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활동하는 철학자 한병철 교수가 《피로사회》라는 책을 냈다. 그는 이 책에서 현대사회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노예처럼 착취하는 ‘자기착취시대’라고 했다. 성과 중심의 사회 시스템에 익숙해진 개인이 ‘할 수 있다’는 과도한 긍정성으로 스스로를 탕진하다 급기야 피로와 우울증, 자살로 내몰리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바라 일해야 할까.
현대사회에서 어떤 직업을 가졌느냐는 그 사람의 정체성과 직결된다. 직업 자체가 그가 살아온 길이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한때는 대통령이나 장관처럼 권력과 명예를 가질 수 있는 직업이 인기였던 시절이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가 무르익자 연봉이 직업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고, 고용환경이 불안해진 요즘은 직업적 안정성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직업적 안정성과 연봉을 기준으로 선택한 직업이 과연 우리를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지 한번쯤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돈을 벌기 위해 일한다?
우리나라 직장인을 대상으로 회사를 왜 다니는지 조사한 결과, 과반수 이상(53.3%)이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그 다음이 ‘경력을 쌓기 위해서’(23.6%), ‘자아실현을 위해서’(6.2%) 순이었다. ‘일 자체에 보람을 느껴서’라고 답한 사람은 5.2%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돈을 버는 이유는 무엇일까? 알 수 없는 앞날에 대비해 ‘저축’을 하거나 여유가 생기면 ‘일을 하지 않고 쉬고 싶어서’라고 한다. 일을 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고, 돈을 버는 이유는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니, 어딘가 아이러니한 결론이다.
어서 빨리 돈을 모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직장인들의 고단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노후에 조금 편하자고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기를 원치 않는 직장 일에 저당 잡혀 산다는 게 과연 바람직한 전략인지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행동 경제학의 창시자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니엘 카너먼은 돈이 직업적 만족도를 좌우하는 절대적인 요소는 아니라고 말했다. 카너먼의 연구에 따르면 소득이 오를수록 직업적 만족도가 높을 거라는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소득이 6만 달러 이상이 되면 돈을 아무리 벌어도 소득에 따른 행복도가 증가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마디로 돈은 우리가 일을 하는 절대적인 목적이 아니다.
그렇다면 고위 관리자가 되어 권력이나 명예를 누리는 것이 목표일까? 인간이 직업에서 무엇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지 수십 년간 연구해온 런던대학교 마이클 마멋 교수는 소득이 높고 지위가 높을수록 건강상태가 더 양호한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하지만 고소득자가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그들이 보수가 높고 사회적인 인정을 받는 위치에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자신의 일에서 더 많은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직업적인 만족도는 자신의 일에서 얼마나 ‘통제력’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통제력을 갖기 위해서 누구나 회사의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야 할까? 다행히 통제력은 절대적이거나 객관적인 잣대가 아니다. 지위가 낮고 통제력이 덜 주어진 일을 하는 저임금 노동자라 할지라도 자신의 일을 주도적으로 해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높은 위치에 있으면서 스스로를 무기력하다고 생각하는 상사보다 훨씬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가 일을 하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지위나 소득만이 아니라 직업을 통해 얻게 되는 성취감, 완성도,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자신이 일을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 등을 얻기 위해 우리는 일을 한다.
하지만 요즘의 한국사회는 어떤가. 마치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되기를 원하고, 대학 졸업생의 상당수가 교사나 공무원을 꿈꾸며, 인생 한방을 위해 각종 고시에 매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이상 현상이다. 알랭 드 보통은 현대사회의 이러한 현상을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우리가 빌 게이츠 같은 부자가 되고 유명해지는 것은 17세기에 농노 신분으로 태어난 사람이 프랑스 귀족이 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 모두는 열정과 노력, 그리고 빈 차고 하나를 빌릴 정도의 주변머리만 있으면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고 믿고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선택할 때 내면의 기쁨을 주는 자기만의 기준을 발견하려고 애쓰기보다 사회 시스템이 요구하는 그럴 듯한 기준에 맞춘다. 간디학교 양희규 교장은 1978년 대학에 입학할 때 적성보다는 당시의 사회인식에 맞춰 인기 있는 학과인 경제학과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는 2년 동안 경제학을 열심히 공부했지만 결국 깨달은 것은 자신이 경제학에 전혀 흥미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대학을 그만두고 방황하다가 자신이 근본적인 물음에 논리적인 답을 찾는 데 재능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모두가 말리는 철학과에 편입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그때부터 공부가 재미있어지고 인생이 즐거워졌다고 한다.
그는 “인간은 개인의 잘못으로 불행해지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잘못된 사회구조나 제도로 인해 불행해진다”고 지적하면서 사회 분위기에 맹목적으로 편승하기보다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집요하게 탐구하라고 조언했다.
[출처]뇌교육 두뇌포털 브레인월드 > 뇌와 교육 > 당신은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가?
http://kr.brainworld.com/BrainEducation/9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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