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에 대한 관심은 명상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동양에서보다 서양에서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명상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1천만 명 정도의 성인들이 정규적으로 명상을 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 숫자는 미국 성인 8명중 1명에 해당한다.
미국에서의 명상 붐
미국의 경우 학교, 병원, 법률사무소, 정부청사, 회사 사무실 등에서 명상을 하고 있고, 심지어 교도소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공항에는 기도실이나 인터넷방 옆에 명상방이 완비된 곳도 있다. 웨스트포인트에서는 명상을 학과목에 포함하고 있고, 뉴욕의 캣스킬스 호텔은 매우 빠르게 명상수련원으로 변신하고 있으며, 많은 유명인사들이 명상을 수행하고 있다. 명상을 수행하는 유명인사 중에는 영화배우 골디 혼, 헤더 그라함, 리차드 기어,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 컨트리 가수 시나이어 트웨인, 포드 자동차의 총수 빌 포드, 정치인 앨 고어 등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 수행되는 명상의 유형은 다양하다. 즉, 초기에 미국을 포함한 서양에서 명상에 대한 관심을 끌기 시작한 마하리쉬가 보급한 초월명상(Transcendental Meditation, TM)을 비롯해서, 화두선이나 묵조선 계통의 선(Zen), 티벳불교의 명상방법, 남방불교의 비파사나(Vipassana) 등 다양한 유형의 명상이 수행되고 있다. 여기에 요가나 태극권 등의 움직이는 명상도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전통적으로 불교의 승려들과 재가신자들을 중심으로 참선 또는 염불의 형태로 명상이 수행되어 오고 있다.
이밖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선도仙道 계통의 수련이 행해져왔으나 근대화 과정에서 거의 명맥이 끊어졌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부터 다시 활성화되면서 단월드(얼마 전까지는 단학선원), 국선도, 연정원 등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보급되고 있다. 최근에는 국제화 추세와 함께 외국으로부터 명상방법이 수입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중국으로부터 기수련이 수입되면서 여러 가지 기공이나 태극권 수련이 소개되고 있고, 미얀마나 태국 등으로부터 남방불교의 전통적 수행방법인 비파사나(Vipassana)가 들어와서 일부 불교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이를 수행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한편 미국 등 서양으로 들어간 동양의 명상이 다시 우리나라에 역수입되는 현상도 많아지고 있다. 초월명상, 요가, 비파사나, 태극권 등이 이러한 명상에 속하는데, 특히 요가는 최근에 미국에서의 인기와 맞물려 우리나라에서도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명상의 역사
명상에 대한 관심이 최근에 증가하고 있으나, 그 역사는 매우 오래 되었다. 선사시대부터 시작된 명상은 여러 문화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수행되어 왔다. 특히 대부분의 종교에서 명상은 종교적 수행의 한 방법으로 행해져 왔다. 여러 가지 명상이 수행되어 오지만, 이러한 명상은 대개 언어적이고 사변적인 작용을 최소화하고 마음을 순일하게 함으로써 마음을 정화하고 자기 자신과 세계에 대해 직관적인 앎에 이르고자 한다. 종교에 따라서는 이러한 직관적 앎을 신의 영접 혹은 계시로 설명하기도 한다.
고대 힌두 성전인 베다Veda에도 명상이 기술되어 있으며, 불교에서도 다양한 명상법이 깨달음을 얻는 방법으로 수행되어 오고 있다. 불교의 경우에는 오랜 역사 속에서 여러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다양한 명상방법을 발전시켜왔다. 원시불교시대의 대표적 명상방법인 비파사나 이외에도 티베트지역에서 발전된 독특한 명상방법, 동북아시아에서 발전된 화두선이나 묵조선, 후기불교에서 발전된 다양한 염불 등 불교는 많은 명상방법을 포함하고 있다. 화두선은 수수께끼와도 같은 화두 혹은 공안公案에 마음을 집중하는 수행이며, 묵조선은 비파사나의 동북아시아 형태로 묵묵히 마음을 관조하는 수행이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에서도 신에게 가까이 가는 방법으로 명상이 수행되어 왔다. 특히 초기 기독교 성부들과 이슬람교의 수피파에서는 명상을 중요한 수행방법으로 삼았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기독교에서는 신비주의의 요소를 배제하는 가운데 명상의 전통이 약화했다. 유대교의 일부에서는 오래 전부터 카발라Cabala라는 명상방법을 통해 신과의 소통을 꾀하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서 서구에서는 기존의 이원론적이고 물질중심적인 서구문명과 사상에 대한 반성이 대두되면서 이러한 반성과 새로운 활로 모색의 일환으로 비이원론적이고 정신을 중시하는 동양문명에 눈을 돌리게 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힌두교, 불교 등의 동양종교가 서양에 소개되고 아울러 자연스럽게 명상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게 된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에서는 불교계통의 명상 이외에도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부터 선도계통의 명상이 수행되어 왔다. 선도에서는 심신 수행을 통해 자기완성을 추구하는데 궁극적으로 몸과 마음이 신선과 같은 완벽한 존재를 지향하기도 한다. 선도의 명상은 근대화의 과정 속에 매우 약화되었으나, 최근에는 마음과 몸의 좀더 완벽한 건강을 추구하는 목표로 일반인들 사이에 수행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전반적으로 명상은 과거에는 주로 종교적 목적으로 행해져 왔다고 볼 수 있다. 신에게 가깝게 다가가거나 신과의 합일을 꾀하기 위해서 명상을 수행하기도 하고, 자기 자신과 우주의 근원적인 진리를 깨닫기 위해 명상을 수행하기도 하며, 자기완성을 위해 명상을 수행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종교적 목적보다는 덜 무거운 목적으로 명상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즉, 명상이 가져다주는 마음의 평화와 안정, 몸의 건강 등이 명상에 대한 관심을 증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있는 명상 효과
명상이 마음의 평화와 신체적 건강을 가져다주는 효과가 크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되기 시작하면서 최근 명상이 급속히 보급되고 있다. 명상이 수행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마음의 평화를 주고 신체적 건강을 주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좋게 보면 신비적이고 나쁘게 보면 뭔가 비현실적이거나 비과학적인 것으로 인식되어온 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최근에 명상이 몸과 마음에 주는 긍정적 기능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과도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며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한 방법으로 명상이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명상이 스트레스 호르몬을 감소시켜주고, 면역계를 강화시킨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명상은 불안, 우울, 주의결핍 등의 심리적 장애의 치료에도 도움이 되고, 고혈압, 심장질환, 과민성대장증후군, 식도역류증, 건선(乾癬: 피부염의 일종) 등의 신체적 질환의 치료에도 도움이 되며 만성적인 통증의 관리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심지어 암의 진행을 늦추거나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는 보고도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대체의학의 대두와 함께 병원이나 일반 클리닉에서 명상이 심리적 및 신체적 질환의 치료에 이용되고 있다.
또한 갈수록 물질 중심적으로 돌아가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현대인들의 정신적이고 영적인 것에 대한 갈망은 반동적으로 더 커지게 되고, 이것이 명상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게 하고 있다. 정신적이고 영적인 추구는 과거에는 주로 종교를 통해 이루어졌으나, 합리적 사고의 경향이 강한 현대인들의 경우 믿음이 전제되는 비합리적인 교의가 걸림이 되어 종교에 귀의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한편 명상이 종교적 맥락에서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많이 보급되는 명상은 종교적 색채를 띄지 않는다. 명상은 특정한 믿음 없이 개인적인 수행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통찰을 얻고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으며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현대인들이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종교인의 경우에도 명상을 통해 종교적 체험을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명상수행이 선호되고 있다.
최근에 명상이 널리 보급되는 이유를 위와 같이 살펴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그 외에도 두 가지 상반될 수 있는 경향성이 작용해서 명상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하나는 민족주의의 경향성이다. 적어도 선도계통의 명상에 대한 관심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고조되는데, 이 시기는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급속히 성장하면서 민족적 자긍심을 찾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때였고, 더불어 ‘우리 것’을 발굴하고 복원하고자 하는 노력이 힘을 얻기 시작하고 ‘우리 것’에 대한 선호가 커지기 시작한 때였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함께 선도계통의 수행방법이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또 다른 하나는 이러한 민족주의의 경향성과는 반대되는 문화적 사대주의의 경향성이다. 이러한 경향성은 역사 속에서 언제나 나타나는 현상이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문화 역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게 되는 것이다. 아직도 미국 등의 서구는 문물의 흐름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높은 수위를 갖고 있다. 따라서 서구의 과학, 기술, 사상, 유행 등은 자연스럽게 우리나라로 흘러 들어온다. 이러한 상황에서 명상의 긍정적 효과가 서구에서 과학적으로 입증이 되고 또 명상수행이 유행처럼 퍼지기 시작하자 우리나라에서도 명상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한 것이다.
현대인에게 맞게 대중화 되어야
명상이 최근 들어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수행되기 시작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명상은 특별한 도구나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고 수행할 수 있으므로, 과도한 경쟁 속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간편하게 몸과 마음의 건강을 증진할 수 있는 방법이다. 특히 질병의 예방과 치료를 위해 명상이 많이 사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의 대표적인 질병들은 과거의 그것들과는 다르다. 고혈압, 심장질환, 뇌졸중, 당뇨, 암 등은 바이러스나 세균에 의한 질병이 아니다. 유전적 소인을 무시할 수는 없으나, 대개가 생활습관이나 심리적 요인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특히 이러한 질병들은 스트레스에 의해 시작되거나 악화되는데, 스트레스의 경험에 있어서 외부적 상황보다도 그것을 인식하는 개인의 성격이나 사고방식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스트레스 연구의 정설이다. 결국 몸의 질병을 다스림에 있어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예로부터 마음의 수양법으로 수행되어온 명상이 앞으로 더 넓게 보급되어 현대인의 몸과 마음의 건강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명상이 널리 퍼져서 현대인들의 심신의 건강에 더 많은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과거 전통적으로 이루어진 명상의 수행체계를 현대인에게 맞게 대중화하는 작업이 좀더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명상이 일반인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명상을 설명하는 개념들이 현대화되고 쉽게 설명될 수 있어야 하며, 명상방법도 더 쉽게 수행될 수 있게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또한 여러 명상방법들에 대한 더 많은 과학적 연구가 이루어져 개인의 특성과 동기에 맞는 명상방법이 처방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명상수행은 좀더 안전해져야 한다. 운동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명상의 수행에서도 가능한 부작용을 예상하고 이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일부에서는 명상을 수행하다가 상기병이나 기공병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는 일도 종종 있다. 앞으로 일반인에게 쉽게 다가가는 노력이 수반되지 않는 명상은 다른 명상에 도태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현대인들의 심신 건강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명상이 진화해 갈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갈수록 개인이 파편화되고 물질 중심적으로 흘러가는 문명 속에서 정신적이고 영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명상이 널리 수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으로 명상이 수행될 때 약간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글을 시작하며 명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명상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가질 수 있는 부정적 편견을 언급했지만, 반대로 명상수행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알게 모르게 가질 수 있는 부정적 편견 또한 없지 않다. 즉, 명상수행을 해야 만이 올바로 사는 것이고 영적으로 성숙해 가는 길이라고 믿으며, 명상수행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속물로 보고 헛사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또 명상수행자들 사이에도 자신들이 수행하는 명상만이 옳거나 우월하고 나머지는 그르거나 열등하다고 보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생각을 갖는다면 그것은 올바른 명상수행자의 태도가 아니며, 명상이 일반인들에게 널리 보급되는 데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다.
명상은 우리가 정신적 혹은 영적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방법 중의 하나이지, 유일무이한 절대적 방법이 아니다. 지적이고 언어적인 공부도 우리가 정신적 혹은 영적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하며, 실천을 통한 수행도 또한 그러하다. 명상과 함께 이러한 다양한 방법들을 상보적으로 수용해 나갈 때 정신적 혹은 영적 성장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몸과 마음의 건강과 치료를 위한 명상의 효과에 있어서도 자칫 그것을 절대화해서는 곤란하고, 전통적 의학 처치나 그 밖의 다른 방법들과 함께 병행해서 명상이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기존의 체계들과 조화를 이뤄나갈 수 있을 때 명상도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될 때 누가 알겠는가. 초등학교에서도 체육처럼 명상을 정규과목에 넣게 될지.
글│김정호 jhk@center.duksung.ac.kr">jhk@center.duksung.ac.kr
덕성여대 심리학과 교수. 한국건강심리학회 이사. 대한스트레스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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