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부터 <브레인>에 출근을 하게 됐다. 명상에 대한 집중 리포트를 기획하는 김에 한동안 소홀했던 명상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21일간의 명상은 온전히 나 자신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지난해 12월 초, 6개월 동안 쉬지 않고 진행했던 프로젝트가 비로소 끝이 났다. 일은 끝났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빠듯한 일정을 진행한 탓에 일상의 곳곳에서 빈틈이 드러났다. 몸도 챙기지 못했고 인간관계도 보듬지 못했다. 하나에 열중하면 다른 것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성격 탓이다.
작년 12월부터 <브레인>에 출근하면서 그동안 소홀했던 명상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출근길을 ‘명상 길’로 삼은 이유는 단순하다. 그 시간이 매일 규칙적으로 명상을 할 수 있는 방해받지 않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매일 아침 지하철 안에서 15분간의 명상이 시작되었다.
1주차, 삶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명상
2011(4344)년 12월 22일. 인파로 북적이는 지하철 안에서 눈을 감는다. 눈을 감는 것만으로 지하철 안의 답답한 공기가 한 템포 뒤로 밀려난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오로지 호흡에만 집중한다. 만원 지하철 안에서 한 호흡 한 호흡 숨을 고르는 것만으로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명상을 시작한 첫 주 퇴근길에는 호흡이 잘 되지 않았다. 그동안 쉴 틈도 없이 달려왔던 프로젝트의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은 탓이다. 퇴근하자마자 쓰러져 잠에 빠져드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무언가를 시작할 의욕이, 아직 나지 않는다.
1주차가 끝나가자 비로소 헝클어지고 치우쳤던 삶이 조금씩 제자리로 회복되는 것을 느꼈다.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자제하지 못하고 야식을 먹던 습관이 어느 순간 잦아들었다. 부기가 느껴지던 몸이 어느 날인가 문득 가뿐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잠들기 전 10분 정도 가부좌로 앉아 명상을 할 수 있을 만큼 의욕도 되살아났다.
그래, 명상의 효과는 바로 이런 거였다. 그것이 무엇이든 변화가 아주 자연스럽다는 것. 야식 먹는 습관을 고치기 위해 일부러 식욕을 참거나 애써 식사량을 줄이지 않아도 된다. 내 몸에, 호흡에 집중하는 것만으로 어느 날 문득, 자연스럽게 좋은 습관이 몸에 밴 것을 느낀다. 아침 안개처럼 소리 없이 찾아온 변화를 고요한 가운데 체감한다. 그렇다. 삶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데 명상만 한 것은 없다.
2주차, 명상을 통해 뭐가 변했더라?
처음 명상을 시작한 것은 대학 4학년 때였다. 명상을 하기 전의 나는 활자중독증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활자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길을 걸으면서도 무언가를 읽었고, 은행 업무를 보는 시간조차 아까워 안내 책자라도 읽어야 직성이 풀렸다.
그런 내게 명상의 첫 느낌은 뭐랄까, 눈을 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 같다. 가부좌로 앉아 내면에 집중하라고 하는데, 왜 그래야 하는지, 그래서 뭘 얻겠다는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가부좌는 불편했고, 호흡은 좀처럼 자연스러워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서 수시로 눈을 감았다 떴다. 일 분 일 초라도 아껴서 뭐라도 읽어야 안정이 되던 그 시절에, 명상은 내게 지루하고 비생산적인 작업에 가까웠다.
지금 생각하면 외부로 향하던 시선을 돌려 내면에 집중하는 감각을 전혀 알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당시의 내게 명상의 효과는 그저 잠이 잘 온다는 데 있었다. 호흡 명상을 하고 돌아가는 길에 춘곤증을 앓는 봄 처녀처럼 시도 때도 없이 졸았다. 팽팽하게 긴장해 있던 몸과 마음이 릴랙스 되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그렇게 건성으로 명상을 했어도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고 인상이 달라졌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 후부터 명상은 내게 급할 때마다 찾게 되는 가정상비약 같은 존재였다. 두통이 찾아올 때 아스피린을 찾듯 마음이 불안하고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호흡 몇 번으로 몸과 마음을 컨트롤할 수 있었다.
감정기복이 심할 때 가만히 내면을 관찰하는 것,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숨을 고르면서 몸 상태를 회복시키는 것. 명상은 내게 딱 그 정도 수준의 건강 활용법이었다. 명상 2주차에 들어서면서 나는 그런 명상법에 갈증을 느꼈다.
그 이상의 명상은 없을까? 단순히 컨디션을 회복하고 감정을 컨트롤하는 차원의 명상 이상은 없을까?
다른 사람들은 명상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궁금했다. <브레인> 1월호를 진행하면서 만나는 취재원들에게 명상에 대해 물었다. 취재원 중 상당수가 명상에 관심이 있거나 생활 속에서 명상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어서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다. 취재를 하면서 느낀 것은 사람마다 명상 방식도, 명상에 대한 생각도 천차만별이라는 것.
흥미로웠던 것은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가 선불교 명상을 통해 직관력을 길렀듯 삶의 질을 높이고 두뇌 능력을 높이는 데 명상을 활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출판사 김영사의 박은주 사장은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108배 절수련을 하고 금강경을 외우고 명상을 하는 습관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30년 동안 계속해오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가 세상에 필요한 책, 지금 꼭 만들어야 하는 책을 편견 없이 볼 수 있는 마음을 닦기 위해서라고 한다. 《몰입》의 저자 황농문 교수는 자신이 하는 ‘몰입’ 방식이 알고 보면 넓은 범주의 명상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다만 자신은 명상을 건강 측면에서 활용한 것이 아니라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통찰력을 기르는 데 활용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명상의 가치를 단순히 마음이 편해지고 감정을 컨트롤하는 데 두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뇌를 잘 쓸 수 있는 최적의 두뇌 상태를 만들기 위해 명상을 했다.
3주차, 뇌를 가장 잘 쓰는 방법으로서의 명상
명상에 집중하는 3주 동안 내게 일어난 변화를 몇 마디 말이나 수치로 제시하기는 어렵다. 다만 명상을 하면서 조금 더 스스로를 알아갈 수 있는 내밀한 시간이 되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기억에 남는 몇몇 장면이 있다. 인간관계의 갈등 속에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누군가의 모습을 내 안에서 발견한 것도 그중 하나다.
먼저 다가가기보다 상대방이 다가와주기를 바라는 내 모습을 통찰하지 못했다면 상대방의 무심함만 탓하며 관계를 끝내고 말았을 것이다. 내가 옳은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우리가 함께 행복한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의외의 수확이다.
부딪치기 싫어서 늘 피하기만 하던 문제를 정면 돌파한 기억도 새롭다. 비록 상황을 노련하게 끌고 가지는 못했으나 마음속에만 품고 있던 말을 분명하게 꺼냈을 때 스스로를 인정해준 것 같은 묘한 뿌듯함을 느꼈다.
실은 명상을 하든 하지 않든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삶을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 다만 명상은 외부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더 본질적인 것을 들여다보게 한다. 자신을 성찰하는 과정에서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에 중심을 둘 수 있게 한다.
명상을 하면서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나 자신과 만나는 은밀한 시간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을 좀처럼 내지 못했다.
명상이 책을 읽거나 일에 몰입하거나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무엇인가를 하는’ 시간에 자꾸 밀리곤 했다. 그러나 철저하게 외롭고 그 무엇도 위안이 되지 않는 순간에도 온전히 나 자신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내게 적잖은 위안이 되어주었다.
최근 서양에서 명상은 단순한 건강법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인식되고 있다고 한다. 물질 중심의 사회에서 채워지지 않는 보다 본질적인 것에 대한 갈구가 현대인을 명상으로 이끈다. 이제 명상은 단순히 아픈 사람을 건강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건강한 사람이 더 건강해지는 것,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삶의 질을 높여가는 차원으로 진화하고 있는 듯하다.
글·전채연 ccyy74@naver.com">ccyy74@naver.com
[출처]뇌교육 두뇌포털 브레인월드 > 기획기사 > 내 생애 가장 내밀한 21일
http://kr.brainworld.com/PlannedArticle/8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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