리는 책을 썼다. 거기서 그는 중앙 은행의 창조가 경기 변동을 제거하기보다는 퍼뜨리고 악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작동한다. 변덕스러운 중앙 은행은 금리를 줄일 수 있고 그것은 가맹 은행의 대출을 촉진시킨다. 그것은 국채를 살 수 있고 그 부채를 대차대조표에 자산으로 기록할 수 있다. 그것은 가맹 은행의 대출을 위한 예비 보상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수행하면서, 그것은 금융업이 대출자에게 보내는 신호를 가지고 놀고 있다. 비즈니스는 장기 대출을 꺼내는 일에 농락되고 대출과 프로젝트는 유지될 수 없게 된다. 새로운 현금에 흥분한 투자자들은 돈을 주식이나 집을 사거나, 일반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매매 열기를 부추기는 활동들에 투자할 것이다.
The problem is that all of this activity creates an illusory prosperity, a false boom. When lower interest rates result from real saving, the banking system is signaling that the necessary sacrifice of present consumption has taken place in order to fund long-term investment. But when central banks push down rates on a whim, the impression is created that the savings are there when they are in fact completely absent. The resulting bust becomes inevitable as goods that come to production can't be purchased, and reality sets in by waves. Businesses fail, homes are foreclosed upon, and people bail out of stocks or whatever is the fashionable investment of the day.
문제는 이 활동 모두가 환각에 따른 번영, 즉 가짜 붐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낮은 금리가 정말로 진짜 저금에 기인한다면, 은행 시스템은 현재의 소비가 장기적인 수익에 투자되기 위해 희생될 필요가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앙 은행이 변덕적으로 금리를 끌어내릴 때, 실제로는 전혀 없는 예금이 거기에 실제로 있다는 인상이 만들어진다. 그 결과 생산된 상품이 구입될 수 없게 되고, 현실이 드러났을 때 파산은 불가피해진다. 사업은 실패하고, 집은 저당잡히고, 사람들은 주식이나 무엇이든 유행했던 투자로부터 돈을 빼낸다.
That phony money creates a false boom is not an unknown fact in history. Thomas Paine observed in the late eighteenth century that paper money threatened to turn the country into a nation of "stockjobbers." In fact, this can even happen when the money is not paper. The famous case of tulip mania in the Dutch golden era was driven by gold inflows from around Europe after the government gave a massive coinage subsidy to allcomers.
가짜 돈이 거짓 붐을 만들어 낸다는 건 역사 속에서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아니다. 토마스 페인은 지난 18 세기에 지폐가 국가를 "주식 투기꾼(Stockjobbers)" 의 나라로 만들 위협이 있었다고 관찰했다. 사실, 이 일은 돈이 종이가 아니더라도 일어난다. 유명한 네덜란드 황금기의 튤립 광란의 경우 정부가 방대한 화폐 주조 보조금을 주었을 때 유럽으로부터 들어온 금에 의해 발생했다.
International markets complicate the picture by allowing the boom phase of the cycle to continue longer than it otherwise would, as foreigners buy up and hold new debt, using it as collateral for their own monetary extensions. But eventually they, too, become ensnared in the boom-bust cycle of false prosperity followed by an all-too-real bust. International markets can delay but not finally eliminate the inevitable results of monetary expansion.
국제 시장은 외국인이 새로운 빚을 사고 그것을 그들의 부수적인 금융의 연장으로 사용할 때 붐 단계를 좀 더 오래 지속되게 함으로써 그림을 복잡하게 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그들도, 파산이 뒤를 잇는 가짜 번영의 호황-파산 사이클에 유혹된다 국제 시장은 결과를 늦출 수 있다. 그러나 금융 완화의 불가피한 결과를 제거할 수는 없다.
Now, knowledge of this problem was not well spread among bankers and government officials in 1913 when the Fed was created. But it wouldn't be long until it would become apparent that the Fed would bring not stability but more instability, not shorter booms and busts but deeper and longer ones. The longest one of all, dramatically exacerbated by bad economic policy, was the Great Depression.
지금, 이 문제에 대한 지식은 1913 년에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가 만들어졌을 때에는 은행가들과 정부 관료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가 안정성이 아니라 더 많은 불안정성, 짧은 붐과 불황이 아니라 깊고 긴 것들을 가져온다는 게 명백해질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나쁜 경제 정책에 의해 극단적으로 악화된 가장 긴 것들 중 하나는 대공황이었다.
We might be entering into another phase of extreme crisis.
우리는 또 다른 극단적인 위기를 불러일으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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