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턴트커피도 이제 원두 경쟁 시대 얼마 전 아라비카 원두를 사용해 그 맛과 향을 그대로 살렸다는 인스턴트커피 신제품이 출시되었다. 블루 마운틴이나 케냐 AA처럼 익숙하게 듣던 원두 이름도 아닌 아라비카 원두가 무엇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커피콩에 대한 공부가 조금 필요하다. 커피콩은 크게 아라비카 종과 로부스터 종으로 나뉜다. 아라비카 종은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데 맛이 부드럽고 향이 깊은 편. 이에 비해 로부스터 종은 맛이 쓰고 향도 부족해서 생산량은 적지만 가격이 싸다. 인스턴트커피는 어차피 추출 건조 등의 과정에서 향이 다 날아가기 때문에 대부분 값이 싼 로부스터 종을 사용해 왔다. 그런데 인스턴트커피이면서 최고급 아라비카 종을 사용하였다고 하니 이제 인스턴트커피도 원두 따라 골라 마시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인스턴트커피 공화국, 대한 민국 사실 이렇게 인스턴트커피까지 최고급 원두를 사용해서 만들게 된 배경에는 우리나라의 거대한 인스턴트커피 시장이 있다. 우리나라는 커피 소비량은 세계 11위지만, 인스턴트커피 소비량은 세계 정상이다. 서유럽, 미국 등은 원두커피가 커피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일본도 원두커피가 60%를 차지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반대로 인스턴트커피가 78%를 차지한다. 원두를 갈아 만든 커피를 판매하는 테이크아웃 커피숍이 골목길까지 생겨날 만큼 커피가 유행이라고 하지만 인스턴트커피 소비량은 원두 소비량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커피 믹스 때문이다. 요즘은 커피병, 프림병, 설탕병을 조로록 놓고 커피 타는 모습을 집에서조차 보기가 어렵다. 봉지 뜯어 가루를 넣고 종이컵에 7부쯤 물을 부으면 ‘간’이 딱 맞는 커피 믹스가 있으니 아무도 3번이나 뚜껑을 여닫는 수고를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사무실에서도, 식당에서도, 산에서도, 바다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커피 믹스를 마신다.
세계 최초 발명품에서 이제는 수출 효자 상품까지 매일같이 커피 믹스를 마시지만 커피 믹스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발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지금처럼 작은 봉투에 커피와 크리머, 설탕을 한데 넣어 판매한 믹스는 76년 우리나라 동서식품에서 처음 개발한 것. 성격 급한 우리나라 사람들 취향에 딱 맞아 인기를 끌었고 사무실 등에서 꾸준히 사용하면서 그 입맛에 중독된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인기가 많은 만큼 우리나라 커피 믹스는 맛이나 종류, 품질에 있어서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카페인과 칼로리를 반으로 줄인 커피는 물론 커피에 든 항암 물질 폴리페놀의 양을 2배로 늘린 커피, 얼음물에도 녹는 아이스커피용 커피와 카푸치노처럼 거품이 생기는 인스턴트커피도 있다. 커피, 크리머, 설탕이라는 커피 믹스의 기본 3요소를 깨고 요즘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춰 블랙 커피 믹스도 나왔다. 이젠 입맛대로 커피를 타 먹는 것이 아니라 입맛대로 커피 믹스를 골라 마시면 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종류와 뛰어난 맛 덕분에 저급한 커피 문화라고 손가락질 받던 커피 믹스가 수출 효자 상품까지 되었다.
커피 믹스에 알맞는 커피 문화가 필요하다 물론 커피 믹스에 들어 있는 크리머는 식물성 지방 덩어리로 지속적으로 오래 섭취하면 체중과 콜레스테롤 관리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같은 양의 커피라도 인스턴트커피에는 원두 커피의 5배에 달하는 카페인이 들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아무리 인스턴트커피, 커피 믹스가 일반화되었다고 해도 계속 좋다고만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믹스 커피는 이미 우리의 문화이고 어디서든 부담 없이 손님에게 내어 주는 마음의 표현이 되었기 때문에 믹스 커피를 당장 끊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건강하게 인스턴트커피를 즐기려면 결국 스스로 맛과 횟수를 조절하는 것 뿐이다. 인스턴트 커피라도 더 맛있게 즐기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그런 노력은 또 다른 커피 문화를 만들어 낼 바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