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스크랩] 오대산 노스님 이야기 - 새 생명의 길

wisstark 2013. 2. 20. 09:37

새 생명의 길


서랍을 정리하면서, 1994년 간암 말기 환자였던 어떤 분이 불교를 배우고 건강을 회복한 후 선화 상인에게 보낸 보은(報恩)의 편지 복사본을 발견하게 되었다. 다시 한 번 읽어보니 불교를 처음 배우면서 좌선을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이 책을 쓸 때 삽입하게 되었다.


내 이름은 만신생(萬新生)이며〔엮은이 주: 자기 스스로 가명을 지은 것으로 미국 만불성(萬佛城, 선화 상인이 미국에 세운 도량)에서 선화 상인의 가르침을 읽고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는 뜻으로 지음〕, 금년 58세로서 줄곧 병원에서 근무하였다. 나는 1989년 7월 당뇨병을 앓았다. 그리고 1990년 6월 간장병을 얻게 되었으며, 1991년 9월 간장질환이 중해져서 검사를 해보니 초기 간경화로서 복수(腹水)가 차 있다고 하였다. 1992년 6월경 당뇨병과 간장병이 매우 악화되어 제2차 복수가 출현하여 고열이 났다. 높게는 40도까지 올랐으며, 한 달여간 지속되었다.


일 년 넘게 입원한 후 병세는 비록 좋아졌으나 여전히 약물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친구들도 내 병에 관심을 가졌으며, 아내와 아들도 매우 초조하여 전국의 유명하다는 의사에게 진찰받게 하였다. 한약도 수백 첩을 달여 먹었으며, 수액도 수백 병을 주사 맞고, 약 백 병의 단백질을 보충하였다. 따라서 병원비며 약값으로 6만 위안을 넘게 지출했는데도, 큰 효과는 보지 못하고 단지 약간 좋아졌을 뿐이니 위급한 불만 끈 셈이었다.


1993년 초 왕씨 성을 가진 어떤 분이 기공에 관한 책을 보내왔다. 읽고 난 후 책에서 가르치는 대로 짧은 기간 연습을 해보다가 그만 두었다. 나중에 또 백 여사라는 분이 동북지방에서 오신 진 선생을 소개해 주었다. 그들은 나와 아내를 데리고 천진에 있는 대비선원에 가서 예불·독경하고 지장왕보살·관세음보살상을 청하여 개광(開光: 점안)까지 해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이러한 도리를 분명히 알기 위하여 사전을 찾아가며 경서를 읽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힘이 들었으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러나 그만두지는 않고 지속하였다.


1994년 1월 어떤 사람의 소개로 묘법 노스님을 뵙게 되었다. 스님께서는 나의 성격과 사람됨을 말씀하시는데 탄복할 정도로 합당하였다. 한 마디 한 마디 말씀이 정곡을 찔렀으며, 불필요한 말씀이 없으셨다. 이어서 내 병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나에게는 당뇨병과 간장병이 있으며, 신장도 좋지 않고 간에 두 개의 작은 혹이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내가 자라, 물고기, 게, 새우, 비둘기와 뱀을 살생하여 먹었으며, 또한 총으로 작은 새를 쏘아 날개를 상하게 하고 죽인 과보라고 하였다. 그 당시 나는 내 병과 내가 저지른 살생, 심지어 총으로 쏘아서 해를 입힌 것에 대하여 아무런 영문도 몰랐으나, 스님은 너무나 상세히 알고 계시니 정말로 신통하였다.


내가 반신반의하고 있을 때, 스님은 『선화 상인 법문집』을 읽어보라고 하시면서 말씀하셨다. “선화 상인께서는 오계, 십선에 따라 제자를 가르치며 착한 일을 많이 하도록 하십니다. 매일 참회해야 합니다.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자기의 잘못을 깨우쳐 다시는 오계를 범하지 말고, 개과천선할 것을 결심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나를 크게 일깨워주셨다. 나는 이러한 말씀들이 매우 실제적이며 깊은 도리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당시 나는 생각하였다. ‘올바른 사람이 되려면 스님의 말씀대로 하면 될 것이다.’


스님은 나의 마음이 매우 진실하다는 것을 아시고는 어떻게 염불하고 참회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주셨으며, 아울러 내가 이전에 죽였던 동물의 영혼을 내 몸에서 내보내는 것을 도와주셨다. 갑자기 온 몸이 가벼워짐을 느꼈으며, 마치 나의 병이 전부 좋아진 것 같았다. 이어서 나의 온몸을 두드리니, 마치 입고 있던 여러 해 된 부풀고 무거운 솜옷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벗어 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당시 전신에서 열이 났으며, 몸이 너무나 가볍게 느껴지면서 정말로 손으로 병을 제거하는 감각을 느꼈다.


그 후 맹 거사가 나에게 『선화 상인의 사적』, 『수행자의 소식』, 『정좌입문』 등의 책을 보내왔으며, 손으로 베껴 쓴 『천수대비주』를 보게 하였다. 그 후 직접 대비선원에 가서 『천수대비주』, 『능엄주』, 『선화 상인 법문집』과 선화 상인께서 해설하신 『대불정수능엄경천석』, 『지장보살본원경천석』을 사서 읽었다.


그때부터 나는 매일 좌선, 참회, 염불, 대비주염송을 지속하면서 여러 경서를 공부하였다. 처음 좌선할 때는 다리가 아프고 마비되어 단지 10여 분밖에 앉지 못하였으나, 점차적으로 시간이 늘어나 한 시간 정도는 좌선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피곤하고 잠이 오는 현상이 나타났으나 빨리 지나갔다. 약 3개월 동안 좌선하니 몸이 떨리는 현상이 나타났다가, 조금 지나자 온몸에서 열이 나며 땀이 특별히 많이 났다. 매번 좌선 시 마치 땀으로 목욕한 것 같았으며, 이러한 현상은 2개월 정도 지속되었다.


이렇게 지내던 어느 날 묘법 노스님께서 미국에 가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가 “스님이 미국에 가시면 반드시 선화 상인께 당신의 정황에 대하여 이야기하실 거예요”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좌선 시, 선화 상인이 면전에 나타나시어 나에게 불법을 잘 배우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이것은 좌선 시 처음 나타난 현상으로 나를 크게 고무시켰으며, 불법을 열심히 수행해야겠다는 신념을 견고히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좌선 시 나에게 살해되었던 생명들이 눈앞에 나타났는데, 뱀, 자라, 개구리, 도마뱀, 뱀장어 등이 보였다. 그들은 모두 탁자 위에 엎드려 가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내 잘못을 인정하고 머리를 숙여 사과하면서 그들을 위하여 염불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만족한 듯이 떠나갔다. 이때 매우 기뻤다.


좌선할 때 절과 사람의 형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손에 불자(拂子)를 든 스님이 나를 데리고 어느 절에 들어가는데, 끝까지는 가지 않았다. 한번은 좌선할 때 스님의 대동 하에 미륵보살을 뵙게 되었는데, 미륵보살은 나를 데리고 큰 절에 들어가 관세음보살을 뵙게 하였다. 나는 즉시 큰절을 하였고, 미륵보살은 관세음보살 옆에 앉아 손으로 나의 어깨를 들어 올려 다리 위에 앉게 하였다.


내가 여쭈었다. “나는 어른인데 어찌 미륵보살님의 다리 위에 앉을 수 있습니까?” 미륵보살이 말씀하셨다. “내 앞에서는 그대가 아무리 어른이라도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그래서 나는 내 어린 시절로 돌아간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어떤 때는 좌선 시 미륵보살을 따라 먼 곳으로 갔다. 그 곳에는 산과 절이 있었다. 매우 장엄한 절 안에는 수많은 부처님이 계셨다. 땅에 꿇어앉아 절을 하는데, 갑자기 눈앞이 밝아지면서 매우 밝은 불덩어리가 있었다. 그 후 내가 『선화 상인의 사적』을 배울 때 비로소 이것은 불광(佛光)이 널리 비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묘법 노스님이 미국에서 돌아오실 때 가지고 오신 만불성성(萬佛聖城)의 사진을 보고 마음속에서 말할 수 없는 환희가 솟아나왔다. 그날 내가 보았던 산, 절 등의 장엄한 장면은 바로 만불성성이었던 것이다. 이건 정말로 생각지도 않았던 것이다.


며칠 후 좌선할 때 내 몸에 바퀴벌레가 기어가는 것을 보았다. 한편으로 염불하면서 한편으로 털어내니, 어떤 것은 가고 어떤 것은 돌아왔다. 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미륵보살이 또 나타나 손으로 내 몸에 붙은 바퀴벌레를 떼어냈다. 그 뒤부터 내 몸의 붉은 반점은 없어졌으며, 피부도 가렵지 않게 되었다.


어떤 날은 좌선 시 미륵보살께서 손으로 가볍게 내 간장을 만지며, 간장 위의 더러운 것을 털어내면서 “천천히 좋아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후 미륵보살께서 인슐린 기능을 검사하는데 인슐린 배출이 매우 적었다. 반나절에 한 방울씩 밖으로 흘러나왔다. 미륵보살이 말씀하시기를 “관이 잘 통하지 않으니 쓰기에 부족하구나.” 하였다. 미륵보살께서 조그만 막대기로 관을 소통시키면서 손으로 두 차례 주무르니, 인슐린이 마치 굵은 바늘구멍처럼 많이 분출되어 나왔으며,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말씀하셨다.


나중에 또 나를 데리고 연못에 가서 내 몸의 더러운 것과 병독을 씻어내고는, 나에게 옷을 갈아입으라고 하셨다. 그때부터 내 몸은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다. 건강한 사람과 같이 서게 되었으며, 큰 병을 앓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게 되었다. 얼마 후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의사들이 매우 놀라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내 병세를 봐서는 갈수록 나빠져야 하며, 가장 좋은 상태라도 겨우 현상유지를 하는 것인데, 이미 정상인의 수준에까지 도달하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단백질의 지표로 말하자면 원래 단백질을 공급받아야 35~38의 수준을 유지했는데, 지금은 공급받지 않은 상황에서 이미 40~41의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어떤 환자가 물었다. “당신은 무슨 방법으로 치료했습니까?”

내가 말했다. “내가 가는 길은 새 생명의 길입니다.”


약 10개월간의 좌선, 참회, 경전공부를 통하여 불교에 대한 인식이 진일보하였다. 처음 얕은 도리를 깨달은 뒤부터 불교는 국가와 백성을 이롭게 하고 사회를 정화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만약 전 세계인이 모두 불교의 가르침대로 행한다면 전쟁, 강도, 도둑, 사기 등이 없어진 태평스러운 세상에서 행복이 가득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불교가 말하는 이러한 문제들은 결코 환상이거나 미신이 아니며, 매우 과학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만약 착실히 불교의 가르침대로 행한다면 몸의 병마를 제거할 수 있으며, 예상치 못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건강회복 과정을 보면 검증할 수 있을 것이다.



: 얼마 전 우리 집안의 친척이 돌아가셨는데, 그를 위하여 천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 내가 최근에 뉴스를 보았는데 태국의 어느 군인 장교가 일찍이 세 번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합니다. 그의 경험에 의하면 불법승 삼보를 공양하는 공덕이 무량하며, 또한 육친권속을 천도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자기가 먼저 모든 악을 짓지 않고 선을 받들어 행한다면, 이것이 바로 육친권속을 천도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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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욕은 윤회의 근본

서른을 갓 넘긴 ‘김영’이라는 젊은 여인이 묘법 노스님께 눈물로 자기의 고통을 하소연하였다. 그녀의 사연은 다음과 같다.


그녀는 16세 때 우연히 석가모니부처님의 그림책을 보았는데, 갑자기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였다. 이후 계속하여 몇 권의 불교관련 책을 보고 불교성지 오대산(五台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줄곧 가보고 싶었으나, 이 소원은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 28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실현되었다.


오대산에 가보고는 더욱 마음에 들었다. 오대산이 고향 같았다. 또한 절의 객실에 들어가 비구니스님들과 함께 있게 되었을 때, 스님들이 친척같이 느껴져 집에 돌아가는 것도 잊어버렸다. 심지어는 휴가기간이 지난 것도 몰랐다가 한 스님이 그녀에게 “직장에 출근해야 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비로소 생각이 나 급히 짐을 꾸려 산을 내려갔다.


집에 오니 마침 부모님은 오대산으로 그녀를 찾으러 사람을 보내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녀가 집을 떠난 후 전화 한 통도 없고 휴가기간을 넘겨도 돌아오지 않자, 그녀의 어머니는 애타는 마음에 급성 심장병을 앓기도 하였다. 그녀의 어머니가 말하기를 “앞으로 너는 어디에도 가지 못한다. 내가 죽을 지경이란 말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이번의 오대산 여행을 한시도 잊지 못하였으며, 심지어 몇 차례 자기가 승복을 입고 있는 꿈을 꾸기도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출가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나, 어머니가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그녀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는 불교신자입니다. 제가 출가하는 것은 좋은 일이잖아요. 하물며 집에 오빠와 언니도 있고 손자도 있으니, 저 하나 없다고 하여 안 될 것이 없지 않습니까! 어머니가 출가를 못하게 하면 제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십니까?”


그러나 어머니는 단호하게 말하였다. “다른 사람은 출가해도 되지만 내가 살아있는 한 너는 안 된다. 네가 출가하면 내가 제 명에 못 살 것 같다. 너는 내 마음을 아느냐?”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석가모니부처님이 집을 떠나 출가할 때 아무도 모르게 떠났다는 것이 생각나, 떠나기 전에 한 통의 편지를 남기고는 집을 나왔다. 그녀는 또다시 오대산에 와서 절에 묵으며 주지스님께 출가할 뜻을 피력하였다. 그러나 주지스님은 먼저 머리를 깎지 않은 채 절 생활을 하면서, 출가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지를 보자고 하였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보름 후 오빠가 그녀를 찾으러 왔다. 그녀가 남긴 편지를 본 후, 어머니가 찾으러 보낸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어느 절에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찾는 데 보름이나 걸렸다. 오빠는 그녀에게 “어머니는 네가 집을 떠난 뒤 다시 심장병이 도져 병원에 입원하셨다. 지금은 살아나실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단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할 수 없이 오빠를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어머니는 집에 누워계셨다.


그 후 그녀는 답답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해 노스님을 찾아왔다. “저는 정말로 출가할 수 없나 봅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여전히 절에 남아 있습니다. 나이 서른이 넘었어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제 소망을 실현할 수 없으니 매일 시체가 걸어 다니는 것 같고, 살아도 죽은 것만 못합니다. 스님 어떻게 해야 될지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김영은 줄곧 눈물을 닦으면서 이야기하다가 실성한 듯이 울었다. 노스님은 그녀가 평정되기를 기다렸다가 물었다.


“아직 육식과 오신채를 끊지 않았지?”

“예, 아직 끊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내일부터 육식을 끊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예불하여라. 출퇴근할 때에는 마음속으로 염불이 끊어지지 않게 하든지, ‘천수대비주’나 ‘반야심경’, 『능엄경』을 외우거라. 저녁예불 후에는 40분에서 1시간 정도 좌선하면서 ‘염불하는 것은 누구인가?’ 살펴보아라. 그리고 금생에 지은 ‘열 가지 악업’의 죄를 조용히 기억하면서 생각이 나면 참회하거라. 네가 이렇게 지속할 수 있으면 출가한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경서를 많이 읽어라. 특히 『능엄경』은 여러 번 읽어야 한다. 그러면 지혜가 증장할 것이다. 재가에 있어도 출가와 마찬가지로 홍법이생(弘法利生: 불법을 널리 펴고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의 일을 할 수가 있다. 인연 따라 교화한다고 하지 않더냐! 너의 출가 인연은 아직 이르지 않았으니, 억지로 출가하려고 하지 마라.


불법을 배우는 것은 바로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거늘, 하물며 너의 모친이 아니더냐. 자신의 소망 때문에 모친을 해롭게 해서는 안 된다. 네가 출가할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대략 3년 정도 남았다. 만약 네가 정말로 현재의 집착을 놓을 수 있으면, 아마도 조금 앞당겨질 것이다.”


김영은 노스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따르겠다고 하였다. 그날 저녁 김영의 일이 생각나 왜 출가를 하려는지 전생의 인연을 여쭤보았다. 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100여 년 전 오대산에서 수도하던 한 청년이 있었는데, 대가집 규수의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되었다. 어느 날 이 아가씨는 시녀를 거느리고 도관에 와서, 그 수도자에게 예를 올린 후 무언가를 싼 보자기를 건네주었다. 수도자가 열어보니 약간의 은전이 들어있었으며, 그 아가씨에 대하여 감격스러운 마음이 우러났다. 이럭저럭하는 가운데 두 사람은 사랑의 감정이 생기게 되었으며, 수도자는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마침내 그 아가씨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싫어서, 그들은 시녀를 데리고 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가서 정착하여 살게 되었다. 결혼 후 두 사람은 서로를 극진히 사랑하고 공경하였다. 남편은 여전히 수행을 하고 아내는 남편을 여러 모로 돌보았으며, 남편은 아내에 대한 사랑의 정이 식지 않았다. 시녀도 평생 그들을 따르면서 시봉하였다.


금생에서 김영은 바로 전생의 수도자이며, 정에 집착하는 마음이 깊었기 때문에 여자의 몸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모친은 바로 전생의 대가집 규수로 수도자의 부인이다. 김영의 부친은 바로 그 시녀로서 전생에 사람됨이 단정하였기 때문에 금생에 남자의 몸으로 바꿔 태어났으며, 여전히 전생의 아가씨(즉 김영의 어머니)에 대하여 여러 모로 보살피는 마음이 많이 남아 있다.


스님의 법문은 나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수도하는 사람이 감정의 집착을 끊지 못하면 끝내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수도하기 어렵구나, 걸어서 하늘에 오르는 것만큼이나.

교육하기 어렵구나, 불속에 연꽃을 심는 것만큼이나.

욕망 끊기 어렵구나, 모래를 쪄서 밥을 짓는 것만큼이나.


따라서 법을 듣고 믿으면서 애욕을 끊는 것이 바로 수행인의 근본이다. 

서랍을 정리하면서, 1994년 간암 말기 환자였던 어떤 분이 불교를 배우고 건강을 회복한 후 선화 상인에게 보낸 보은(報恩)의 편지 복사본을 발견하게 되었다. 다시 한 번 읽어보니 불교를 처음 배우면서 좌선을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이 책을 쓸 때 삽입하게 되었다.


내 이름은 만신생(萬新生)이며〔엮은이 주: 자기 스스로 가명을 지은 것으로 미국 만불성(萬佛城, 선화 상인이 미국에 세운 도량)에서 선화 상인의 가르침을 읽고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는 뜻으로 지음〕, 금년 58세로서 줄곧 병원에서 근무하였다. 나는 1989년 7월 당뇨병을 앓았다. 그리고 1990년 6월 간장병을 얻게 되었으며, 1991년 9월 간장질환이 중해져서 검사를 해보니 초기 간경화로서 복수(腹水)가 차 있다고 하였다. 1992년 6월경 당뇨병과 간장병이 매우 악화되어 제2차 복수가 출현하여 고열이 났다. 높게는 40도까지 올랐으며, 한 달여간 지속되었다.


일 년 넘게 입원한 후 병세는 비록 좋아졌으나 여전히 약물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친구들도 내 병에 관심을 가졌으며, 아내와 아들도 매우 초조하여 전국의 유명하다는 의사에게 진찰받게 하였다. 한약도 수백 첩을 달여 먹었으며, 수액도 수백 병을 주사 맞고, 약 백 병의 단백질을 보충하였다. 따라서 병원비며 약값으로 6만 위안을 넘게 지출했는데도, 큰 효과는 보지 못하고 단지 약간 좋아졌을 뿐이니 위급한 불만 끈 셈이었다.


1993년 초 왕씨 성을 가진 어떤 분이 기공에 관한 책을 보내왔다. 읽고 난 후 책에서 가르치는 대로 짧은 기간 연습을 해보다가 그만 두었다. 나중에 또 백 여사라는 분이 동북지방에서 오신 진 선생을 소개해 주었다. 그들은 나와 아내를 데리고 천진에 있는 대비선원에 가서 예불·독경하고 지장왕보살·관세음보살상을 청하여 개광(開光: 점안)까지 해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이러한 도리를 분명히 알기 위하여 사전을 찾아가며 경서를 읽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힘이 들었으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러나 그만두지는 않고 지속하였다.


1994년 1월 어떤 사람의 소개로 묘법 노스님을 뵙게 되었다. 스님께서는 나의 성격과 사람됨을 말씀하시는데 탄복할 정도로 합당하였다. 한 마디 한 마디 말씀이 정곡을 찔렀으며, 불필요한 말씀이 없으셨다. 이어서 내 병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나에게는 당뇨병과 간장병이 있으며, 신장도 좋지 않고 간에 두 개의 작은 혹이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내가 자라, 물고기, 게, 새우, 비둘기와 뱀을 살생하여 먹었으며, 또한 총으로 작은 새를 쏘아 날개를 상하게 하고 죽인 과보라고 하였다. 그 당시 나는 내 병과 내가 저지른 살생, 심지어 총으로 쏘아서 해를 입힌 것에 대하여 아무런 영문도 몰랐으나, 스님은 너무나 상세히 알고 계시니 정말로 신통하였다.


내가 반신반의하고 있을 때, 스님은 『선화 상인 법문집』을 읽어보라고 하시면서 말씀하셨다. “선화 상인께서는 오계, 십선에 따라 제자를 가르치며 착한 일을 많이 하도록 하십니다. 매일 참회해야 합니다.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자기의 잘못을 깨우쳐 다시는 오계를 범하지 말고, 개과천선할 것을 결심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나를 크게 일깨워주셨다. 나는 이러한 말씀들이 매우 실제적이며 깊은 도리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당시 나는 생각하였다. ‘올바른 사람이 되려면 스님의 말씀대로 하면 될 것이다.’


스님은 나의 마음이 매우 진실하다는 것을 아시고는 어떻게 염불하고 참회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주셨으며, 아울러 내가 이전에 죽였던 동물의 영혼을 내 몸에서 내보내는 것을 도와주셨다. 갑자기 온 몸이 가벼워짐을 느꼈으며, 마치 나의 병이 전부 좋아진 것 같았다. 이어서 나의 온몸을 두드리니, 마치 입고 있던 여러 해 된 부풀고 무거운 솜옷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벗어 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당시 전신에서 열이 났으며, 몸이 너무나 가볍게 느껴지면서 정말로 손으로 병을 제거하는 감각을 느꼈다.


그 후 맹 거사가 나에게 『선화 상인의 사적』, 『수행자의 소식』, 『정좌입문』 등의 책을 보내왔으며, 손으로 베껴 쓴 『천수대비주』를 보게 하였다. 그 후 직접 대비선원에 가서 『천수대비주』, 『능엄주』, 『선화 상인 법문집』과 선화 상인께서 해설하신 『대불정수능엄경천석』, 『지장보살본원경천석』을 사서 읽었다.


그때부터 나는 매일 좌선, 참회, 염불, 대비주염송을 지속하면서 여러 경서를 공부하였다. 처음 좌선할 때는 다리가 아프고 마비되어 단지 10여 분밖에 앉지 못하였으나, 점차적으로 시간이 늘어나 한 시간 정도는 좌선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피곤하고 잠이 오는 현상이 나타났으나 빨리 지나갔다. 약 3개월 동안 좌선하니 몸이 떨리는 현상이 나타났다가, 조금 지나자 온몸에서 열이 나며 땀이 특별히 많이 났다. 매번 좌선 시 마치 땀으로 목욕한 것 같았으며, 이러한 현상은 2개월 정도 지속되었다.


이렇게 지내던 어느 날 묘법 노스님께서 미국에 가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가 “스님이 미국에 가시면 반드시 선화 상인께 당신의 정황에 대하여 이야기하실 거예요”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좌선 시, 선화 상인이 면전에 나타나시어 나에게 불법을 잘 배우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이것은 좌선 시 처음 나타난 현상으로 나를 크게 고무시켰으며, 불법을 열심히 수행해야겠다는 신념을 견고히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좌선 시 나에게 살해되었던 생명들이 눈앞에 나타났는데, 뱀, 자라, 개구리, 도마뱀, 뱀장어 등이 보였다. 그들은 모두 탁자 위에 엎드려 가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내 잘못을 인정하고 머리를 숙여 사과하면서 그들을 위하여 염불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만족한 듯이 떠나갔다. 이때 매우 기뻤다.


좌선할 때 절과 사람의 형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손에 불자(拂子)를 든 스님이 나를 데리고 어느 절에 들어가는데, 끝까지는 가지 않았다. 한번은 좌선할 때 스님의 대동 하에 미륵보살을 뵙게 되었는데, 미륵보살은 나를 데리고 큰 절에 들어가 관세음보살을 뵙게 하였다. 나는 즉시 큰절을 하였고, 미륵보살은 관세음보살 옆에 앉아 손으로 나의 어깨를 들어 올려 다리 위에 앉게 하였다.


내가 여쭈었다. “나는 어른인데 어찌 미륵보살님의 다리 위에 앉을 수 있습니까?” 미륵보살이 말씀하셨다. “내 앞에서는 그대가 아무리 어른이라도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그래서 나는 내 어린 시절로 돌아간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어떤 때는 좌선 시 미륵보살을 따라 먼 곳으로 갔다. 그 곳에는 산과 절이 있었다. 매우 장엄한 절 안에는 수많은 부처님이 계셨다. 땅에 꿇어앉아 절을 하는데, 갑자기 눈앞이 밝아지면서 매우 밝은 불덩어리가 있었다. 그 후 내가 『선화 상인의 사적』을 배울 때 비로소 이것은 불광(佛光)이 널리 비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묘법 노스님이 미국에서 돌아오실 때 가지고 오신 만불성성(萬佛聖城)의 사진을 보고 마음속에서 말할 수 없는 환희가 솟아나왔다. 그날 내가 보았던 산, 절 등의 장엄한 장면은 바로 만불성성이었던 것이다. 이건 정말로 생각지도 않았던 것이다.


며칠 후 좌선할 때 내 몸에 바퀴벌레가 기어가는 것을 보았다. 한편으로 염불하면서 한편으로 털어내니, 어떤 것은 가고 어떤 것은 돌아왔다. 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미륵보살이 또 나타나 손으로 내 몸에 붙은 바퀴벌레를 떼어냈다. 그 뒤부터 내 몸의 붉은 반점은 없어졌으며, 피부도 가렵지 않게 되었다.


어떤 날은 좌선 시 미륵보살께서 손으로 가볍게 내 간장을 만지며, 간장 위의 더러운 것을 털어내면서 “천천히 좋아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후 미륵보살께서 인슐린 기능을 검사하는데 인슐린 배출이 매우 적었다. 반나절에 한 방울씩 밖으로 흘러나왔다. 미륵보살이 말씀하시기를 “관이 잘 통하지 않으니 쓰기에 부족하구나.” 하였다. 미륵보살께서 조그만 막대기로 관을 소통시키면서 손으로 두 차례 주무르니, 인슐린이 마치 굵은 바늘구멍처럼 많이 분출되어 나왔으며,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말씀하셨다.


나중에 또 나를 데리고 연못에 가서 내 몸의 더러운 것과 병독을 씻어내고는, 나에게 옷을 갈아입으라고 하셨다. 그때부터 내 몸은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다. 건강한 사람과 같이 서게 되었으며, 큰 병을 앓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게 되었다. 얼마 후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의사들이 매우 놀라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내 병세를 봐서는 갈수록 나빠져야 하며, 가장 좋은 상태라도 겨우 현상유지를 하는 것인데, 이미 정상인의 수준에까지 도달하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단백질의 지표로 말하자면 원래 단백질을 공급받아야 35~38의 수준을 유지했는데, 지금은 공급받지 않은 상황에서 이미 40~41의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어떤 환자가 물었다. “당신은 무슨 방법으로 치료했습니까?”

내가 말했다. “내가 가는 길은 새 생명의 길입니다.”


약 10개월간의 좌선, 참회, 경전공부를 통하여 불교에 대한 인식이 진일보하였다. 처음 얕은 도리를 깨달은 뒤부터 불교는 국가와 백성을 이롭게 하고 사회를 정화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만약 전 세계인이 모두 불교의 가르침대로 행한다면 전쟁, 강도, 도둑, 사기 등이 없어진 태평스러운 세상에서 행복이 가득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불교가 말하는 이러한 문제들은 결코 환상이거나 미신이 아니며, 매우 과학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만약 착실히 불교의 가르침대로 행한다면 몸의 병마를 제거할 수 있으며, 예상치 못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건강회복 과정을 보면 검증할 수 있을 것이다.



: 얼마 전 우리 집안의 친척이 돌아가셨는데, 그를 위하여 천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 내가 최근에 뉴스를 보았는데 태국의 어느 군인 장교가 일찍이 세 번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합니다. 그의 경험에 의하면 불법승 삼보를 공양하는 공덕이 무량하며, 또한 육친권속을 천도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자기가 먼저 모든 악을 짓지 않고 선을 받들어 행한다면, 이것이 바로 육친권속을 천도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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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욕은 윤회의 근본

서른을 갓 넘긴 ‘김영’이라는 젊은 여인이 묘법 노스님께 눈물로 자기의 고통을 하소연하였다. 그녀의 사연은 다음과 같다.


그녀는 16세 때 우연히 석가모니부처님의 그림책을 보았는데, 갑자기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였다. 이후 계속하여 몇 권의 불교관련 책을 보고 불교성지 오대산(五台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줄곧 가보고 싶었으나, 이 소원은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 28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실현되었다.


오대산에 가보고는 더욱 마음에 들었다. 오대산이 고향 같았다. 또한 절의 객실에 들어가 비구니스님들과 함께 있게 되었을 때, 스님들이 친척같이 느껴져 집에 돌아가는 것도 잊어버렸다. 심지어는 휴가기간이 지난 것도 몰랐다가 한 스님이 그녀에게 “직장에 출근해야 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비로소 생각이 나 급히 짐을 꾸려 산을 내려갔다.


집에 오니 마침 부모님은 오대산으로 그녀를 찾으러 사람을 보내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녀가 집을 떠난 후 전화 한 통도 없고 휴가기간을 넘겨도 돌아오지 않자, 그녀의 어머니는 애타는 마음에 급성 심장병을 앓기도 하였다. 그녀의 어머니가 말하기를 “앞으로 너는 어디에도 가지 못한다. 내가 죽을 지경이란 말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이번의 오대산 여행을 한시도 잊지 못하였으며, 심지어 몇 차례 자기가 승복을 입고 있는 꿈을 꾸기도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출가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나, 어머니가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그녀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는 불교신자입니다. 제가 출가하는 것은 좋은 일이잖아요. 하물며 집에 오빠와 언니도 있고 손자도 있으니, 저 하나 없다고 하여 안 될 것이 없지 않습니까! 어머니가 출가를 못하게 하면 제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십니까?”


그러나 어머니는 단호하게 말하였다. “다른 사람은 출가해도 되지만 내가 살아있는 한 너는 안 된다. 네가 출가하면 내가 제 명에 못 살 것 같다. 너는 내 마음을 아느냐?”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석가모니부처님이 집을 떠나 출가할 때 아무도 모르게 떠났다는 것이 생각나, 떠나기 전에 한 통의 편지를 남기고는 집을 나왔다. 그녀는 또다시 오대산에 와서 절에 묵으며 주지스님께 출가할 뜻을 피력하였다. 그러나 주지스님은 먼저 머리를 깎지 않은 채 절 생활을 하면서, 출가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지를 보자고 하였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보름 후 오빠가 그녀를 찾으러 왔다. 그녀가 남긴 편지를 본 후, 어머니가 찾으러 보낸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어느 절에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찾는 데 보름이나 걸렸다. 오빠는 그녀에게 “어머니는 네가 집을 떠난 뒤 다시 심장병이 도져 병원에 입원하셨다. 지금은 살아나실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단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할 수 없이 오빠를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어머니는 집에 누워계셨다.


그 후 그녀는 답답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해 노스님을 찾아왔다. “저는 정말로 출가할 수 없나 봅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여전히 절에 남아 있습니다. 나이 서른이 넘었어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제 소망을 실현할 수 없으니 매일 시체가 걸어 다니는 것 같고, 살아도 죽은 것만 못합니다. 스님 어떻게 해야 될지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김영은 줄곧 눈물을 닦으면서 이야기하다가 실성한 듯이 울었다. 노스님은 그녀가 평정되기를 기다렸다가 물었다.


“아직 육식과 오신채를 끊지 않았지?”

“예, 아직 끊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내일부터 육식을 끊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예불하여라. 출퇴근할 때에는 마음속으로 염불이 끊어지지 않게 하든지, ‘천수대비주’나 ‘반야심경’, 『능엄경』을 외우거라. 저녁예불 후에는 40분에서 1시간 정도 좌선하면서 ‘염불하는 것은 누구인가?’ 살펴보아라. 그리고 금생에 지은 ‘열 가지 악업’의 죄를 조용히 기억하면서 생각이 나면 참회하거라. 네가 이렇게 지속할 수 있으면 출가한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경서를 많이 읽어라. 특히 『능엄경』은 여러 번 읽어야 한다. 그러면 지혜가 증장할 것이다. 재가에 있어도 출가와 마찬가지로 홍법이생(弘法利生: 불법을 널리 펴고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의 일을 할 수가 있다. 인연 따라 교화한다고 하지 않더냐! 너의 출가 인연은 아직 이르지 않았으니, 억지로 출가하려고 하지 마라.


불법을 배우는 것은 바로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거늘, 하물며 너의 모친이 아니더냐. 자신의 소망 때문에 모친을 해롭게 해서는 안 된다. 네가 출가할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대략 3년 정도 남았다. 만약 네가 정말로 현재의 집착을 놓을 수 있으면, 아마도 조금 앞당겨질 것이다.”


김영은 노스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따르겠다고 하였다. 그날 저녁 김영의 일이 생각나 왜 출가를 하려는지 전생의 인연을 여쭤보았다. 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100여 년 전 오대산에서 수도하던 한 청년이 있었는데, 대가집 규수의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되었다. 어느 날 이 아가씨는 시녀를 거느리고 도관에 와서, 그 수도자에게 예를 올린 후 무언가를 싼 보자기를 건네주었다. 수도자가 열어보니 약간의 은전이 들어있었으며, 그 아가씨에 대하여 감격스러운 마음이 우러났다. 이럭저럭하는 가운데 두 사람은 사랑의 감정이 생기게 되었으며, 수도자는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마침내 그 아가씨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싫어서, 그들은 시녀를 데리고 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가서 정착하여 살게 되었다. 결혼 후 두 사람은 서로를 극진히 사랑하고 공경하였다. 남편은 여전히 수행을 하고 아내는 남편을 여러 모로 돌보았으며, 남편은 아내에 대한 사랑의 정이 식지 않았다. 시녀도 평생 그들을 따르면서 시봉하였다.


금생에서 김영은 바로 전생의 수도자이며, 정에 집착하는 마음이 깊었기 때문에 여자의 몸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모친은 바로 전생의 대가집 규수로 수도자의 부인이다. 김영의 부친은 바로 그 시녀로서 전생에 사람됨이 단정하였기 때문에 금생에 남자의 몸으로 바꿔 태어났으며, 여전히 전생의 아가씨(즉 김영의 어머니)에 대하여 여러 모로 보살피는 마음이 많이 남아 있다.


스님의 법문은 나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수도하는 사람이 감정의 집착을 끊지 못하면 끝내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수도하기 어렵구나, 걸어서 하늘에 오르는 것만큼이나.

교육하기 어렵구나, 불속에 연꽃을 심는 것만큼이나.

욕망 끊기 어렵구나, 모래를 쪄서 밥을 짓는 것만큼이나.


따라서 법을 듣고 믿으면서 애욕을 끊는 것이 바로 수행인의 근본이다. 

출처 : 문재인 & 자연 문화 동호회
글쓴이 : 농심라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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