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북한의 동계올림픽 참가, 뒷뜰에서 벌어지는 해결되지 않은 현안들 2018年02月10日 鳳凰網
북한의 개혁개방
(http://www.surprise.or.kr/ / 뉴스프로 / 2018-02-21)
– 1991년 시작
– 열의와 성과 없는 개혁개방
– 수동적 개혁과 북한의 처세 철학 및 의존성
2018년 2월 10일 중국 종합 포털 사이트 봉황망에 북한 관련 기사가 올라왔다. 평창 번역도 길었는데 이건 더 길었다. 솔직히 번역하고 싶지 않았지만, 궁금한 마음을 이길 수 없었다.
남북한 간 화해 모드가 조성되고 있다. 그렇지만 평화 협상의 기반은 양측이 지닌 정치력, 경제력, 군사력에 달려있다. 경제력이야 말로 가장 결정적인 기반이다. 남북한 양측이 오랜 기간 동안 진전을 얻을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 역시 바로 경제력 차이로 인한 것이다. 즉 한국 국민들은 가난한 북한을 걱정했으며, 북한 통치자는 개방된 한국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90년대에 이르러 북한 고위층에서는 더 이상 개혁을 하지 않으면 정권 통치의 합법성까지 직접적인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이미 10년 전 개혁개방을 실시하여 괜찮은 성과를 거둔 중국으로 눈길을 돌렸다. 하지만 북한식 개방과 시범실시는 중국 개혁개방 초기와 같은 열화와 같은 열기가 없었으며 그 성과 또한 매우 의문스럽다.
북한식 ‘개혁개방’의 난감한 현 상황은 내적 외적으로 제한된 환경에 기인한다. 내부적으로 북한의 이번 개혁은 상황에 밀려 진행된 수동적 개혁이다. 개혁 초기부터 정부가 굳건한 개혁 의지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수정주의’로 보여졌다. 실패의 외적 요인은 바로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북한의 처세철학과 다른 나라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사이에서의 모순이다.
한국 김대중 정부의 선의에 가득 찬 ‘햇볕정책’에 대한 북한의 태도는 더욱 실망스러웠다. 한국측이 자본과 기술을, 북한이 토지와 노동력을 제공해 함께 남북한 경제 통일의 실험대인 개성공단를 조성하였지만, 결과적으로 북한은 오히려 이를 빌미로 한국을 협박했다.
경제 개혁은 반드시 경제 법칙을 따라야 한다. 각 나라들이 자신들의 풍부한 자원과 가장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서로 협력해야만 상생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은 자신들의 미약한 경제력과 매우 열악한 산업 수준으로 협력 파트너를 제압하려 했기 때문에 쓰디 쓴 결과를 맛볼 수 밖에 없었다.
최근 북한은 돌연 태도를 바꿔 자발적으로 한국에 호의를 보이고 있다. 이것이 북한이 앞으로 변할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공식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 북한 지도자가 정권 유지를 위한 새로운 무기를 가지게 됨으로써 어쩌면 질식할 듯한 경제적 압박을 다소 느슨하게 할 지도 모르겠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중국 종합 포털 사이트 봉황망에 게재된 북한 관련 기사이다.
번역 및 감수 : 임아행
기사 바로가기 : http://bit.ly/2BBIi07
朝鲜参加冬奥会,后院里的这件事情却一直悬而不绝
북한의 동계올림픽 참가, 뒷뜰에서 벌어지는 해결되지 않은 현안들
2018年02月10日 08:02:30
来源:地球知识局
출처: 지구지식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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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국 평창 동계올림픽이 막을 올렸다. 남북한 대표단이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했으며, 북한은 여기에 더해 명목상 국가 원수인(역자 주: 1998년 9월 5일 헌법 개정에 따라 최고 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대외적 국가 원수 역할 수행) 김영남과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을 개막식에 파견했다.
갑작스러운 남북한의 협력은 위기에 처해있던 한반도 정세가 안정될 가능성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세계에 전달하였다. 어쩌면 38선을 경계로 얼어붙어 있던 남북한 사이에 평화롭고 우호적인 협상이 다시 한 번 펼쳐질 지도 모
르겠다.
그렇지만 평화 협상의 기반은 사실 단순한 외교적 매력 공세가 아닌 양측이 지닌 정치력, 경제력, 군사력에 달려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 하루 전 날 거행된 김정은의 열병식은 군사력을 과시해 북한의 발언권을 강화하고자 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력이야 말로 가장 결정적인 기반이다. 남북한 양측이 오랜 기간 동안 진전을 얻을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 역시 바로 경제력 차이로 인한 것이다. 즉 한국 국민들은 가난한 북한을 걱정했으며, 북한 통치자는 개방된 한국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북한 지도층은 일찍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단동(丹东) 압록강 단교(역자 주: 1950년 10월 19일 중공군 참전 저지를 위해 미군이 폭격)에서 바라본 북한, 맞은 편이 바로 북한의 ‘홍콩’인 신의주 특구 천졘(陈坚) 촬영
사실 북한의 개혁개방은 1991년 시작되었다. 김일성이 나선에 최초로 대외개방된 자유경제무역구를 세웠을 때 이미 시작되었으며 벌써 2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북한식 개방과 시범실시는 중국 개혁개방 초기와 같은 열화와 같은 열기가 없었으며 그 성과 또한 매우 의문스럽다.
그렇다면 북한의 개혁개방 결과는 어떠하였으며, 그 성공을 방해한 요소는 무엇이었는가?
오늘 이 글에서 북한 개혁개방의 신비로운 베일을 벗기고자 한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자기 보호
1960~70년대는 북한 발전의 황금기였다. 소련과 중국의 대규모 원조에 힘 입어 북한 경제는 매우 빠르게 발전했다. 심지어 이 시기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20%에 달해 외신들이 ‘극동 경제 발전의 기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심지어 북한은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동아시아 2대 주요 공업 발전 국가였으며, 동아시아에서 현대화가 가장 많이 진척된 국가 중 하나였다.
70년대 평양 사진은 공식 홍보 책자
70년대 평양+1
하지만 이러한 일시적인 발전은 북한 자신의 경제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국제 정세가 격변할 때 외국의 원조와 보호에 과하게 의존했던 북한 경제는 그 발전을 계속 이어나갈 수 없었다.
중국과 소련의 관계가 악화되고 양국이 자국 내부 문제로 북한에 대한 원조를 연이어 중단하면서 80년대 이후 북한 경제는 곤경에 처했다. 사회주의 기준에서 보더라도 당시 북한의 생산성 역시 만족스럽지 못한 수준이었다. 생산 통계는 부정확했고, 소비 분배 계획은 불합리했으며, 중앙 정부는 전체 계획을 통제하지 못했다. 얼핏 보기에는 강하게 보였던 북한의 공업 생산액이 점차 붕괴되었고, 사회 생산성의 지역별 배치의 불합리성은 나날이 도드라졌다. 몇 년간 끊이지 않았던 자연재해마저 취약한 사회 간접 자본을 망가트렸다.
80년대 평양
김씨 정부의 근시안 때문인지 아니면 중국과 소련 양국의 기밀 유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북한은 공업 전성기에도 일시적인 물질적 성과만을 거두었을 뿐 진정한 기술을 배우지는 못했다. 이 시기 자금과 기술의 이중 결핍으로 인해 북한이 보유하고 있던 수 많은 첨단 시설들이 사용 중지 되었고, 북한 내 대다수의 공업은 정체 혹은 퇴보의 길을 걷게 되었다.
90년대에 이르러 소련과 동유럽의 격변으로 한 시대를 호령하던 사회주의 진영이 무너졌다. 남아 있던 몇 안 되는 국가들 또한 경제난을 겪었다. 북한에게 있어 이처럼 민감한 시기는 매우 위험한 것이었다. 북한 고위층에서는 더 이상 개혁을 하지 않으면 정권 통치의 합법성까지 직접적인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북한 대기근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이미 10년 전 개혁개방을 실시하여 괜찮은 성과를 거둔 큰형님인 중국으로 눈길을 돌렸다.
중국의 상황
두만강 하류의 나진시와 선봉군 두 지역은 중국과 러시아 양국과 인접해 있다는 지리적 장점 때문에 1991년 12월 급하게 자유경제무역구로 지정되었다. 계획 제정과 법규 정책 등 모든 것이 중국 선전(深圳)의 개혁 조치를 그대로 옮긴 듯 하다.
1993년 연말 <한국일보>는 북한의 나선과 선봉 등 지역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은 국적에 상관없이 경영권을 유지하기만 하면 모두 독립된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보도하였다. 1996년 북한은 나진시와 선봉군 두 지역을 합병한 나선시를 파격적으로 직할시로 승급시켰다. 이는 북한이 개혁을 얼마나 중요시하는지를 보여준 것이다.
나선, 북한의 ‘선전(深圳)’
그러나 현실은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북한이 대대적으로 특별경제구(2013년부터 중국은 무려 19개의 특별경제구를 만들었다)를 개방하고 정책 또한 이웃 나라를 모방했지만 찾아오는 투자자가 매우 적어 현재까지도 별다른 진전을 거두지 못하였다. 이는 무엇 때문인가?
保住政权的改革
정권 수호를 위한 개혁
북한식 ‘개혁개방’의 난감한 현 상황은 내적 외적으로 제한된 환경에 기인한다.
내부적으로 북한의 이번 개혁은 상황에 밀려 진행된 수동적 개혁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 초기부터 정부가 굳건한 개혁 의지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수정주의’로 보여졌다. 이는 두 가지 기이한 현상을 초래하였다.
첫째, 정치와 경제 관점 동요: 북한 개혁의 목적은 정권 안정성 수호이며 경제 발전은 그 수단이다. 하지만 경제 변화는 반드시 정권 귀속에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에 정부가 용납할 수 있는 범주 내에서 경제를 발전시켜야만 하며, 경제 발전을 제어하지 못하게 되면 정부가 즉각 압력을 가하게 된다.
[사진 번역: 내가 준다고 한 것만 달라고 해야 해.]
2012년 간부회의에서 김정은은 “내 입장에서는 쌀이 탄약보다 더 귀하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선군정치의 틀을 깨고 경제 발전을 우선으로 삼은 신호탄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2016년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혁명의 붉은 깃발을 높이 들고 자주, 선군, 사회주의의 길을 용감히 걸어가겠다”라며 다시 한 번 선군정치를 강조하였다. 정치를 우선으로 하고 경제 개혁을 거부하는 관점임이 분명하다.
2018년 핵실험을 완성한 김정은은 더 직접적으로 본인 책상의 핵 버튼이 미국을 가리키고 있다고 밝혔다. 경제와 정권 중 무엇을 더 우선시 하는 지 알 수 있다.
신년사에서 보여준 새로운 이미지
둘째, 북한의 사업은 경제적 이익이 아닌 정치적 이익을 기본으로 한다. 따라서 이윤 추구 방법 또한 종종 비경제적인 수단을 취하고는 한다. 양자간 무역에서 종종 북한의 일방적 파기나 약속 미이행으로 외자가 철수하였다.
두만강 개발을 예로 들어보자. 두만강은 중국과 북한의 경계로 중국이 일본해에 진입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다. 국제적인 강이기 때문에 국제연합개발계획(UNDP)이 앞장 서 중국, 러시아, 북한, 한국, 몽고 5개 국이 주체가 되어 두만강 삼각주를 공동 개발했다.
중국과 북한 사이의 두만강
두만강의 바다 진입로 확보는 지린성(吉林)과 헤이롱쟝성(黑龙江) 두 지역의 대외 무역에 매우 유리하다. 이는 동북지역 경제 활성화에 매우 중요한 부분 중 하나로 중국은 2009년에 두만강 개발 계획을 국가전략으로 격을 높였다.
하지만 바로 이 시기에 북한은 UNDP 두만강 개발 계획 철수를 선언하였다. 표면적인 이유는 북핵 문제였지만, 사실은 북한이 두만강 개발권을 독식해 중국, 러시아, 한국, 몽고 4개 국에 맞서기 위해서였다고 알려졌다. 어찌되었든 그 후 중국은 나선특구 나진항 투자 개발 소식 밖에 얻지 못했으며, 북한은 바다 진입로를 장악하고 여기에서 얻어지는 경제적 이익을 독식하였다.
离的很近,过去很远
가깝지만 먼
북한 내부 정치적 동요로 북한 투자의 장기적 이익을 담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매우 당연하게도 경제 특구는 경제 특구로써의 가치를 상실했다. 실패의 외적 요인은 바로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북한의 처세철학과 다른 나라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사이에서의 모순이다.
북한의 처세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특징은 바로 ‘반훈(反訓, 역자 주: 훈고학 용어. 원래의 뜻과는 반대로 사용되는 것)’이다. 즉 작은 나라가 지도자의 모습을 취함으로써 대국이 자신들을 따라오게 하는 능력으로 북한은 이것에 매우 능하다. 이러한 점은 두만강 개발 계획에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다음의 ‘양빈(杨斌) 사건’과 ‘개성공단’은 이러한 북한의 처세가 실패한 대표적인 예이다.
[사진 번역: 북한 투자 환영.]
2002년 북한 경제는 지속적인 부진에 시달렸으며 몇 차례의 개혁도 소용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돌연 일방적으로 중국 사업가 양빈을 북한 최초의 자본주의특구 신의주 특구 수장으로 임명했다. 그 배후 원인이 복잡하기는 하지만 사전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중국 사업가 양빈을 임명한 것은 명백히 중국의 이익에 위배되는 것으로 동북 지역을 컨트롤하고자 한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었다.
양빈
아이러니 한 점은 양빈 취임 후 열흘도 되지 않아 중국 공안이 탈세죄로 그를 체포했다는 것이다. 그 후 랴오닝성 중급인민법원은 계약사기와 뇌물 등의 죄명으로 양빈에게 18년 구금을 판결했다. 용두사미가 되어버린 ‘신의주 개혁’은 한 편의 코미디로 막을 내렸다. 다른 사람이 개혁을 도와주러 오기를 바라면서도 또 다른 측면에서는 독단적으로 행동했기 때문에 북한의 이른바 경제 개혁은 외부의 지지를 얻기 힘들었다.
한국 김대중 정부의 선의에 가득 찬 ‘햇볕정책’에 대한 북한의 태도는 더욱 실망스러웠다. 한국측은 수 십 억 달러를 들여 개성공단을 건설했다. 한국측이 자본과 기술을, 북한이 토지와 노동력을 제공해 함께 남북한 경제 통일의 실험대를 조성하였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오히려 이를 빌미로 한국을 협박했다. 한국 기업이 노동자를 착취하고 세금을 탈루하였다고 단정짓고 종종 일방적으로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배상을 요구했다.
굴욕을 당했다고 느낀 한국은 결국 2016년 북한 핵실험 제재 조치의 일환으로 프로젝트를 완전히 종결시켰으며, 북한은 다시 한 번 경제 개혁 실험 무대를 잃어버렸다.
한국 서울에서 열린 반북 집회에서 집회 참가자가 북한 지도자 김정은의 초상을 불태우고 있다.
123개 기업 중 120개 기업이 손실을 입었으며, 총 금액은 약 8152억 원이다.
사진은 공단을 떠나는 차량.
경제 개혁은 반드시 경제 법칙을 따라야 한다. 비교적 탄탄한 이론의 틀에서 각 나라들이 자신들의 풍부한 자원과 가장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서로 협력해야만 상생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은 경제 개혁 과정에서 이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미약한 경제력과 매우 열악한 산업 수준으로 협력 파트너를 제압하려 했기 때문에 쓰디 쓴 결과를 맛볼 수 밖에 없었다.
중국과 북한 이부콰(一步跨) 여기에서 중국과 북한의 거리는 5M가 안 된다. 천졘(陈坚) 촬영
중국과 북한 이부콰(一步跨)+1 오른쪽은 북한 신의주, 왼쪽은 중국 단동(丹东) 천졘(陈坚) 촬영
소꿉놀이 같은 게임
내적 외적 조건의 제약으로 북한의 개혁개방은 우스개 소리로 전락하였다. 결국 북한은 한 번도 자발적으로 개혁개방을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 이런 북한이 다른 나라가 자신들의 개혁개방을 돕기를 바란다는 것은 더 말 할 가치도 없다. 국가 발전 전략과 노선 선택에 있어 북한은 이제까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으며 바뀔 생각도 없다.
2008년 11월 21일 <노동신문>의 중요 기명(記名) 문장 <제국주의자의 음험한 ‘개혁’ ‘개방’ 음모>는 마치 이런 추측에 대한 답변인 듯하다.
“제국주의자들이 ‘개혁’과 ‘개방’을 부르짖으며 다른 나라에게 ‘개혁’과 ‘개방’을 하라고 훈계하고 강요하는데 이는 강도 행위이다.”
“이처럼 ‘개혁’과 ‘개방’을 통해 인민 대중을 중심으로 하는 우리 조선식 사회주의를 전복하려는 침략과 와해 음모는 여기서는 절대 통하지 않는다. 이는 반드시 파탄의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자주성을 고수하고 있는 세계 각국 인민들은 제국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개혁’과 ‘개방’ 음모의 반동성과 위해성을 분명이 알고 이를 고도로 경계해야 한다.”
이러한 정부측 논조는 과거 적극적으로 개혁을 모색하던 북한 고위층의 태도와 판이하게 다를 뿐만 아니라 수수께끼와 같은 이 나라의 전략이 얼마나 불투명한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북한의 개혁 개방은 소꿉놀이 같다. 집권과 합법성을 접합시켜주는 접착제일 뿐 중국의 개혁 개방과는 같은 선상에서 논의될 수 없는 수준이다.
북한식 개혁 개방이 무언가 경제적 가치를 보여줬다고 하다면 그것은 아마도 북한 고위층이 비정기적으로 ‘손실을 입은 기존 투자자가 떠난 후 신규 투자자가 유입되는’ 기회를 얻게 되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듯 어리숙한 투자자로부터 원금과 이자까지 돈을 짜내는 것일 것이다.
압록강변을 순찰하고 있는 북한 병사 뒤쪽은 황량한 경작지 천졘 촬영
최근 북한은 돌연 태도를 바꿔 자발적으로 한국에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의사 등과 같은 호의를 보이고 있다. 이것이 북한이 앞으로 변할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공식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 북한 지도자가 정권 유지를 위한 새로운 무기를 가지게 됨으로써 어쩌면 질식할 듯한 경제적 압박을 다소 느슨하게 할 지도 모르겠다.
http://surprise.or.kr/board/view.php?table=surprise_13&uid=63405
2008년 11월 21일 <노동신문>의 중요 기명(記名) 문장 <제국주의자의 음험한 ‘개혁’ ‘개방’ 음모>는 마치 이런 추측에 대한 답변인 듯하다.
“제국주의자들이 ‘개혁’과 ‘개방’을 부르짖으며 다른 나라에게 ‘개혁’과 ‘개방’을 하라고 훈계하고 강요하는데 이는 강도 행위이다.”
“이처럼 ‘개혁’과 ‘개방’을 통해 인민 대중을 중심으로 하는 우리 조선식 사회주의를 전복하려는 침략과 와해 음모는 여기서는 절대 통하지 않는다. 이는 반드시 파탄의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자주성을 고수하고 있는 세계 각국 인민들은 제국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개혁’과 ‘개방’ 음모의 반동성과 위해성을 분명이 알고 이를 고도로 경계해야 한다.”
이러한 정부측 논조는 과거 적극적으로 개혁을 모색하던 북한 고위층의 태도와 판이하게 다를 뿐만 아니라 수수께끼와 같은 이 나라의 전략이 얼마나 불투명한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북한의 개혁 개방은 소꿉놀이 같다. 집권과 합법성을 접합시켜주는 접착제일 뿐 중국의 개혁 개방과는 같은 선상에서 논의될 수 없는 수준이다.
이 글은 북한정권의 90년대 이후 현재까지의 경제정책의 목적은 북 주민이 아니라 체제유지와 연관되어 있다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그런 탓인지 이것은 조갑제 닷컴이나 조선, 동아일보 등의 국내 우익이나 일본의 반북매체의 논조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 글은 봉황망이라는 중국 최대의 온라인 뉴스에 게재된 중국 관영매체의 기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사의 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 북중관계의 현재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메시지로 읽힙니다. 반면, 그만큼 달라진 한중관계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역시, 이런 점에서 보면 중국은 한반도 통일이 한국주도로 되기를 원한다는 뉘앙스가 느껴지는군요.
중국 최초 ‘한중 교류’ 뉴스…선두권 포털 봉황망 ‘중한교류 채널’ 오픈
2016.06.09
. 중국 최대 인기 온라인 뉴스 미디어 플랫폼 봉황망(鳳凰網, http://www.ifeng.com/))은 ‘중한교류 채널(鳳凰網中韓, kr.ifeng.com)’을 개설하고 한국에 처음 진출한다. 심층·실용적인 한국 뉴스로 가까워진 양국간 산업·문화적 교류의 허브 역할을 하겠다는 취지다.
봉황망에 따르면 중화권 독자를 대상으로 한국소식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봉황망 중한교류 채널’이 6월 첫째주 PC 및 모바일(앱스토어:鳳凰新聞) 버전을 열고 정식 운영을 시작했다.
중국 베이징에 본사를 둔 봉황망은 일 평균 페이지뷰가 10억뷰(SimilarWeb 기준), 일 평균 방문자 수가 1억5000만명(SimilarWeb 기준)을 넘으며 중국 인터넷협회 운영 공식 랭킹사이트 기준 중국 내 전체 사이트 순위 5위(3월 21일 기준), 포털·뉴스 순위 2~3위를 차지하고 있는 선두권 미디어다.
중한교류 채널은 봉황망 내에 개설되는 중국어 기반 한국 뉴스 페이지로 △경제·비즈니스(금융·무역, 산업·IT) △투자·이민 △여행·쇼핑(관광·쇼핑, 건강·미용, 맛집·숙박) △엔터테인먼트·예능 △패션·트렌드(피부·화장, 패션·액세서리, 생활) △창업혁신 △문화·예술 △콘텐츠·게임 △한국의 혁신 사례 △오늘의 IT소식 △쇼핑 정보 등 카테고리에 맞는 뉴스와 동영상 코너로 구성된다.
봉황망은 중한교류 채널 서비스 개시를 기점으로 다양한 한중 비즈니스·문화·정보 교류 사업을 추진한다. 글로벌 미디어로서 보폭을 넓히고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매칭 등을 위한 채널 역할을 강화한다.
중한채널은 봉황망의 중화권 이외 지역에 개설되는 첫 해외 채널이다. 앞서 ‘한국채널’을 개설한 인민망(2012), 신화망(2015)에 이어 선두권 중국 온라인 뉴스 포털의 한국 진출 사례로 주목된다.
봉황망 중한교류 채널의 한국 운영은 서울 소재 봉황망코리아미디어가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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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일보] 중국 최초 ‘한중 교류’ 뉴스…선두권 포털 봉황망 ‘중한교류 채널’ 오픈