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경제

[스크랩] EU 통합의 재가속, 영국의 이탈전략의 대패배

wisstark 2017. 6. 17. 22:03





EU統合の再加速、英国の離脱戦略の大敗
2017年6月16日   田中 宇



          EU 통합의 재가속, 영국의 이탈전략의 대패배


                    2017年6月16日 田中 宇(다나카 사카이)      번역   오마니나



유럽 ​​각지에서, EU와 유로에서 자국을 이탈시키려고 하는 정치운동에 대한 지지가 급속히 사그러지고 있다. 6월 11일에 이탈리아의 약 천 곳에서 열린 지방의회선거 1회전에서, EU와 유로에서의 이탈을 주장하던 비주류 정당인 "5성 운동"이 뜻밖의 대패를 당했다. 25개 대도시에서, 5성 운동의 후보가 1차전에서 패한 것이다. 대조적으로, EU통합을 추진하는 중도우파 정당이 승리했다. 이탈리아는 내년에, 의회총선을 실시할 전망인데, 거기에서 5성 운동이 승리할 것 같다고, 최근까지 보도되고 있었지만, 5성운동이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급감하고있다. 이탈리아 의회선거는 6월 25일에 결선투표를 한다. (Italy 's anti-establishment 5-Star suffer local election beating) (Italy 's Anti-Euro Five Star Movement Suffers Voting Setback)


프랑스에서는, EU와 유로에서의 이탈을 내걸었던 극우인 마리누 · 르펜이 5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중도우파이자 비주류로, EU 유로 지지, 메르켈(독일과 프랑스 동맹)지지인 마크론에게 패한 후, 6월 11일의 의회선거 1회전에서도 마크론이 당수인 "공화국 전진"이 압승(총의석 577중 400 이상 확실)한 반면, 르펜이 당수인 "국민전선"은 10석 이하 밖에 얻지못할 전망이다. (National Front deputy threatens to quit over Le Pen 's euro U-turn) (Le Pen 's far-right surge loses momentum in France)


르펜은, 대선 패배 후, EU와 유로에서의 이탈을, 국민전선의 당론에서 배제할 방침을 표명했다(고 영국신문이 보도). 대선결과에서, 프랑스 국민이 EU 및 유로에서의 이탈을 원치않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르펜의 측근인 국민전선 간부 중에는 르펜의 방침전환에 맹반대하는 사람도 많아, 국민전선은 내부 분열로 지지가 더 축소되고있다. EU통합파를 우려시켰던 르펜의 위협은, 유로이탈 당론 포기로 완전히 사라졌다. (France 's Le Pen abandons 'Frexit'and franc pitch, Telegraph newspaper says) (Marine Le Pen to abandon 'Frexit'plans following disastrous election defeat)


마크론의 압승과, 르펜의 유로이탈책 포기에 따라, 프랑스는, EU·유로·독일과 프랑스 동맹을 이탈하는 방향에서, EU·유로·독일과 프랑스 동맹을 전력으로 재강화하는 방향으로 대전환했다. 독일과 프랑스는 군사통합을 가속화하고있다. EU와 유로는, 축소재 균형에 의해 재강화하는 길을 걷기시작했다. 미국의 헤지펀드 업계는 프랑스 대선 후, 2년 만에 유로의 상승을 예측하는 경향으로 바뀌었다. 이 새로운 흐름에서 생각하면, 9월의 독일의회선거에서도, 메르켈의 중도우파 정당인 CDU가 승리해 제 1당의 자리를 유지할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의 동맹상태가 깨지지 않는 한, EU는 무너지지 않는다. EU와 유로가 정치적으로 붕괴할 가능성은 크게 감소했다(다만,유럽 중앙은행의 미국 괴뢰인 드라기 총재에 의한 유로자금으로 달러를 지탱하는 QE정책은 계속되고있다. 경제적으로 유로가 일단 붕괴할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Hedge funds turn positive on euro for first time since 2014) (Berlin Stands for Closer Cooperation With Paris in Defense Area - German MoD) (The ECB Has Almost Run Out Of German Bonds To Buy)


미국의 퓨 리서치에 의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럽의 많은 국가에서, EU를 지지하는 사람의 비율이, 영국이 국민투표에서 EU탈퇴를 결정한 1년 전보다 크게 증가하고있다. 프랑스에서는, EU지지 비율이, 지난 해의 38%에서 56%로 늘었다. 독일에서는 50%에서 68%로 상승했다. 스페인에서도 47%에서 62%로 올랐다. 영국에서조차, EU지지가 1년 전의 44%에서, 지금은 과반수인 54%로 증가하고있다. 작년이 아니라, 지금 시점에서 영국에서 EU 탈퇴를 묻는 국민투표를 한다면, 잔류파가 이길 가능성이 높다. 지금도 자국의 EU 탈퇴를 희망하는 사람이 과반수인 것은 그리스 뿐이다. (After Brexit, European Views on EU) (Poll Finds Support for European Union on Rise)


유럽 ​​각국에서 EU에 대한 지지자가 늘어난 배경으로 생각되는 한 가지는, 작년에 이탈 결정 후의 영국에서 혼란이 계속되어, 제대로 되어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대륙국가의 사람들이 목격해, 자국의 이탈을 원하지 않게된 점이다. 또 하나는, EU의 통합시장 정책(국경 검문 폐지)이 원인으로, 작년 여름에 "맹위"를 떨친 중동에서 유럽으로 많은 난민이 유입되어, 범죄자와 노숙자의 급증 등 시민생활에 악영향을 주던 난민위기가, 그 후 눈에 띄지않는 형태로 난민 유입규제가 행해져, 수습되고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트럼프 정부이 되고나서, 유럽과의 동맹관계를 소홀히 취급하게 되었기때문에, 유럽 각국이 제각각 대미종속을 하는 것이 아니라, EU로서 단결할 수밖에 없게된 점도 영향이 있는 것 같다. (European support for EU surges in wake of Brexit vote) (Europeans More Favorable to EU, Survey Finds)
 
▼ EU지지 재증가에 앞서 조기선거를 했지만 늦어버린 메이 총리


최근의 영국 총선에서, EU탈퇴를 서두르는 메이 총리의 보수당이, 사전 의도와는 정반대로 의석이 줄어든 이유, 그리고 메이가 앞당겨 선거를 한 이유도, 이것으로 설명이 된다. 메이로서는, 영국을 포함한 EU 대부분의 국가에서, EU이탈 지지자가 줄어드는 가운데, 영국의 EU지지자가 절반 이하로, 게다가 메이에 대한 지지가 높은 상태로 계속되고있는 동안에, 앞당겨 총선을 행해 과반수를 크게 웃도는 의석을 보수당이 획득해, 그 압승의 정통성을 방패로 삼아, 향후의 여론조사 등에서 영국 내의 EU지지자들이 점점 증가해도, 그것을 무시하고 EU이탈 협상을 최단시간으로 진행해, EU에서의 이탈을 실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메이의 이런 의도보다 더 빨리 EU로부터의 이탈을 원하는 영국국민의 비율이 줄어들어, 메이가 내놓은 회심의 조기선거는 ​​실패로 끝났다. (May 's U.K. Election Gamble Imperiled)


메이의 패인으로 생각되는 또 하나는, 영국과 미국 양측에서, 빈부격차의 확대, 중산층의 빈곤화의 영향으로, 소위 극좌라는 좌익세력이 급속히 지지를 확대하고 있는 점이다. 영국의 이번 선거에서는, 노동당의 극좌인 코빈당수의 인기가 급상승했다. 빈곤층이 늘어나는 지방의 젊은이들은, 작년의 국민투표에서 EU 탈퇴에 투표한 후, 이번 선거에서는, EU이탈인 메이가 아니라, 교육의 재무료화 및 공공서비스의 부활을 내건 코빈 노동당인 좌익을 지지했다.(메이는 이번 선거 전에 복지 축소를 내세워 지지가 떨어져, 축소를 철회했지만 만회하지 못했다) (Corbyn most popular Labour leader in 40 years) (Labour pledges to abolish tuition fees as early as autumn 2017 )


미국의 민주당에서는, 지난해 미국대선 예비선거에서 힐러리 클린턴에게 패한 극좌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에 대한 지지가 급증하고있다.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빈곤층으로의 삶을 강요당할 것 같은 젊은이들이 샌더스 지지로 돌아서고있다. 이번의 영국선거에서, 샌더스는 노동당에게 초청되어 영국을 방문해, 코빈의 지지자로부터 성원을 받았다. 이렇듯 영국과 미국의 정치풍토는 연동하고있다. 지난해, 영국의 국민투표로 EU이탈이 통과되었을 때, 그것때문에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이길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지적되었고, 그대로 되었다. 지금 다시 미국과 영국이 연동해 극좌 지도자에 대한 지지가 급증하고있다. 이 변화가 발생하기 전에, 메이가 조기총선을 해서 보수당 의석수를 늘리려고 했지만, 너무 늦어 실패했다고도 생각할 수있다. (Sanders Movement Plots Democratic Party Takeover At Weekend Gathering) (Inspired by Sanders, activists in Chicago push Democrats to left - or out of the way) (Bernie Sanders Is Super Excited About Jeremy Corbyn 's Anti-Austerity Campaign)


메이는 이번 선거에서 의석이 줄었으나, 선거 후에도, 전력으로 EU이탈을 진행하려는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선거 후의 개각에서 메이는, EU이탈을 강경하게 주장하는 스티브 베이커를 EU와의 협상을 담당하는 장관으로 앉혔다. EU와 영국의 1차 협상은, 선거 전에 정해진 예정대로 6월 19일에 열린다. (Theresa May Appoints a Leading EU Opponent as a Brexit Minister) (Theresa May confirm‎s start date for Brexit talks after pressure from EU)


이번 선거에서, EU 탈퇴는 쟁점이 되지않았다. 노동당의 코빈도, EU로부터의 이탈을 지지하고있다. 하지만, 보수당도 노동당도, 의원 등 내부자 중에, EU를 이탈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상당히 많다. 메이의 영국정부는 3월 하순에 정식으로 이탈을 EU에 신청했다. 이를 전면철회하라는 주장은 영국정계에서 강하지 않다. 강한 것은, 경제 면은 EU에 남아한다, 단일시장에는 남자, 영국경제에 대한 타격을 줄여야 한다는 "소프트한 이탈" 주장이다.

하지만 지금은, 메이는 그것을 거부하고, 여전히 EU로부터 완전한 이탈인 "하드한 이탈"을 목표로 하고있다. EU가 이탈금을 지불하라고 하면 거부하고, 그때문에 이탈 후의 EU와의 무역 등의 협정을 맺지못한 채 이탈하게 된다해도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하고있다. (Labour rules out working with Theresa May on Brexit until she dumps 'no deal'rhetoric) (Michael Gove : Brexit 'consensus'needed after general election)


영국의 국익을 생각하면, EU라는 단일시장에 남는 것이 좋다. 하지만, 그것은 공짜가 아니다. 노르웨이는, EU에 가입하지않았지만, 단일시장에 들어가 있다. 그 대가로 노르웨이는, 매년 EU에 상납금을 지불하고 있으며, EU 국가 간의 국경검문을 폐지하는 솅겐조약에 가입해, 테러리스트를 포함한 중동에서의 난민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있다.


영국은 이전부터 쉥겐조약에 가입하지 않았다. 쉥겐에 들어갈지 EU가입을 포기하거나 하는 양자택일을 EU로부터 강요당하게 됨에 따라, 영국은 국민투표를 실시해 EU 탈퇴를 결정했다. 향후의 영국이, 단일시장에만 남는 대가로 쉥겐체제에 들어간다면 대체 무엇을 위해 이탈을 결정했는지 알 수 없게되어버린다. (Pay up, make nice if you want "soft Brexit"EU to tell May) (What is soft Brexit? How could it work as UK negotiates leaving the EU?)


▼ 영국은 EU로 돌아가도 소국으로 취급될 뿐. 실패는 돌이킬 수없다


프랑스와 독일의 수뇌부는, 영국에 대해, 이제라도 EU탈퇴를 철회해도 좋다고 말하고있다. 그러나, 이 발언에는 "하지만 이탈철회로 재가입한 후에는 이전과 같은 큰 권한을 주어지지 않는다"라는 "칼날"이 숨겨져있다. 창설 시부터 EU회원국이었던 이전의 영국은, EU의 주도역(패권국)인 독일과 대등한, 막강한 영향력을 EU내에서 가지고 있었다. 영국은,그 영향력을 사용해, 동유럽 국가를 차례로 EU와 유로존에 끌어들여, EU를 과도하게 확대시켜 약체화했다. (Wolfgang Schäuble : EU door remains open to UK)


영국이 EU에 들어간 것은, EU의 일부가 되어 자국을 번영시키려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영국에게 영원한 라이벌인 독일의 패권확대가 되는 EU를 내부에서 부수어 실패시키기 위해, 영국은 EU로 들어갔다. 영국은 EU에 들어갔지만, 유로 및 쉥겐체제에 들어가지않고, 반면 유로와 쉥겐체제를 과도하게 확대하는 선동행위를 통해, 유로위기와 난민위기를 초래해 EU를 내부로부터 약체화한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EU 내에서의 영국의 영향력과 발언권이 컸기때문에 가능했다.


영국이 EU로 돌아간다면, 이전과 같은 영향력을 부활할 수 없다면 의미가 없다. 독일과 프랑스의 수뇌부는, 영국이 교묘하게  EU를 약체화해 온 흐름을 잘 알고있다. 그래서 "영국에게 이탈하지 말았으면 한다" "꼭 돌아와 달라"고 말하면서도, 그 후에 "더이상 방해가 되지 않았으면하므로, 돌아와도, 이전보다 훨씬 작은 영향력 밖에는 줄 수없다만"이라고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던 것이다. (Will the UK seek a soft or hard Brexit?)


지난해 6월, 영국이 EU탈퇴를 결정한 의도에 대해, 다른 EU국가들의 이탈을 유발해 EU를 약체화시켜 부숴버리는 폭탄으로서 거행한 것이 아닐까, 영국을 시작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EU의 이탈이 일어나, 독일의 패권인 EU가 붕괴해 갈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유럽에서 나와, 나도 그 라인을 따라 해설기사를 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르펜에 대한 지지가, 이탈리아에서는 5성 운동에 대한 지지가 급증하는 등, 각지에서 EU와 유로에서의 이탈을 내거는 세력이 급성장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일년이 흘러, 르펜은 대선에서 패하고, 프랑스 정부는 EU와 유로를 강하게 지지하는 마크론이 되었다. 이탈리아의 5성 운동은 기세가 떨어졌다. EU해체의 가능성은 급감하고있다. 영국이, 스스로의 이탈에 의해 EU해체를 유발하려는 전략이었다고 한다면 그 전략은 실패하고 있다. 실패였다면 이탈을 철회하면된다, 마크론도 그것을 메이에게 제안했다 ...라는 견해가 틀렸다는 것은, 이미 썼다. 영국이 EU탈퇴를 가결한 후의 1년 동안, EU의 중추에서는, 영국을 배제해, 독일이나 독불동맹을 주도력하는 체제가 서둘러 짜여졌다. 마크론의 당선 후, 독일과 프랑스는, 군사통합의 가속화와, 유로의 재강화를 위한 전략을 서둘러 구현하고있다. 향후, 영국이 EU에 다시 돌아간다해도, 이제는 중추의 의사결정에는 참가할 수 없다. (Emmanuel Macron Tells Theresa May EU 's 'Door Remains Open'to U.K.)


앞으로 만약, 영국 보수당 내에서, 메이의 이번 선거실패를 비난하는 형태로 권력투쟁이 격화해, 메이가 사임하고, EU 탈퇴를 그만두려고 하는 소프트 이탈파가 총리가 된다고 해도. 큰 변수는 생길 수 없다. 이제와서 EU에 돌아가봐야, 소국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무의미하며, 단일시장이나 경제면에서만 EU에 남는 것도 그 대가는 너무 크다. 영국의 EU 탈퇴는, 이미 되돌릴 수없는 형태로 대실패로 고정되고 있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그러한 논조의 기사를 실었다. (Thanks, Brits - Brexit has vaccinated Europe against populism) (May 's Ministers Plot Softer Brexit to Keep U.K. in Single Market)


최근 1년 동안 일어난 일의 또 하나는, 미국의 트럼프화다. EU의 국가통합책략은, 미국의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 정권의 백업으로, 유럽대륙을 미국에서 자립한 독일의 패권 지역으로 만드는 "다극화"를 목적으로, 패전국 근성으로(군산과 영국에게)세뇌된 탓에 망설이던 서독의 엉덩이를 미국이 떠밀어 만들어진 것이다. 영국은 유럽통합에 강하게 반대했지만, 미국에게 무시되었기 때문에, 90년대의 블레어 정권 이후, EU를 내부에서 부수는 대책을 추진했다(교활한 블레어는 표면상으로 EU 전면 지지를 표방). 블레어는, 클린턴 행정부의 미국과 동맹관계를 강화해, 미국의 권위를 빌리는 형태로, 대미 종속의 세뇌가 강하게 남아있는 독일에게 압력을 가해 EU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Britain Must Keep Tony Blair Out Of Brexit Discussion - OpEd) (Blair urges voters to back anti-Brexit candidates - even if Tory)


이러한 역사를 보면, 영국이 EU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이 영국과 유럽과의 동맹관계를 중시했기(영국이, 미국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있었기)때문이었다는 것을 알 수있다. 클린턴의 다음인 아들 부시 행정부는 단독패권주의를 표방해 영국을 냉대했는데, 그 다음인 오바마는 다시 유럽과 영국과의 동맹관계를 존중했다. 하지만, 지금의 트럼프가 되어 미국은, 유럽과 독일에 대한 적개심을 노출하고있다. 영국에 대해 트럼프는, EU 탈퇴를 추진하는 메이정권에는 관용적이고, EU이탈을 추진한 영국독립당의 당수인 나이젤 화라지를 자신의 정권에 중용했다. 하지만, 만약 향후, 메이의 보수당 내의 투쟁에서 패배해 사임하고, 소프트 이탈파(이탈 철회파)가 총리가 되면, 아마 트럼프는 영국에 대해서도 심술을 부리기 시작할 것이다. 영국은, 미국의 후원을 상실한 채로는, EU와 독일에 대한 영향력을 만회할 수가 없다. 더구나 독일도, 트럼프 증오를 지렛대로, EU를 이끌어나가 대미자립을 가속한다. (Merkel, Europe Should Accept Trump 's Challenge) (Nigel Farage, U.K. Outsider, Finds a Home in Donald Trump 's Orbit)


미국의 대통령이 힐러리 클린턴이었다면, 다른 전개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미국 민주당, 특히 클린턴 집안은, 미영동맹의 강화를 통한 미국패권의 유지와, 독일의 대미종속을 중시하는 경향이다. 그러나, 영국이 국민투표로 EU탈퇴를 가결해, 그 영향도 있고, 미국인들이 트럼프를 당선시킨 결과, 영국은 유럽에서의 영향력을 불가역적으로 대폭 저하되어, 유럽은 트럼프 증오와 대 미국독립의 기세를 지렛대로 EU에 대한 지지를 재강화되는 사태가 되고있다. (Europe should chart a new course without the US) (Macron Invites All Americans Disappointed With Trump To Flee To France)


영국의 EU탈퇴는, 영국의 국제전략상의 대실패가 되었지만, 영국의 최상층부는, 대실패가 될 것으로 예측하면서, 여론을 조작해 국민투표로 EU탈퇴 가결로 유도한 것이 아닐까 나는 의심하고 있다. "자본과 제국의 상극"을 새삼 느낀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시 쓰고 싶다. (자본의 논리와 제국의 논리)



                                     http://tanakanews.com/170616brexit.php




                       자본의 논리와 제국의 논리


                                        資本の論理と帝国の論理


                            2008年2月28日 田中 宇                   번역 오마니나



내 나름대로 국제정치에 대해 수년 간 분석하면서 생각한 것은 "근대 국제정치의 근간에 있는 것은 자본의 논리와 제국의 논리(또는 국가)와의 대립・모순・암투가 아닌가"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민족주의의 상극이라고 해도 좋다.


제국・국가의 논리, 민족주의의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나라가 발전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와의 관계는 자국을 발전시키기 위해 이용・착취하는 것이며, 자국에게 위협이 되는 나라는 어떻게 해서든 부수려고 한다.(국가 중에는 대국에게 착취당하는 소국도 많다. 따라서 "국가의 논리"라고 하기보다, "제국의 논리"라고 부르는 것이 어울린다)


반면, 자본의 논리, 자본주의의 측면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은, 돈벌이・이윤의 극대화다. 국내의 투자처보다 외국의 투자처가 벌이가 좋다면, 자본을 해외로 이전해 돈을 벌려고 한다. 제국의 논리에 따르면, 위협으로서 무너뜨려야 하는 다른 국가도, 자본의 논리에 따르면, 자국보다 수익률(성장률)이 높은 좋은 투자처라는, 양자의 논리의 대치나 상극이 종종 일어난다.


제국의 논리에 따라 국가를 정치적으로 움직이는 지배층과, 자본의 논리에 따라 경제적으로 움직이는 대자본가는, 종종 서로 겹치는 세력이다. 제국과 자본의 대립이라기 보다, 지배층 내부의 갈등이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른다. 다만 구미의 경우, 대자본가에는 유대인이 많고, 그들은 초국가적인 네트워크로 움직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자본과 제국의 상극은, 유대인과 민족주의와의 상극이라고 볼 수도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16세기의 스페인, 17세기의 네덜란드, 18세기의 영국과, 세계 규모의 제국을 건설한 국가들의 중추에는, 항상 유대인들이 국제 네트워크라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으며, 그것이 모든 제국의 성공비결중의 하나였다. 유럽의 로스 차일드(유대인)와 미국의 록펠러(비 유태인)의 대립으로 분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록펠러는 오래 전부터 친중국 친러시아로, 다극주의를 선호하는 자본가라는 점에서 로스 차일드와 같은 편에 있으며, 양자는 근본적인 대립을 하고 있지는 않다.


▼ 산업혁명을 세계로 확대한 자본가


자본의 논리가 대대적으로 등장한 것은, 18세기 말에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 이후다.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 산업 자본가로서 부상했는데, 얼마 후 그들은, 산업혁명이 일단락되어 경제성장이 둔화하기 시작한 영국보다, 아직 산업혁명이 시작되지 않은 독일 등의 외국에 투자하는 것이 벌이가 크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투자 수익률이 좋았던 것은, 산업혁명(산업화)이 궤도에 오르고 나서 20년 정도였고, 영국에서는 1780-1800년이었다. 그 후 영국의 성장이 둔화되어, 자본가가 해외에 대해 신규 투자처를 개척한 결과, 1850-1870년에는 독일에서, 1880-1900년에는 일본에서, 각각 산업혁명이 전개되었다.


영국의 자본가가 다른 나라의 산업혁명에 투자했을 때, 그들이 투자한 것은 돈만이 아니다. 영국의 제조업 기술과, 기업 경영의 기능 이외에, 봉건체제를 벗어나 공업 생산에 적합한 사회로 전환하는 과정으로서의 현대화를 막 시작한 일본이나 독일 등의 정부에 대해, 법률과 군사 등과 같은 현대적인 국가운영의 노하우까지 이식했던 것이다. 그렇게 하는 편이 신흥국가는 안정되어, 자본가의 벌이가 더욱 커진다.


로스 차일드 같은 주요 자본가는, 영국의 국가운영에 관여해, 자신들의 대리인을 수상이나 정치인, 고위관료로서 후원했기 때문에, 영국의 국가운영 능력을 입수하는 것은 간단했다. 로스 차일드 같은 유대인 자본가는, 영국뿐만 아니라 독일과 프랑스도 오래 전부터 거점을 확보하고 있었다. 따라서, 자본과 산업기술은 용이하게 영국에서 독일과 프랑스 등으로 확산되어, 자본가들의 벌이를 크게 확대했다.


산업혁명이 진전된 결과, 1830 -70년 대에 철도가 전세계에 확산되어, 같은 시기에 원양 선박이나 자동차 등과 같은 교통기술이 전반적으로 크게 발전해, 세계는 1870년대 이후 "제 1차 글로벌리제이션(세계화)"이 되는 상황이 되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되는 흐름이 급속히 강해져, 자본은 성장률이 높은 지역과 투자처를 찾아, 공장은 노임이 싼 지역을 찾아 이전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상품은 중산층이 생겨나는 신흥국에서 잘 팔리게 되었다. 자본가는 세계적으로 돈벌이를 할 수있어, 자본의 논리에서 보면 바람직한 전개였다.
 
▼ 자본과 제국의 모순 끝에 일어난 제1차 대전


그러나 원래, 당시는 대영제국의 정치패권이 세계를 안정시키고 있었던  팍스 브리태니커의 시대였다. 영국이 제국의 논리에 따라 세계를 안정적으로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본가는 세계적으로 돈을 벌수있었다.


세계에는, 산업기술의 습득이 능숙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일본이나 독일 등의 사람들은, 영국인보다 싸고 뛰어난 공업제품을 만들 수있게 되었다. 유럽 각국에서 이민을 모아 만들어진 미국도, 영국보다 좋은 공업제품을 만들어 냈다. 영국은, 가장 먼저 산업혁명을 일으켜, 팍스 브리태니커로 세계를 안정시키는 공로자임에도 불구하고, 산업적으로는 독일, 미국, 일본 등보다 열등해, 벌이가 되지 않는 나라가 되는 경향이 점차 두드러지게 되었다. 19세기 말에는, 자본의 논리와 제국의 논리 사이의 모순과 대립이 확대되었다.


모순이 확대한 끝에 일어난 것이, 1914년의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이전의 기사에서도 썼듯이, 영국은 외교와 첩보 능력이 매우 발달되어 있었지만, 군사제조력에서 독일에게 추월당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영국은, 독일이 동유럽과 발칸 반도에서 터키와 중동 방면으로 패권을 확대하는 것을 저지하려는 목적도 있어, 프랑스와 러시아를 유도해 독일과의 전쟁을 일으켰다.


독일에도 투자하고 있었던 영국의 국제 자본가 중에는, 영국이 전쟁으로 독일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에, 은근히 반발한 인물들도 있었던 경위가 있다. 그들은 영국 정부에 군사비를 낭비시키거나, 유럽의 유대인 계열의 혁명세력이 러시아로 가도록 유도해서 혁명을 일으켜, 영국과 손을 잡고 독일과 적대하고 있던 러시아가 혁명으로 연합전선에서 이탈하도록 유도해,1차 대전으로 영국의 국력을 소모시켜, 제국으로서 기능할 수없는 상태로 빠뜨릴려고 했다. 이러한 암투의 결과, 제1차 대전은 장기화되고, 영국은 결국 이기긴 했지만, 국력은 크게 손상되었다.


제1차 대전에서 영국이 승리한 것은, 미국을 참전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미 뉴욕에는 자본가들이 많이 있었으며, 제1차 대전에서 영국이 아닌 독일을 지원하는 세력도 많았는데, 영국의 강력한 로비활동의 결과, 미국은 영국 측으로 참전했다. 그 대가로 미국정부는, 전후의 세계 체제를 다극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한 주도권을 얻었다.


▼ 미국을 장악한 영국


미국이 주도해 구축한 제1차 대전 이후의 세계체제가, 바로 국제연맹이며, 베르사유 체제였다. 이것은, 대국끼리 담합해 세계의 안정을 유지하는 전쟁방지를 위한 국제기구가 되어야 하는 것으로, 영국이 독일을 무너뜨린 것 같은 전쟁의 재발을 방지하는 자본의 논리와, 미국은 남북미주(南北米州)지역만 책임을 지고 유럽의 분쟁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불간섭주의에 모두가 만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 자신이 의회의 반대로 참여하지 않아,기구는 불완전한 것으로 끝났다.


그 후, 영국은 20년에 걸쳐 미국의 연방정부를 패권적인 기관으로 다시 만들어, 미국이 지방분권의 불간섭주의에서 연방정부 독재의 패권국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했다. 그런 다음 제 2차 대전을 일으켜서 미영이 승리, 제 1차 대전으로 끝나버린 영국패권을, 미국 패권(팍스 아메리카나)으로서 재생했다.


미국의 연방정부는 권한이 확대되어, 전쟁을 하기 쉬운 기관으로 다시 구성되어, 미국이 "전쟁 중독"이 될 소지가 만들졌는데, 그 이면에는 미국을 다시 구성해 세계지배를 시키려고 한 영국이 있었다. 최초의 전략은 영국이 개발했으나, 그 다음은 미국에게 CFR(외교 문제 평의회)등 영국에서 카피한 전략 연구기관을 만들고, 영국의 첩보기관 MI6을 미국으로 이식해 CIA로 만들어, 미국 스스로가 영국이 선호하는  세계전략을 고안하게 되어, 영국이 미국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완료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패권을 이양받았다"고 써왔는데, 잘 생각해보면 "영국은 자국의 쇠퇴를 보완하기 위해, 미국을 끌어들여 미영동맹이 패권을 잡는 체제로 만들었다"고 말하는 편이 옳다.


미국은 제 2차 대전 후에도 세계의 다극적 체제를 희구해, 국제연맹을 국제연합으로 만들었지만, 이 신체제는 영국의 냉전 전략으로, 1950년의 한국전쟁까지 무력화되었다. 아마 영국은, 제 2차 대전 중에는 일본과 독일을 부수기 위해서 소련을 아군으로 삼으려고 했지만, 그 후에는 소련을 적대해 미영이 중소와 대립하는 체제를 만들려고 했을 것이다.


미국의 패권 하에 세계가 안정되자, 다시 자본가는 글로벌리제이션(세계화)을 일으켜, 이익을 내기위해 중국과 소련에 투자해 성장시켰고,불간섭주의인 미국은 그것을 용인해, 국의 패권은 무너진 것다. 전후에 바로 냉전구조를 만들고, 세계를 분단해, 선진국을 모두 영국과 미국의 패권 하에 두므로서, 영국이 배후에 있는 미영동맹에 의한 패권은 장기화되어, 현재(2008년 시점)까지 계속되고있다.


(실제로, 1990년대에 냉전이 끝난 직후 부터 제 2차 세계화가 시작되어,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경제대국으로서 부상하고, 러시아도 자원대국이 되어, 세계는 다극화하고 있다)


▼ 닉슨 이후에 재연된 암투


영국이, 미국을 끌어들여, 일본과 독일을 손보고 자신의 산하에 넣고, 중국과 소련을 영구히 적으로 돌려, 미영동맹이 세계를 지배하는 체제를 1950년에 완성시킨 시점에서, 1910년대부터의 자본과 제국의 암투와 갈등은 ,일단 제국의 승리로 확정되었다.


영국이 소집해 미국에서 열린 1944년 브레튼 우즈 회의에서, 달러는 기축통화가 되고, 미국은 조폐기를 돌리는 것만으로 부를 창출할 수있게 되었다(명분은 금본위제였으나, 미국정부는 개의치 않고 달러를 발행했다). 서구나 일본에 대한 전후의 투자도 미국기업의 돈벌이가 되어, 자본가는 1960년대까지 20년 간은, 돈벌이가 괜찮았기 때문에 미국과 영국중심의 세계체제에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데 60년 대에 미국경제의 성장과 유럽과 일본의 부흥이 일단락 된 후, 자본가는 다시 만족하지 못하게 되어, 70년대에 걸쳐 정부에 달러를 전력으로 증발시켜, 71년에 금달러 교환정지를 일으켜, 브레튼 우즈 체제를 망가뜨리는 패권의 자멸을 획책하기 시작했다. 같은 시기에 닉슨의 방중이 있었고, 그 후는 미소의 해빙, 레이건에 의한 냉전의 종결까지, 미국(의 자본가 세력)은 20년에 걸쳐 영국(제국 세력)이 구축한 냉전체제를 깨부셨다.


다극주의에 근거해 미국의 자멸을 획책한 닉슨은 1974년의 워터 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하게되었다. 이 사건의 소동에서는, 미국언론을 조종하고 있는 것은 영국 측이며, 자본가 측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진다. 닉슨을 사임으로 몰아넣은 미 언론은 "악을 퇴치한 정의의 아군"으로 그려져, 그 후 세계의 많은 젊은이들이 이 영웅담에 끌려 기자지망생이 되었다(예전의 나 자신도). 하지만 이것은 사실은 영국계 모략이며, 히틀러와 도조와 사담 후세인을 극악한 인물로 묘사한 것과 같은, 영국의 특기인 매스컴을 활용한 선악을 조작하는 전략이었다.


닉슨 이후, 미국 측이 냉전의 종결로 이동한 것에 대항해, 영국은,이스라엘을 부추켜 미국 정계에 파고들어가게 했다. 이스라엘은 원래, 영국의 중동 지배를 위한 도구로서, 아랍을 물어뜯고 분단종속시키는 감시견(양떼를 모는 셰퍼드)역할로 건국이 허용된 나라였다. 하지만, 영국의 국력이 쇠퇴해 1967년에 중동에서 영국이 철수를 결정했기 때문에 뒤통수를 맞고 이스라엘은 위기에 빠졌다.


(선민사상을 가진 유대인들은, 양 떼를 주인 대신 일정한 방향으로 가게하는 감시견처럼, 다른 민족을 유도하는, 하나님에 위한 감시견을 자칭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아니라 영국을 위한 감시견이었다)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스라엘은 우선 67년 제 3차 중동전쟁을 일으켜 팔레스타인에서 아랍 국가(이집트, 요르단, 시리아)를 쫓아내고 가자, 서안, 골란 고원 등을 점령했다. 동시에 미 정치권에 침투해, 미국의 중동 전략을 이스라엘이 선호하는 것으로 바꾸므로서, 국가의 생존을 도모하는 전략을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영국의 유능한 감시견으로서 미국을 물어뜯고, 저항 세력에게는 "유대인 차별"이라는 딱지를 붙여 배척했다.


 ▼ 이스라엘과의 암투


이스라엘은 영국에서, 의원들에게 압력을 가하는 법, 군사 산업과의 결탁 방법, 언론의 조작 기술 등, 미국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노하우를 제공받아, 미국 정치권으로 침투해, 1980년에 당선된 레이건 행정부에 정책 입안자로서 이스라엘 계 세력(나중에 네오콘)이 다수 포함되었었다.


미국의 세계전략을 둘러싼 자본가와 영국(제국)의 암투는, 자본가와 이스라엘의 암투로 변질되었다. 이전 기사에 쓴 것처럼, 원래 이스라엘의 건국을 둘러싸고는, 로스 차일드 등 자본가 유대인 세력과, 활동가 유대인 세력(시오니스크)사이에 암투가 있었지만, 그 암투는 수십 년 후에 미국에서 재발했다.


자본가 측은, 필요 이상으로 과격한 시오니스트 우파 세력을 미국에서 정돈해서 1970년대 후반 이후 이스라엘 정착촌으로 들여보내, 이슬람 측과의 어떠한 평화도 용인하지 않는 과격한 강경 자세를 이스라엘에게 취하도록 해, 이스라엘이 호전적이 되어 자멸해 가는 방향으로 유도했다.


이스라엘의 대리인처럼 행동하지만 실은 자본가의 대리인인 이 세력은, 이스라엘 측의 정착민(리쿠드 우파)뿐만 아니라, 미국 측의 네오콘도 마찬가지였다. 네오콘이 참여한 레이건 정권은, 소련의 고르바초프와 담합해 냉전을 끝내고, 독일을 통합하는, 영국의 세계전략을 부수는 대프로젝트를 거행했다.


또한 레이건 2기의 마지막인 1988년, 아라파트를 망명지인 튀니지에서 팔레스타인으로 불러들여,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의 전도를 열었다. 1993년의 오슬로 협정으로 이어지는 이 움직임은 표면적으로,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해서 이스라엘의 안정에 기여하는 전략으로 여겨졋지만, 실제로는,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 후, 게릴라가 등장해 이전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이스라엘을 포격할 가능성이 있었다.


이스라엘은 미국에게 휘둘리다 망할 우려가 있음을 깨닫고, 일단 오슬로 합의로 맺은 평화를, 그 후에 파기했다. 화평을 파기하므로서, 이스라엘 우파(이주민)의 정치력이 강해졌으나, 우파도 이스라엘을 부수려고 하는 미국 자본가가 보낸 간첩이었다는 것은, 이미 언급한 대로다.


▼ 테러전쟁으로 반격하려고 한 영국 이스라엘


냉전 종결은 자본가의 승리였지만, 그 후, 영국이 반격해오지 않도록, 냉전 종결과 동시에 일어난 제 2차 글로벌리제이션(세계화)으로,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도 큰 벌이를 할 수있는 금융 시스템이 채용되어, 런던은 뉴욕과 함께 세계 금융의 중심이 되었다. 하지만 1997년의 아시아에서의 외환위기는, 미국과 영국 중심의 금융패권이 영원히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외환 위기 때, IMF가 동남아시아나 중남미 국가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전략을 취해,반미감정을 부추킨 행위에는,그림자 다극주의의 냄새가 난다)


그 후 영국은, 이슬람 측과 싸우는 이스라엘이나, 군사 예산의 증가를 요구하는 미국의 군산 복합체 모두에게 "제 2의 냉전"인 급진 이슬람과 지속적인 테러전쟁을 획책했다. 미국에서는 1999년 경부터 "조만간 이슬람 테러가 있다"고 선전되어 2001년 911로 그것이 현실화했다. 이 사건의 전후에, 언론을 동원해 이슬람 측을 극악하게 묘사해, 영국의 특기인 선악조작 기술이 전개되었다.


언론 통제를 영국과 이스라엘 측에 빼앗겨, 의회에서는 반 이스라엘 언동조차도 허용되지 않는 꼼짝할 수 없는 상황 하에서, 현 부시 행정부가 택한 전략은 "영국과 이스라엘의 뜻대로 움직이면서, 그것을 오히려 과격하고 과도하게 해버리므로서, 영국과 이스라엘의 전략을 부순다"는 그림자 다극주의였다.


부시 정권의 그림자 다극주의는 이제, 성공 직전까지 와있다. 부시는 올해가, 임기 말이므로 재선을 위한 노력을 할 필요도 없어, 이스라엘에게 거리낌없이 멋대로 할 수있다. 이스라엘은, 이슬람 측과의 자멸적인 최종 전쟁에 언제 돌입해도 이상하지 않다. 이스라엘 군이 예정하고 있는 가자 대침공이, 대전쟁의 막을 열지도 모른다.


금융계에서는, 연준의 그린스펀 전 의장이 최근, 아랍 산유국(GCC)에게 달러 페그의 파기를 권유했다. 연준의 버냉키 현 의장은 "미국의 경기 침체가 심해질 것" 이라고 경기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을 반복하고 있다. 모두, 금융과 달러 패권의 큰 무대를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을 도끼로 찍어 넘어뜨리려고 하는, 다극화적인 언동이다. 한때 영국이 원하는 전쟁 기관의 일부였던 미 연준은, 지금은 그림자 다극주의인 자본가의 앞잡이로 바뀌고 있다.


▼ 영국을 EU에 유폐한다


미국의 금융 시스템이 붕괴해 가면, 같은 금융 시스템에 코를 박고있는 영국도 연쇄적으로 무너진다. 이전 기사에 쓴 것처럼, 영국은 올해, 금융 재정상의 위기가 올 것으로 예측되고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영국에서의 분리 독립을 목표로 하는 움직임도 계속되고 있어, 독립을 지지하는 배우 숀 코너리는 최근, 77세의 자신이 죽기 전에 스코틀랜드는 독립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미영동맹의 붕괴, 금융재정 위기와 국토 축소(스코틀랜드 독립으로)가 된 끝에, 영국은 미국을 조종해 세계를 간접지배 할 수 없게되어, EU에 본격 가맹하지 않을 수 없게될 것이지만, EU에서는 지금, 리스본 조약 등을 통해 정치 통합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이미 군사외교의 통합에 합의하고, 영국도 EU에 본격적 가입하려고 한다면, 군사 외교의 권한을 EU본부로 넘겨야 한다.


이것은 향후, 영국이 외교력을 구사해 미국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영원히 불가능하게 한다. 미국 측의 자본가의 입장에서 보면, 끈질긴 영국을 EU에 영원히 유폐할 수있다.


영국은, EU를 좌지우지해 패권의 모략을 계속하려고 할 지도 모르지만, 일단 두 번이나 영국에게 당하고, 그 후 50년 동안의 동서분할형에 처해졌던 독일은, 더 이상 속지 않을 것이다. 사르코지의 프랑스도 친영국적인 움직임을 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다극화 측에 올라타려는 교활한 전략을 전개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도, 영국의 오랜 모략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을 것이다.


미국은 영국과 이스라엘에서 해방되어 국제 불간섭주의에 돌아갈 것이고, 러시아나 중국과 중동 (GCC+이란 + 터키)도, 영미 패권에서 빠져나와, 독자의 지역 패권 세력이 되어갈 것이라는 점에서, 비록 영국이 EU를 좌지우지한다해도 큰 문제는 없으며, 세계는 다극화해 갈 것이다. 미국을 호전적으로 대하던 영국과 이스라엘이 무력화되므로서, 세상은 지금보다 안정된 상태가 되는 것을 기대할 수있다




                                               https://tanakanews.com/080228capital.htm







                       시장은 사라지지 않는다


                                 冷戦後の時代の終わり



                    2015年1月13日 田中 宇                     번 역  오마니나


 

냉전 이후, 25년 동안 계속되어 온 "세계화(글로벌리제이션)의 시대" 가 끝날 것이라고 지적하는 기사를, 최근 FT가 보도했다. 정치의 민주주의와 경제의 시장주의라는, 냉전 후의 세계를 지탱해 온 두 개의 이념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 외에도(두 이념에 지탱받아온)미국의 패권(파워)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에, 냉전 후의 시대가 끝날 것이라는 것이다. (The west has lost intellectual self-confidence)

 

FT의 기사를 내 나름의 해석을 달아 설명하고자 한다. 냉전의 틀은 "민주주의 정치체제, 시장경제"인 서방 측과 "권위주의 정치체제(일당독재), 계획경제"인 동방 측의 대립이었는데,1989년 소련의 붕괴로 동쪽이 사라지고, 미국과 유럽이 가지고 있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세계를 주도하는 유일한 이념이 되어, 세계의 민주화와 시장경제화(글로벌리제이션)를 목표로 하는 미국의 단독패권체제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미국의 단독 패권이 노골적으로 세계를 지배"하게 되면, 세상의 반발이 너무 커지므로, 세계를 민주화 + 시장화함으로써 사람들의 행복을 증진한다는(세계를 "개혁"한다는)구상(연기)을 부여(매스컴의 선전선동으로)해서, 세상 사람들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세계 민주화와 시장화는 냉전 이후, 미국 패권의 이념이 된 것이다. 냉전 이후의 미국은, 패권을 유지할 뿐만이 아니라, 패권을 개혁운동으로 규정했다(무엇이든 정치운동화 시키는 점이 미국적이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IMF, 세계은행, 미 재무성 등이 세계의 시장화를 추진하는 주도력이 되어, 그들이 결정한 세계 시장화 방식(경제패권 행사의 틀)을 "워싱턴 컨센서스"로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90년대에 중남미와 동남아, 동유럽 등에서 발생한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에서, 엄격한 긴축재정과 민영화(국유재산을 저렴하게 미국과 유럽 투자자에게 판매)를 강요했다. 그리하여, 세계로부터 칭찬을 받아야 할 워싱턴 컨센서스는, 오히려 미국은 탐욕주의라며 세계로부터 혐오를 받는 개념이 되었다.

 

금융위기라는 것은, 그 자체가 콘센서스(합의)의 숨겨진 부대인 투자은행과 헤지펀드에 의한 환율조작, 선물거래 등에 의해 기인하는 것으로, 워싱턴 컨센서스는, 미국이 전세계를 시장화하고 금융위기를 일으켜, 민영화를 강요해 자산을 수탈하는 구도(시장 근본주의)로 간주되었다. 급기야 그 이후, 미국 자신이 채권 금융 버블의 붕괴인 리먼 쇼크를 촉발시키므로서, 미국이 만든 시장경제라는 이념 자체가, 거품의 팽창과 붕괴를 일으키는 결함을 가진 것으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냉전 이후에 전개된, 미국의 패권운동의 정치적인 단면인 "세계 민주화"는, 90년 대에 코소보 독립과 천안문 사건 이후의 중국 제재 등에서 시도되고, 2001년 911사태 이후, 중동에 대한 "군사에 의한 독재정권의 전복" "강제 민주화"로 단번에 확대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대한 미군의 침공으로 현실화되었다.

 

그러나, 이 전개도 또한 이라크 점령의 수렁화, 시리아와 리비아 내전화, 대량 난민의 발생, 중동 전체의 장기적인 정세 불안정과 빈곤화 등을 일으켜 대실패로 끝났다. 이란에 대한 핵무기 개발이라는 것이 누명으로 폭로되고 있으며, 코소보와 우크라이나, 그루지아 등에서도 미국의 민주화(를 가장한)개입은 지역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단점이 크다. 냉전 이후 미국의 패권 전략은, 경제면에서도 정치면에서도 칭찬받아야 하는 것인데, 치졸하고 무리하게 운영한 결과, 세계로부터 혐오받는 대상으로 변질되었다.

 

FT 기사에 따르면, 미국 패권에 대한 정치면에서의 가장 큰 신용 실추는 이라크 전쟁이라고 한다. 이 점을 읽고 내가 느낀 것은 "앞으로 세계적으로, CIA의 고문 보고서에 발표된 죄상에 따라, 체니 미 전부통령과 블레어 영국 전 총리 등 이라크에 대량 살상무기 보유라는 누명을 씌워 침공해, 점령과 고문, 학살을 일으킨 미국과 영국의 인도적인 범죄가 국제 법정과 여론에 의해 단죄되는 것이 계획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올해는, 이라크 침공을 둘러싼 미국과 영국의 죄가 재차 문제시될 것 같다. 이것은 미국의 국제 신용을 더욱 더 떨어뜨려, 미국 패권을 쇠퇴시켜, 진정한 의미에서 냉전 후의 하나의 시대를 끝낼 수도 있다.

 

FT와 같은 언론이 시사하는 내용은, 미영의 핵심부에서 기획된 방향성을 나타내는 면이 있다. FT는 선전과 선동도 많지만, 숨겨져있는 패권의 동향을 더듬어 볼 수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영국의 가디언과 인디펜던트 등도 마찬가지다. 미국 WSJ도  때때로 이런 방식을 시사한다 .NY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는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FT 등이 시사하는 점들은 대체적으로 "표면적일" 뿐이고, 보다 본질적인 "결론(방향성)" 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번에 소개한 기사에서도, 미국의 패권이 쇠퇴한 후의 세계에 대해 아무 것도 시사하지 않았다. "미국이 가진 이념이 세상으로 부터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멀다"와 같이 애매한 결론을 내리고 있을 뿐이다.


내가 쓰는 기사의 목적은, 해외 기사의 소개가 아니다. 해외 기사를, 그것이 시사하는 바와 선전도 포함해서 분석하고, 거기에서 내가 고찰한 것을 쓰는 것이 목적이다. 기사의 자세도 패권의 흐름을 읽는 것이다. 내가 이번 FT지의 기사를 읽고,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미국이 냉전 이후의 패권운영에 실패한 이유다.

 

이미 쓴 것처럼 워싱턴 컨센서스의 운영은 아주 치졸하고, 의도적으로 과격하게 움직여 실패하게 하는 미필적 고의(알면서도 방치하는)같은, 자멸방법이 아닌가 의심된다. 미국 세력이 과도한 대책으로 시장을 파괴한 것은 "탐욕"이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자주 본다, 진정으로 탐욕스러운 사람은(영국세력처럼) 훨씬 더 교묘하다. 미국세력은, 시장주의가 미국패권이라는 기둥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그것을 부수고 패권의 전환을 도모했다는 것이 나의 견해다.

 

리먼 위기도, 왜 리먼 브라더스를 파산으로 몰아넣고, AIG와 베어스턴즈가 파탄하는 것을 미 당국이 묵인했는지, 왜 금융 기관끼리의 '동족상잔'을 용인했는지등에 많은 의문이 있다. 그 후의 손실보전을, 미 연준의 QE가 전부 떠맡아, 다시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는 현상을 유발한 것도 우책이다. 채권 버블에 대한 관리 및 붕괴에 대한 대처 방법도 심각하다.

 

정치면에서도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는 존재하지 않고, 미국 네오콘의 날조라고 사전에 영국 언론 등에서 보도되어 거의 폭로되고 있었는데도, 대량 살상 무기를 구실로 침공한 이라크 전쟁으로 상징되듯이, 미국 정부의 방식은 미필적 고의스러운 자멸적인 방법이 너무 많다. 시리아의 아사드 적대시책도, 우크라이나 문제의 유발도, 미국 정부의 정책은 처음부터, 미국 자신의 국제 신용실추로 이어질 것 같은, 무리한 방식을 택했다.

 

왜 미국이 은밀하게 의도적으로(또는 미필적 고의로) 치졸하고 자멸적인 호전책을 취하는가 하는 것은, 이라크 침공때 부터 가졌던 나의 의문이었다. 그 이후의 이란 핵 문제, 시리아, 리비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혁명, 그루지야, 우크라이나, 북한 문제, 중국 포위망, 리먼 위기, QE1-3, 오바마케아, 셰일 혁명, 지구 온난화 대책 등 미국이 취한 전략의 대부분에, 누명이나 의도적인 사실 오인, 허점이 있는 제재, 호전적이고 단락적인 대응 등, 알면서도 모른 척한 실책의 흔적이 너무도 많이 있다. 대부분의 경우, 처음에는 미 언론이 전략의 성공을 의심하지 않는 기사가 보도되는 점도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전체상을 보고 나는, 미국의 핵심부에, 자국의 패권을 의도적으로 자멸시키려 하고있는 세력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패권이 쇠퇴하는 만큼, 중국과 러시아, BRICS의 영향력(지역 패권의 집합체)이 확장하기 때문에, 미 핵심부에는 은밀하게 세계를 다극형의 패권체제로 전환하려는 "그림자 다극주의자" 가 있을 것이다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미국의 단독 패권체제와 다극체제와의 상극된 그 이면에 "제국과 자본의 대립"이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짐작하고 있다.

 

제국과 자본의 대립구도로 보면, 2차 대전으로 영국에서 미국으로 패권이 양도됨과 동시에, 미국은 단독 패권체제가 아니라 "얄타 체제" 또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상징되는 미영불과  중소가 대등한 관계로 담합해 세계를 운영하는 다극형의 세계체제를 구축했다. 이 시점에서 미국 핵심부에서는 다극주의자(자본의 논리)가 우세했던 것이 된다. 그러나 그 후, 영국 주도로 소련 적대시책인 냉전이 기획되어, 미국과 영국 프랑스와 중소가 영구적으로 대립하는 냉전구조로 전환해 다극주의파는 무너졌다. 냉전체제의 구축은 "(세계의 경제발전을 유도하고자 하는)자본" 에 대한 "(미국과 영국패권을 유지하려는) 제국"의 승리였다.

 

"제국" 측은, 일본, 독일, 그리고 한국, ASEAN 등, 서방측 국가를 고도로 경제성장시켜, "자본"측을 만족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80년대부터 서방 측은 성숙화가 시작되어, 자본 측은, 베트남 전쟁에서의 의도적인 패배를 미중 관계 회복으로 연결시켜, 우선 중국에게 개혁개방을 시작하도록 만들어 경제성장으로 관계를 맺었다. 따라서, 냉전체제는 중국과의 관련에서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85년에 소련에서 고르바초프가 등장해, 냉전을 종료시켰다. 냉전을 종료시킨 주체들은 소련이고, 서방측은 그저 대응했을 뿐이다. 소련의 핵심부에는, 미국과 화해하고 냉전을 끝내려는 세력과 이에 반대하는 세력이 있었다. 소련 경제의 쇠퇴와 함께 대미 화해파가 강해져, 젊은 고르바초프가 공산당 서기장이 되자마자, 소련은 대미 화해로 움직이기 시작해, 미소 정상 회담이 시작되어, 89년의 냉전종결로 이어졌다.

 

85년 3월의 고르바쵸프의 취임과 함께 미국도 냉전 종결의 준비를 개시해, 같은 해 9월에는, 일본과 독일이 미국 패권을 경제적으로 보좌하기로 결정한 플라자 합의가 체결되어, 미국(미영) 주도의 경제 정책의 공조 체제인 G7이 공식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는 비공식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냉전 후, 사전에 한 미소간의 약속대로, 러시아가 G7에 가입해 G8이 생겼다. (Mikhail Gorbachev - Wikipedia)

 

서방 측에서 냉전체제의 유지를 주도했던 것은, 군산복합체와 영국으로, 군산+ 영국 복합체가 당시 "제국"의 중심이었다. 냉전 종결에 즈음하여, 영국은 85년 "금융 빅뱅" 을 개시해서 자국의 힘을 지탱하는 것을 "금융패권"으로 전환해, 군산 복합체를 버렸다. 미국도 85년에 금융 자유화를 시작했다. 모두 채권이나 파생 상품의 규제를 대폭 완화해, 채권 금융 시스템을 확대하는 방책이다. 드디어, 패권 운영의 중심을 "군사" 에서 "금융"으로 전환함으로써 냉전구조는 이제 필요가 없어졌다.

 

기업의 성장 가능성 등 가상적(사기)인 면을 포함하는 "자산" 이라는 개념을 채권화해서 돈으로 바꾸는 것에 의해, 무한한 가치를 창출하는 채권 금융시스템이 새로운 패권의 중심이 되었다. 시장은 자유지만, 채권의 가치를 결정하는 신용 평가 기관, 채권 발행을 백업하는 투자 은행 등, 가치를 만들어 내는 시스템의 근간은 미국과 영국이 쥐고 있었다.

 

이러한 성공적인 시스템은, 냉전 후, 미국의 워싱턴 컨센서스와 네오콘 등이 주도한 조잡하고 자멸적인 방식과는 대조적이다. 냉전 이후의 패권은, 기획자와 운영자가 다른 세력이다. 역사를 되돌아 보면, 2차 대전으로 미국이 영국에게 패권을 양도받은 초기에 만들어진 브레튼 우즈 체제 등의 시스템도, 용의주도하고 성공적이었다. 대조적으로 미국의 패권 운영은, 냉전 후뿐만 아니라 2차 대전 후에도, 20년 후의 재정 파탄 (금 달러 교환 정지)으로 이어질 같은 표면적인 면이 눈에 띄고, 베트남 전쟁과 쿠바와의 대립 등 군사적인 면에서의 방법도 치졸했다. 미국 패권의 시스템은, 2차대전 때도 냉전 종결시에도, 영국계 세력이 만들었기 때문에 성공적이었다고 생각된다.

 

영국은 소련의 제안에서 일어난 냉전종결이라는 전환기를 역공의 계기로 삼아, 금융 주도의 새로운 패권 체제를 미국에게 제안하고 받아 들이게 해서, 냉전 종결과 함께 패권을 군사에서 금융 주도로 전환시켜, 계속해서 영국이 미국 패권의 배후에 위치함과 동시에, 금융에 의한 돈벌이를 국가운영의 재원으로 만드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미국 패권의 운영을 둘러싸고, 미국 세력은, 자신들만으로 패권의 운영방법을 결정하는 단독 패권형을 선호(그래서 무지막지하게 실패시킨다)한다. 한편 "패권 OB(과거의 패권국)"인 영국 세력은, 미국을 보좌하기 위해서 라고 하면서 국제공조체제를 만들어, 협조 체제의 운영을 은밀하게 영국이 장악하므로서, 미국이 아니라 영국이 패권의 배후 역할을 하려고 한다. 85년 G7이 세계경제의 정책결정 기관으로 공식화된 것은, 이미 예정되어 있던 냉전 종결 이후의 패권 운영을 국제공조 체제화함으로써, 영국이 패권의 배후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책략으로 생각할 수 있다. 국제공조체제라도 얄타체제와 G20 등, 미국과 영국의 말에 무조건 따르지 않는 러시아와 중국을 포함한 협조체제는, 영국과 군산복합체 등 "제국" 측이 선호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지금의 G20은, 그 기반이 미국과 영국, 유럽, 일본을 제거한 BRICS이므로 특히 그렇다.

 
냉전 이후의 미국 패권 체제는, 군사가 아니라 금융의 돈벌이가 중심으로, 그 점에서는 자본 측으로서도 만족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실제 패권 운영은, 미필적 고의로, 25년에 걸쳐 패권 체제를 자멸시켜 갔다. 이것은, 영국이 만든 냉전 후의 패권 체제에 미국의 자본 세력이 만족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돈벌이에 만족할 수 없었던 이유는, 금융 패권체제 하에서 "제국"측이 미국(미영)에 따르지 않고, 대두(경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국가(중국과 이슬람 국가 등)를, 투기세력에 의한 선물시장공격 등 "금융 무기"의 발동으로 무너뜨리거나, 인권침해를 이유로 경제 제재를 하는, 제국적인 행동이 가능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제국적인 행동을 용인하면, 그 피해를 당한 지역의 경제성장이 저하되어, 자본의 논리에 저촉된다. 제국과 자본의 대립은, 제국 측이 잠재력있는 타국가의 발전(대두)을 싫어하는 반면, 자본 측은, 바로 그런 잠재력이 있는 타국에 투자해 발전시켜려고 생각하는 것에 기인하고 있다. 네오콘(강제 민주화주의자)과 워싱턴 컨센서스 등, 냉전 이후의 미국 패권 운영을 담당한 세력은, 경제 제재나 금융무기를 구사하면서도, 그것을 과도하게 해서 실패시킴으로써, 경제 제재( 민주화 추진)및 금융병기(시장 원리)라는 장치 자체를 파괴해, 냉전 후의 미국 패권을 붕괴로 이끌고 있다.


FT 지가, 미국 패권의 쇠퇴를 지적하는 기사를 내기 전인 지난해 12월 중순,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무역 둘러싼 미중 정례회의에서 연설한 중국 왕양 부총리 "중국과 미국 세계경제 파트너이지만, 미국 세계 체제 규제 만들어 온 주도력이며, 중국은 그 체제에 가입해(미국이 만든) 규정을 지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汪洋:引領世界的是美国,中国愿加入這个体系)(Beijing chums up to Washington)

 

이것은 의미심장한 발언이다. 중국은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를 택하려고 하지않지만, 경제면은 미국 패권의 대들보였던 시장주의를 대담하게 채용해 경제대국이 되었다. 미국 자신이, 미 연준의 QE 등 시장기능을 자멸시키는 우책를 계속하고, 일본도 QE의 우책을 확대하고, EU까지 QE를 검토해, G7국가가 경제정책으로 자멸하는 가운데, 이전의 상식으로 보면 의외로, 중국 등 BRICS 국가들이, 시장 경제주의를 정통적인 방법으로 운영하는 주도역이 되고있다. 중국 당국은 지난 몇 년 동안 재정 금융의 운영 능력을 크게 향상시키고 있다. 다극화(미국 패권 붕괴)는, 미국이 만든 시장의 시스템이 붕괴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 시스템을 운영하는 주도세력이 미국에서 중국 등 신흥 국가(G20)의 손으로 이동해 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https://tanakanews.com/150113market.htm

 

  



다극화(미국 패권 붕괴)는, 미국이 만든 시장의 시스템이 붕괴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 시스템을 운영하는 주도세력이 미국으로부터 중국 등 신흥 국가(G20)로, 이동해 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시각에서 북미관계나 남북관계를 보면, 섬찟해지는 것을 참을 수없다................


















출처 : 달러와 금 관련 경제소식들
글쓴이 : 오마니나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