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G2(미국과 중국)가 아니라 브라질, 러시아 등 신흥국들이다. 신흥국 위기가 우리 경제를 흔들 수 있다.”
정부 고위당국자가 사석에서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언급하며 했던 말이다. 미국이 다음달 중 금리 인상에 나서면 국제 투자자금은 신흥국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크다. 신흥국에서는 기업들이 부채 상환 압력에 시달리고 달러 부족 및 외환위기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우리 경제도 신흥국발 경제위기에 휩쓸릴 수 있다. 이 당국자는 “우리나라의 신흥국 익스포저(위험노출액)가 얼마 안 돼서 괜찮다는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는 우리가 신흥국에 익스포저가 많아서 그렇게 됐느냐”고 반문했다.
◆G신흥국 부채 위험수위
22일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18개 신흥국의 총부채는 지난 1분기 기준 58조달러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28조달러나 늘어났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은 역대 최고인 195%까지 치솟았다. 특히 비금융기업 부채가 23조7000억달러까지 늘어 GDP 대비 90%를 넘겼다. 이는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이 양적완화 정책을 펴면서 시중에 5조9000억달러를 풀었기 때문이다.
신흥국 기업들은 중국 성장둔화, 원유 등 국제원자재 가격 하락 등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이 금리인상을 시작하면 원리금 상환압박, 신용경색, 채무불이행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내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신흥국 비금융기업 부채는 6000억달러에 달한다. 이 중 850억달러는 달러표시 채권이다. 내년에 갚아야 할 달러표시 채권이 많은 국가는 한국(210억달러), 중국(90억달러), 브라질(90억달러), 멕시코(70억달러) 순이다.
◆G한국도 안전지대 아냐
우리나라도 결코 안전지대가 될 수 없다. 특히 가계빚 문제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한국은 지난 1분기 기준 18개 신흥국 중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84%로 1위에 올랐다. 선진국 평균(74%)을 넘어서는 것을 물론이고 아시아 신흥국 평균(40%)보다 2배 이상 높다. 1인당 가계부채는 3만달러로, 18개 신흥국 중 싱가포르(4만3000달러)와 홍콩(3만2000달러)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GDP 대비 비금융기업 부채비율도 106%로 선진국 평균(90%)을 10%포인트 이상 웃돌면서 18개 신흥국 중 홍콩(226%), 중국(161%), 싱가포르(142%)에 이은 4위였다.
GDP 대비 정부부채비율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 24%에서 지난 1분기 41%로 높아져 신흥국 중 남아프리카공화국(32%→55%)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상승폭을 나타냈다. 이로써 우리나라의 GDP 대비 총부채(가계·기업·정부 부채)는 2008년 금융위기 전 272%에서 지난 1분기 기준 317%까지 상승했다.
◆G금융시장 취약 부분 점검 나선 금융당국
정부도 비상이 걸렸다. 금융당국은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에 대비해 시장상황 점검회의를 격주로 정례화하고 국내 금융시장에 취약고리가 있는지를 재점검하고 있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은 지난 18일 김용범 금융위 사무처장 주재로 시장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최근 시장 동향과 대내외 잠재 리스크가 금융회사의 건전성에 미칠 영향을 살펴봤다. 이 회의에서 김 사무처장은 미국의 금리 인상과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기업 부실 사태가 금융시장 충격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점검해 다음 회의 때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금융당국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회사채 시장 경색으로 시장을 통한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질 가능성이다. 미국의 금리인상을 앞두고 조금이라도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려는 회사채 발행 기업이 줄을 잇고 있지만, 수요예측 과정에서 매각수요를 채우지 못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기업 구조조정 본격화에 따른 금융사의 건전성 이슈도 주요 점검 대상이 될 예정이다. 대우조선해양의 숨은 부실이 한꺼번에 드러나면서 은행들의 대손충당금 부담이 크게 불어날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은 또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출 동향과 외환수급 현황, 주식·채권시장의 가격변동성 등을 상시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이귀전·오현태 기자 frei5922@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