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의 불안정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한계에 이른 양적완화, 천문학적 부채위기가 전후 70년간 세계를 지배해온 달러기축체제의 조종(弔鐘)을 울리고 있다. 미국이 최근 강력히 시행하고 있는 ‘대규모 무역전쟁’과 ‘금리인상’, 그리고 ‘경제제재의 남발’은 본질적으로 달러기축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3대 경제전략이다. 당연히 이에 대항하는 주요국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달러국채를 팔아치우고, 제재에 저항하면서 달러결제시스템을 우회하는 새로운 국제결제시스템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세계는 새로운 다극화된 경제질서로의 전환기에 서있다.[필자주] 1. 양적완화가 끝나고 있다 2. 금리인상과 무역전쟁 그리고 경제제재의 향방 3. 중국제조 2025와 미중 무역전쟁의 향방 4. 윤곽을 드러내는 다극화 경제질서 |
1) 세계질서 전환을 추동하는 ‘3대1’의 전략구도
2018년 세계정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북한(조선)의 핵무력 완성에 의한 북·중·러 3개 핵보유국간의 전략적 협력관계의 실현이다. 역사상 처음 북·중·러 대 미국이라는 3대1의 핵보유국간 대결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이것은 전후 미국 우위의 핵패권 구도가 완전히 무너지는 역사적 사변이다. 이 전략구도는 강력한 전쟁억지력으로 작동해 시리아전쟁을 필두로 아프가니스탄전쟁, 예멘전쟁, 그리고 65년을 끌어온 한반도전쟁이 완전히 끝나고 있다. 세계 각지의 전쟁이 거의 동시에 끝나고 있는 것이다. 전후 역사에서 미국이 개입한 주요 전쟁이 이처럼 한꺼번에 끝나는 경우는 처음이다.
이와 관련해 또 하나 주목할 사건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은 계속해서 세계의 경찰일 수는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시리아 주둔 미군의 전면철수 명령과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부분철수 결정 보도가 나온 직후다. 이에 대해 러시아 관영 스푸트니크뉴스(Sputniknews)는 “(공식적인 그 발언이) 올해(2018년)의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볼 수 있다”는 전문가 발언을 보도하였다. 그 이유는 ‘미국이 더 이상 해외 군사작전에 수백억 달러를 퍼부을 여력이 없음’을 드러낸 것으로, 이는 “미국 패권을 이루는 경제, 제도, 군사적 기초의 붕괴가 이제 가시화”되었다는 것이다. 실제 미 의회조사국도 지난해 11월 ‘러시아나 중국을 상대로 한 전쟁이 벌어진다면 패배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의회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이것은 군사력면에서도 미국이 러시아나 중국에 뒤진다는 솔직한 토로다. 이미 수년 전부터 제기되어온 ‘미국의 세기가 끝나고 있다’는 조짐이 이제 가시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이렇듯 핵보유국간 3대1의 전략구도 형성과 미국의 ‘세계경찰 포기’는 동전의 양면이다. 상당수 국내외 주류언론들은 미국의 세계경찰 포기가 트럼프 대통령의 지나친 미국우선주의의 산물이라거나 동맹국에 방위비를 더 내게 하기 위한 술수라는 등 트럼프 정부 정책위주로 보도하고 있다. 이런 류의 분석은 마치 트럼프 대통령이 마음을 바꾸거나, 대통령을 교체하면 언제든 미국이 세계경찰 지위를 회복할 것이라는 착시를 일으킨다. 그러나 본질은, 이제는 미국이 세계경찰 역할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미국의 일방적 패권주의에 반대하는 핵무력 완성 3국의 전략적 단결과 미국의 군사력, 경제력의 위축으로 미국이 더는 세계경찰 노릇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전환적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과거의 향수에 젖어있는 미 군산언복합체를 비롯한 추종, 동맹세력들은 어떡해서든 시리아 철군을 미루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유지하면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되돌리려 하고 있다. 올해는 이 전환적 흐름이 확고히 자리 잡는가 아니면 뒤로 더 밀린 것인가를 가르는 결전의 해가 될 것이다. 이에 대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2일 ‘대만동포에게 고하는 편지’ 발표 40주년 기념연설에서 “현재 세계는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대변혁기”라고 규정하고 군에 전쟁 계획을 철저히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중국은 차제에 대만과의 통일까지 내다보고 있다. 러시아 역시 지난해 3월에 이어 12월에도 최첨단 극초음속 전략무기 ‘아방가르드’ 등을 선보이며 평화정착 흐름을 거스르려는 미국을 위축시켰다. 미국은 3대 핵보유국의 전략적 단결에 의한 강력한 전쟁억지력에 의해 더 이상 세계 각지에서 전쟁을 일으키거나 확대하지 못할 것이다.
2) 다극화 세계경제질서의 주체 – 브릭스 플러스(BRICS+)
이러한 지정학적 변화는 미국 주도의 세계경제질서의 근본적 변화과정과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무엇보다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를 중심으로 한 남남협력의 강화는 달러기축체제를 끝내는 새로운 국제금융질서 수립과정과 맞물려 새로운 다극화 세계경제질서의 핵심 동력이다.
2017년 9월 중국 샤먼에서 열린 9차 브릭스정상회의에서 중국은 ‘브릭스 플러스’(BRICS+)라는 남남협력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였고, 지난해 7월 10차 브릭스정상회의는 요하네스버그선언을 통해 다자주의 세계경제질서의 주체로서 브릭스 플러스를 제창했다. 주지하듯이 남남협력이란 주로 남반구에 몰려있는 개발도상국과 신흥국들간의 무역, 산업기술, 금융 등 전반의 경제협력을 의미한다. 이는 북반구 선진국들의 경제침탈에 대항한 신흥국들의 자주적 경제발전을 위한 협력체계로, 그간 아프리카-남미협력회의(ASA) 등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미국과 유럽의 방해와 간섭으로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 지난해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석한 인도의 모디 총리(왼쪽), 중국의 시진핑 주석, 남아공의 라마포사 대통령,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브라질의 미셰우 테메르 당시 대통령. |
그러나 이제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중국을 중심으로 국제통화기금(IMF)를 대체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설립하고, 또 세계은행(IBRD)를 대체하는 브릭스 자체의 신개발은행(NDB)이 설립되어 브릭스만 아니라 기타 신흥국 및 개발도상국의 인프라 건설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자금지원 체계가 마련되었다. 이로써 남남협력은 미국 등 서방의 간섭과 방해를 배제하고 실질적으로 발전해갈 수 있는 금융적 토대를 갖추게 되었다.
이에 기초한 브릭스 플러스는 기존 브릭스 국가들과 여타 신흥국 및 개발도상국들과의 연계를 강화하여 남남협력체제를 완성해 나간다는 브릭스의 전략방향이다. 즉 브릭스 자체를 확대하기보다 브릭스를 축으로 한 남남협력을 확대 강화한다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이를 “보다 밀접한 파트너십 네트워크”로 정의하였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초강대국(미국)에 의한 경제제재나 경제전쟁이 없는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이 주연인 “새로운 유형의 국제관계”(a new type of international relations) 건설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존 미국 중심의 패권적 세계경제질서를 신흥국, 개발도상국 중심의 다극화된 새로운 경제질서로 바꿔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의 실현을 위해 남남협력을 4차 산업혁명의 중심으로 발전시킨다는 “신산업혁명 브릭스 파트너십”(the BRICS Partnership on New Industrial Revolution)을 제안하였다. 이것은 남남협력을 기존의 신흥국간 호혜적인 무역, 금융, 기술교류 수준이 아니라 향후 세계경제를 주도해 나갈 첨단산업의 중심기지로 바꿔나간다는 전략이다. 자금과 첨단기술의 준비는 새로운 경제질서 구축의 핵심이다. 중국은 자국의 ‘일대일로’와 ‘중국제조2025’ 전략을 5대륙의 남남협력 체계인 브릭스 플러스에 기반한 “신산업혁명 브릭스 파트너십” 전략과 연동시키고 있다.
여기에 더해 브릭스는 기존 지역협력기구의 집합체(the aggregation of regional integration groups)로서 빔스(BEAMS) 건설을 선언하였다. 빔스는 아프리카 연합(AU), 상하이협력기구(SCO),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같은 기존 남남간의 지역협력기구를 더 큰 통합체계로 묶는다는 의미다. 중국 왕이 외교부장은 브릭스 플러스와 빔스를 “세계적 영향력을 가진 남남협력의 가장 확장된 플랫폼”(most extensive platform for South-South cooperation with a global impact)으로 정의하였다. 브릭스는 남남협력체계를 개별 국가와의 네트워크 확대와 지역연합기구의 통합이라는 중층적 구조로 만들어 새로운 세계경제질서의 강력한 중심주체로 세우려는 것이다.
이같은 중층적 남남협력체계가 건설되면 내부거래에 사용되는 통화체제는 당연히 달러가 될 수 없다. 달러기축체제는 붕괴된다. 세계는 다극형에 맞는 통화체계를 갖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중‧러를 중심으로 한 여러 신흥국들은 ▲달러를 대체하고 새로운 기축성을 세우기 위한 금 보유 확대와 국가 차원의 암호화폐 준비 ▲국제달러결제시스템 스위프트(SWIFT)를 대체할 새로운 결제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다.
3) 2024년 달러 사용 폐기 선언과 RCEP
이와 관련해 달러 사용 폐기계획을 선명하게 내세운 국가는 러시아다. 러시아 재무부는 지난 해 10월 2024년까지 달러 의존에서 벗어날 것을 발표하였다. 달러 사용 폐기를 시한을 정해 발표한 경우는 처음이다. 이를 위해 러시아 정부는 무역결제를 달러 대신 루블로 할 것을 기업에 촉구하고, 특히 러시아가 세계적 우위에 있는 석유, 가스, 무기 수출 등은 루블로 거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 터키나 인도는 러시아 최첨단 미사일방어시스템(MD) S-400 구입대금을 루블로 지불하였다. 더불어 러시아는 지난해 보유한 미 국채 84%를 매각하고 그 대금으로 금을 사는 등 2000톤 이상의 금을 확보하여 루블의 신뢰성 제고는 물론 달러기축 폐기를 준비하고 있다.
사실 러시아가 달러 사용을 중단한다는 것은 러시아 일국에만 적용될 사안이 아니다. 러시아 주도의 국제협력체인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독립국가연합(CIS)은 물론 브릭스의 무역거래 역시 달러 사용 폐기를 지향하고 있다. 주지하듯이 러시아는 미국과 자웅을 겨룰 정도의 군사대국이다. 이미 중동의 새판짜기는 러시아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치, 군사적 힘의 우위는 경제질서 형성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이미 이란, 터키는 무역거래에 달러 사용을 줄이고 자국 화폐나 위안, 루블, 유로 비중을 높이면서 금 보유를 확대하고 있다. 터키는 유럽으로의 관문이고, 이란은 유라시아의 중심이다. 향후 중동은 러시아를 중심으로 이란과 터키가 협력하여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를 견인하면서 안정화의 길을 열 것이다. 이 변화 과정에서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이 이들 나라와의 협력(남남협력) 아래 확대되면서 중동은 달러를 배제한 다극화 경제질서의 한 축을 담당할 것이다.
또 브릭스의 일원인 인도는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와 루피와 바터제(barter. 물물교환)에 의한 거래, 중국과도 자국 통화 거래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달러가 부족한 베네수엘라와는 인도 의약품과 석유거래 바터제를 추진하고 있다. 인도가 사실상 돌아서면서 미‧일이 추진하던 중국포위전략인 인도-태평양 전략은 무너졌다(중국의 달러 사용 중단 관련 사항은 이 글 3편 참조 바람).
아시아에서 가장 주목할 다극화 흐름은 중국 주도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다. RCEP는 아시아 10개국과 한국, 중국, 일본,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 16개국이 참여하여 세계 인구 절반과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최대 규모 경제협정으로 올해 최종 타결될 것으로 보인다. 이 협정이 주목되는 것은 처음으로 미국이 제외되고 중국 주도로 아시아의 통합된 경제블록(질서)이 건설된다는 점이다. 중국은 이 협정을 아시아지역 남남협력 모델로 세우려 하고 있다. 당연히 달러 사용을 당장 중단하지는 못하더라도 줄이게 되고 위안화 사용 비중은 대폭 늘 것이다. 이에 대해 러시아 관영 스푸트니크뉴스는 현 세계경제에 대해 ‘미국의 경제제재 남발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이탈로 사실상 국제무역기구(WTO)의 규정이 무력화된 상황’이라고 진단하고 “(RCEP는)중국을 비롯한 역내 국가들의 대안적인 국제 및 지역 무역 규정 마련을 위한 시도”라고 평가하였다. RCEP는 다극화 경제질서의 아시아지역의 축이 될 것이다. 지난해 말 발효된 일본, 호주 주도의 11개국 ‘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경제공동체협정’(CPTPP)은 중국포위 성격을 폐기하고 RCEP와 협력할 수밖에 없다.
70년 이상 세계를 지배해온 달러기축체제가 그 수명을 다하고 있다. 그 기한이 러시아가 계획하는 2024년이 될지, 중국이 전망하는 2025년이 될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얼마 남지 않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이런 대전환기에는 항시 과거의 향수에 젖은 자들에 의해 긴장과 혼란이 높아지는 법이다. 전쟁이 발발한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역사상 처음 출현한 핵보유국간 3대1의 전략구도는 강력한 전쟁억지력으로 작동하여 더 이상 세계대전과 같은 큰 전쟁은 없을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실현은 바로 이러한 세계사적 대전환의 일환이다. 불가역적이다. 미국 패권체제 몰락은 그 시작과 함께 만들어진 인위적 분단장벽도 무너지게 할 것이다. 통일한반도의 출현이 가까워지고 있다. 고난의 역사를 이겨낸 통일한반도는 남남협력의 한 축으로 세계적 번영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끝)
손정목 4.27시대연구원 국제분과장 webmaster@minpl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