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동시다발적인 테러 여파가 유로존과 글로벌 경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정부와 한국은행이 대응방안 마련에 고심에 빠졌다.
이번 파리 테러가 미국 뉴욕에서 일어난 2001년 9·11 테러와 버금가는 경제적 여파를 일으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내수에 힘입은 국내 경기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사태가 일어난 프랑스가 우리 경제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국내 경기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 파리 테러 여파, 아시아 금융시장 불안…정부, 시장상황점검회의 개최
파리 테러 발생 후 처음 열리는 16일 호주와 아시아 증권시장은 개장 직후부터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 증시는 장 초반 각각 1% 넘는 급락세를 보였다. 일본의 닛케이 지수와 한국의 코스피 지수도 1% 이상 하락세를 보였다.
파리 테러 여파가 증권시장으로 번지고 있다. /조선DB
엔화는 글로벌 위험 회피 심리에 강세를, 유로화는 추가 양적완화 가능성에 급락세를 보였다. 달러화는 엔화에 대해 달러당 0.26엔 떨어진 122.39엔을 기록했다. 유로화는 달러화에 대해 유로당 0.0028달러 밀린 1.0721달러를, 엔화에 대해서는 유로당 0.61엔 급락한 131.25엔을 나타냈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 또한 전 거래일보다 7.7원 오른 1171.5원에 거래를 시작했다.
이같이 파리 테러에 대한 공포로 금융시장 불안감이 고조되자 기획재정부는 주형환 1차관 주재 시장상황점검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는 주 차관을 비롯해 기재부 경제정책국장, 국제금융정책국장, 대외경제국장 등이 참석했다.
한국은행은 별도 회의를 열지는 않았지만,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파리 테러가 유럽 경제에 영향을 미칠 리스크 사안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이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며 "시장 참여자들의 반응을 조금 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제2의 9·11 될까?…글로벌 경제 불확실성 가중될 듯
시장에서는 이번 파리 테러 여파가 2001년 뉴욕 9·11 테러와 비슷한 형태를 나타내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번 사태가 유럽지역의 경기회복세에 발목을 잡으면서 글로벌 성장 둔화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로존은 지난 지난 3분기 GDP(국내총생산)가 전망치(0.4%)보다 낮은 0.3%를 기록하면서 성장둔화가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우려를 낳은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파리 테러로 유럽 지역 실물 경제가 크게 위축될 경우 신흥국의 경제 불안으로 성장세가 위축된 세계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9 ·11 테러가 발생한 지난 2001년 당시 미국 경제 성장률은 4.1%에서 1.0%로 곤두박질쳤다. 테러 이후 국가간 국경통제가 강화되면 교역활동이 급격하게 위축되면서 성장 모멘텀이 떨어질 수 있다. 미국은 2001년 당시 수출과 수입이 각각 6% 이상 감소하는 타격을 입었다. 파리 테러 영향으로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이탈리아 등이 국경 통제에 나섰기 때문에 교역 위축은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있다.
일각에서는 파리 테러가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가중시킬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12월로 예상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의 금리인상이 더 늦춰질 수 있다는 것이다. 2001년 9 ·11 테러 때는 영국의 영란은행(BOE)과 일본은행(BOJ)가 기준금리 인하와 통화 공급 확대로 대응했고, 50여명이 사망한 2005년 영국 런던 열차 테러 때는 연준과 유럽중앙은행(ECB)이 기준금리 인상을 한달 씩 늦췄다.
연준이 파리 테러 여파를 심각하게 보고 금리인상 일정을 늦추게 되면 달러 강세 등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테러로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프랑스인들의 모습./블룸버그 제공
◆ 중국 수출에 타격 줄 땐 한국도 부담 가중
유로존이 중국의 주력 수출시장이어서 한국 경제에도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중국의 대(對) EU 수출액은 3700억달러(약 432조원)로 미국(3970억달러)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중국은 한국 교역량의 25%를 차지하는 최대 수출국이다. 중국의 대 EU 수출에 차질이 빚어지면 한국 경제도 타격이 불가피한 구조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사태로 인해 중국과 한국의 대 유럽 수출이 더욱 안좋은 상황으로 갈 수 있고, 유로존 불안으로 환율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이번 테러 사태가 단기에 해결되지 않아서 테러 위험이 높아지고 전쟁으로 확대될 불안 요인이 생긴다면 대 유럽 수출이 더욱 안좋은 흐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파리 테러 여파가 한국 경제에 미칠 직접적인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올해 1~9월 한국의 대(對) 프랑스 수출액은 20억달러로 전세계 국가 중 29위 수준에 머물렀다는 점을 감안한 분석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파리 테러가 주는 충격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9·11 테러와 비슷한 여파를 줄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면서 “한국과 프랑스 간 실물경제 연결 고리가 약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파리 테러가 국내 경기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정원석 기자 lllp@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