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강남의 마지막 노른자 땅인 강남구 수서-대치지역 공공용지가 개발이 불가능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임에도 불구하고, 시공자인 한보주택(정태수회장)의 요구에 의해 서울시가 현행법을 무시한 채 아파트 건축허가를 내주면서 <한보 수서비리사건>이 터지게 된다. 그 과정에는 <청와대>와 정치권의 힘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밝혀진다.
<같은 해 3월>, 부 총장실을 점거하며 학원자주화 투쟁을 벌이던 명지대학생 <강경대군>이 경찰에 의한 구타로 사망을 하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에 따른 국민들의 분노와 원성이 높아지자, 오대양 집단자살사건(1987년 8월에 발생한 집단 자살사건으로 당시 아무 것도 밝혀지지 않은 채 수사가 종결 되었다)이 <1991년 7월>, 다시 세상 밖으로 이슈화되면서 검찰은 당시 세모사장이던 <유병언>을 소환조사 오대양사건과의 관계를 밝히려 했지만 성과를 얻지 못하고, 유병언을 <상습사기혐의>로 징역 4년을 받게한다.
결국, 앞의 두 사건은 갑자기 다시 떠오른<오대양집단자살사건>과 <구원파 유병언>에 의해서 뭍혀버리게 된다.
그 당시 김기춘(현 대통령비서실장)은 <법무부장관>에 재직 중이었다.
그리고 25년여가 지난 <2014년>, 김기춘과 유병언은 <세월호침몰>사건을 통해서 다시 만나게 된다.
<세월호침몰 사건>이 일어난 <2014년 4월 16일> 바로 전 날인 <4월 15일>, 간첩증거조작사건과 관련해 국정원2차장이 사의를 표하고 남재준국정원장이 대국민사과를 한다. 그러나 남재준국정원장은 “참담하고 책임을 통감한다”라고 말했을 뿐 사퇴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는다. 이에 야당은 즉각 반발을 하고 국민여론은 불만과 원성으로 높아간다.
그날 밤 <4월 15일>, 인천항은 짙은 안개로 모든 선박들은 출항하지 못하고 정박해 있었다.
한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9시 경> 단원고 수학여행 학생들을 태운 <세월호>만은 운항규정을 무시한 채 갑자기 출항을 강행한다.
그리고 다음날 <4월 16일 아침> 어처구니없는 참혹한 비극을 맞게 된다.
한데 우연의 일치일까? 운명의 장난일까? 의도적 처사일까?
<세월호대참사>사건으로 김기춘과 유병언은 또다시 만나게 되었다.
1991년 오대양자살 사건 때 법무부장관이던 김기춘과, 유병언, 그리고 2014년 세월호침몰 사건으로 다시 만난 대통령비서실장 김기춘과 유병언,,, 참으로 묘한 인연이다.
공교롭게도(?)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원성과 비판여론이 거세게 형성되는 시점에서 <뜻하지 않은 사건의 발생>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시작한다.
의혹도, 의문점도 많은 <3류 도색잡지>에나 나올 법한 일들이 21세기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진다.
'종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美싱크탱크 `세월호참사, 美지원 한국독재 자본주의의 산물` (0) | 2014.05.29 |
---|---|
[스크랩] 세월호참사 서울대교수들 시국선언문 (0) | 2014.05.21 |
[스크랩] 특종 ▶▶ 경악할 해경 사진 공개 ▶▶ (0) | 2014.05.13 |
[스크랩] 언딘 "렉카 출동하듯 갔더니 300명이 갇혀있는 상황" -허핑턴 포스트 코리아 (0) | 2014.05.09 |
[스크랩] [단독]유병언 계열사 130개.. 허위 컨설팅비 400억 (0) | 2014.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